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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Sep 09. 2021

소보루빵 대신 크럼블

미안... 실은 선생님이 말이야

    선택의 이유는 때론 단순하다.  

나는 카페인에 약하다.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이 안 온다. 

그래서 빵을 가르치겠다고 답했다.


    교과서를 받아보니 나오는 용어들이 공립법, 무슨 법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 전공과는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을 마친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이 직업 심화교육을 받기 위해 오는 곳으로 티오가 많지 않아 공개전형을 거쳐야만 입학할 수 있다. 더욱이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어째서인지 전공과의 sky로 불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는데,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매우 우수하다. 이 말인즉슨, 학생들 대부분이 이미 바리스타 자격증을 비롯해 심지어 내가 가진 유일한 자격증인 운전면허증도 있는 학생들이라는 것.  


    제빵학원이라도 등록해서 퇴근 후에 다니려 했다. 중등특수교사들이 특수교육 전공 외에 부전공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 같은 단과대학인 사범대 안에서 부전공을 할 수 있기에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나의 부전공은 '영어'였고 전공과에 오기 전 시각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교과를 가르쳤다. 그나마 나는 나의 부전공을 살린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특수교사들이 부전공과는 무관하게 갑자기 맡게 된 교과목을 배우면서 가르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걱정은 됐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란 무모함도 들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TV 뉴스에 코로나 관련 속보가 흘러나온다. 교육 정책을 공문보다 뉴스로 소식을 접하는 게 더 빠른 시절이었다. 온라인 수업 실시! 네?! 빵 만드는 법을 동영상으로 제작해야 한다고요?! 


    혹여나 코로나에 걸려 학생들에게 전염시키지는 않을까 외출조차 삼가야 하는 상황에 제빵학원에 다닐 엄두도 내질 못했다. 더구나 전면 등교인지 격일 등교인지 매일 같이 상황이 변동하는 때에 내가 아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가장 실용적이겠다 싶었다. 교과서 속 빵 만드는 법은 모르지만 그래도 몇 가지 디저트는 만들 수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제과 제빵과 꽤 밀접한 삶을 살아왔다. 동네 빵 맛집에서 줄 서가며 쓴 돈이 얼마이며, 아일랜드 캠프힐에서는 팬케익을 맛있게 만들기로 소문이 자자했고, 미국 교환학생 시절 학생 식당 브라우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식당 아주머니가 늘 가장 큰 조각으로 주었고, 탄자니아에서 2년 동안 먹은 고소한 만다지와 차파티를 쌓으면 기린보다 더 높을 것이 아닌가. 심지어 내 남편은 프랑스인이다! 아침식사는 늘 달콤한 과자와 사발에 담은 커피로 때우고 매일같이 제과점에 들리지 않고서는 못 사는 종족이 바로 프랜치! 컴퓨터를 켜고 연간 진도표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 알고 할 수 있는 것 위주로 고쳐나갔다. 소보루 빵은 만들 줄 모르지만 크럼블은 할 줄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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