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을 쓰고 싶은 이유..

이제는 잊지 않기로 했다!

by 피렌체장탁

-이 글은 2017년 8월 23일에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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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이야기들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이렇게 적어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손님맞이하기에도 바쁜 하루에 글을 쓸 여유 따위는 없다.

지금껏 그렇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릿속에만 맴돌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틈이 생기면 체력을 보충하느라 잠자기에 바빴으니까.

그런 소중한 잠자는 시간마저 쪼개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기까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있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최근 극심한 우울 증상을 겪었다.

나에게는 다소 낯설고 어색한 경험이었다.

30여 년 살면서 긍정의 아이콘으로 '괜찮아, 무조건 난 잘될 거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달고 살았고 나름의 스트레스 극복 방법도 5개 이상 가지고 있는 나였다. (독서, 음악, 영화보기, 음주가무 등.. 평범하지만 강력한..!)


나름 굴곡진 인생이라 남들이 들으면 짠내 나는 힘든 일을 여러 번 겪어낼 때조차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 자신을 속이는 행위였다.

그렇게 축적되고 곪아왔던 아픈 마음은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터져 버렸다.

그 친구를 잃었다는 상실감도 컸지만, 자기 몸에 커다란 암덩어리를 죽기 직전까지 모르고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렸던 그 친구의 삶이 지금 내 삶비슷하게 느껴지면서 큰 허무감이 밀려왔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지, 지금 행복한게 맞는 건지.. 아니면 행복한 척하는 건지.'


친구의 장례식을 다녀온 뒤부터 이런 종류의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고 결론은 아주 절망스러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나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겠다고 회사도 한국도 뛰쳐나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매일 주방에서 앉아서 쪽잠을 자고, 밥도 제때 챙겨 먹지 못하고,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웃으면서까지 내가 하려고 하는 게 무엇이었는지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물론 이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한 것도 내가 정말 간절히 원했던 일 중 하나였고, 운영하면서 행복한 순간순간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그냥 지금 현재가 불행했다.

몸도 너무 많이 약해져서 사나흘 걸러 아프고 지긋지긋한 불면증상에 많이 먹지 않는데도 살은 점점 찌는 것 같고 생리불순은 기본에다 연애랑은 담쌓고 산 지 어언 2년째였다.

예전에는 손님들이랑 이야기하는 게 정말 큰 기쁨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손님을 가리게 되었다.

친해지고 싶은 손님, 귀찮은 손님, 진상 손님 등 어느 순간 내가 나만의 편견으로 손님들을 나누고 있더라..

자꾸 방에 있게 되고, 소통은 차단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돼주고 그나마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던 존재는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는지 나에게 실망이라는 말만 남기고 나를 떠났다.

'죽고 싶다'라는 말을 실제로 입으로 내뱉어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런 말과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마저 먼저 간 친구에게 죄를 짓는 거 같아 더욱더 괴로웠다.


다시 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위로하고 들여다보고 이유를 찾아야 했다.


우선은 잠을 아주 많이 잤다.

무력감과 좌절감에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었기도 하고.. 피렌체는 그런 나를 타죽이려는 듯 2주 넘게 40도를 웃도는 날씨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체력이 조금 회복되고 나서는 영화들을 찾아보았다.

'심야식당 1,2' '카모메 식당' '안경' 등 대표적인 일본의 힐링 영화들과

'가. 오. 갤 1,2' '해리포터 시리즈' '신비한 동물사전' '닥터 스트레인지' 등 별생각 없이 볼 수 있는 SF/판타지물이 나의 선택이었다.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는 우주와 마법 같은 이야기들은 나에게 도피가 되었다.

우리네 현실을 너무 반영한 영화들은 가끔 씁쓸함을 불러오는 반면 내가 선택한 장르에서는 배경부터가 그런 생각들 따위는 들지 않고 그저 선량하고 착한 영웅인 주인공이 이기는 장면을 보면서 유쾌함과 재미만 느끼면 되어서 우울감이 조금은 사라졌다.


일본 영화들을 보면서 손님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꼭 무엇을 해주고 억지로 친해지려기보단 그들이 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때가 떠올랐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행복해지던 내 마음, 그리고 진심을 나눌 수 있던 시간들.

작은 감사에도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 지금까지도 쭉 이어져 오고 있는 소중한 인연들.

그랬던 내가 언제부터 돈을 좇아 내 몸을 망가뜨리고 손님들이 싫어질 정도로 일을 하고 있었는지.. 잊고 지내던 초심이 기억이 났다.


그냥 욕심은 조금 내려놓고 진심만 다하면 되는 일이었다.


책도 읽고 음악도 아주 많이 찾아서 들었다.

책은 잡생각으로 가득한 내 머릿속을 정리해 주었고, 음악이 주는 강력한 위로의 힘을 새삼 느끼면서 그렇게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친구는 나에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쉼의 시간을 선물해 주고 간 것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작은 목표들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건강을 되찾기 위한 다이어트와 운동, 잠시 놓고 있었던 이탈리아어 공부 등이 그것이었다.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미친 듯이 춤도 추고, 식단 조절을 시작했으며 요가매트를 샀다.

설거지할 때 예능을 틀어놓는 대신 이탈리아어 강좌를 틀어놓았다.

그래도 내 안에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남아있었는지 이런 시간들을 통해 나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잊지 않기로 했다!


내가 이 일을 왜 좋아하는지, 내가 언제 행복한 지.. 그리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 순간들을 기록해 놓기로 했다.

사실 글쓰기를 하는 것 자체도 내가 회사를 떠났던 이유 중 하나인데 그것마저 미루고 있었으니..

(커피 한잔 여유롭게 마실 시간, 책 한 권 읽을 시간, 글 하나 적어볼 시간이 없다는 게 나의 가장 큰 퇴사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지내면서 가장 큰 장점인 많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공유하고 싶어졌다.

그들이 살아온 여러 다양한 삶들을 통해 내가 얻게 되는 생각들이 일회성으로 스쳐가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되새김하고 그게 최근의 나와 같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과 혹은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이것이 내가 새벽 3 시인 지금 웃으며 글을 적고 있는 이유다!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고 있는 나의 이야기는 그래서 지금부터 시작이다.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들은 좀 더 밝은 톤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 이야기는 사람일 수도 사건일 수도 아니면 그날의 나의 감정일 수도 있겠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행복하다!

그리고 이 시작이 그냥 일회적인 자기 위로가 아닌 꾸준히 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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