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첫 12월의 개국공신들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던 그 겨울밤의 이야기

by 피렌체장탁
겨울 저녁 파티 사진



개국공신 - 나무 위키
어떠한 집단이나 행사 등을 키우는데 크게 공헌한 사람을 XXX의 개국공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통의 경우 다 망해가던 기업을 살린다던가, 시청률도 조금밖에 안 나오던 TV 프로그램을 연기력 등으로 소화해내어 시청률을 올리는 데에 기여한 사람이나, 방송국 개국 시절에 방영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개국공신이라고 부른다



탁하우스에도 개국공신이 있다.


개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설픈 응대와 잦은 실수를 하는 초보 사장을 너그러이 이해해주고 타국에서의 첫 연말을 혼자가 아닌 여럿이 나눌 수 있게끔 이 공간을 가득 채워준 따뜻한 사람들.

무엇보다 그 연말 바이브를 여기저기 부지런히 전파해주어서 우리 집이 자리 잡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들 말이다. 꼽자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지만 '첫 12월의 개국공신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016년 11월 중순, 부동산 계약을 무사히 마치고 이 집에 입성했다. 계약 전에 보러 왔을 때는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방들이 꾸며져 있었는데 페인트칠을 새로 하느라 기존의 방 세팅은 모두 해체되어 있었다. 방 하나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이케아 침대들과 매트리스 그리고 텅 빈 나머지 4개의 방이 날 맞이해 주었다.

한국에서도 무언가 만들거나 조립하는 데에 똥 손으로 유명했던 터라 참으로 막막했다. 꾸미는 것 또한 잼병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게다가 집 계약 전에 머물던 숙소에서 옮아왔는지 유럽의 그 악명 높은 베드 버그에 당해버려 며칠간을 앓아누웠다.


'아... 시작부터 만만치 않구나. 베드 버그라니... 베드 버그가 나오면 그 숙박은 무조건 망한다던데. 산뜻한 시작이로구만! 허허허'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뒤돌아볼 수 없었기에 일단 집주인한테 연락을 해 방역업체를 불러달라고 했다. 소독하는 데에 방 하나당 300유로를 달라고 했다. 방이 총 5개이니 1,500 유로면 또 한국돈 200만 원이 넘게 깨질 판이었지만 나한테 다른 선택은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위생 하나만큼은 확실히 하고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에 큰돈을 들여 집안 전체를 소독했다. 아직도 그 방역업체 직원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속옷을 빼고 모든 옷을 다 벗더니 투명 비닐로 된 방역복을 입고 소독약 통을 어깨에 매던 충격적인 비주얼이 생각난다. 그때는 말 한마디도 못했던 때라 설명도 못 알아듣고 변태인 줄 알고 집 밖으로 도망 나갈 뻔했다.



베드 버그의 실태(혐짤주의)


소독을 하고 한 3일간은 온 집안의 창문을 다 열어두고 살았다. 벌레에 물려 몸에서는 열이 나는데 춥기는 또 춥고 오픈전부터 그냥 다 때려치우고 도망갈까 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이미 들인 돈이 많아서 그럴 순 없었다. 그런 혼돈 속에서도 침대를 조립하고 가구를 재배치하며 일주일을 보냈고 11월 20일 즈음 탁하우스의 정식 오픈을 할 수 있었다!


기존 상호를 사용하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홍보를 다시 해야만 했다. 그 전 민박집 이름으로 쌓여있던 좋은 리뷰들과 카페 회원수를 활용할 수 없는 것은 너무 안타까웠지만 나의 공간이니 내 이름으로 시작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나한테 넘기기 전에 두 달가량 민박집을 닫아두었었기 때문에 기존 예약을 넘겨받은 것도 많지는 않았다.

바닥부터 시작하는 짜릿한 느낌!! 나의 선택이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무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에 운영하던 사장님이 주변 민박주 분들을 많이 소개해 주셨고 그분들이 다들 좋은 분들이라(적어도 그때는) 나를 앞다투어 도와주려고 하셨다. 민박운영의 노하우라던가 그간의 경험담도 공유해주실뿐더러 제일 좋았던 건 본인들 집 예약이 꽉 차서 자리가 없으면 우리 집으로 손님을 보내주시는 것이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듣보잡 민박집에게는 그렇게 오는 손님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귀한 첫 손님이 되었다.


토니 오빠는 내가 친구와 기차역 앞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열심히 썰고 있을 때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저 지금 역 앞 맥도날드인데 숙박 가능한가요?"


아니.. 이런 대책 없으신 분을 봤나. 12월이면 피렌체는 꽤 성수기에 속하는 시기인데 이렇게 도착하고서 숙박을 구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무 맛있게 저녁을 먹고 있던 터라 귀찮은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신생 민박의 사장이었을 때라 포크를 내려놓고 일어서며 답장을 보냈다.


"네, 그럼요~ 당연히 됩니다 ^^ 제가 모시러 갈게요!!"


그렇게 의도치 않은 픽업 서비스까지 동반하며 오빠를 맞이했다. 방으로 안내한 후 다시 나온 오빠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가나에서 오셨다고 했다. 여러모로 심상치 않은 첫인상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괴짜인가라고 생각했던 오빠는 사실은 엄청난 지식과 감성의 소유자였다.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해도 그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과 조예를 가지고 있어서 마치 '알쓸신잡'에 참여하고 있는 패널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음악, 미술, 와인, 음식, 역사 심지어 요즘 아이돌이나 한국 트렌드까지 단어 하나만 툭 던져도 밤이 새는 줄 모르는 흥미진진한 대화가 가능했다. 감성도 얼마나 풍부했냐 하면 근교인 '아씨시'에 다녀와서는 그곳에서의 감동적인 체험을 이야기하다가 울컥 눈물을 터트리기도 했다. 난 종교도 없는데 오빠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 대한 풍경 묘사가 얼마나 생생했던지 그 성스러움에 같이 취하여 얼마 뒤에 바로 '아씨시'에 방문했고 그곳은 나의 이탈리아 최애 도시가 되었다.


이런 오빠의 영향이었는지 그때 왔던 손님들 모두 처음 만난 사람들 같지 않게 깊고 폭넓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매일 밤 우리는 주방에 둘러앉아 맛있는 와인과 음식을 즐기며 겨울밤을 보냈다. 영국 비달사순 스쿨에 교육 연수를 왔었던 예쁜 진휴와 진아, 묵묵히 남의 말을 경청하며 씩 하며 웃던 순하디 순한 상배, 비싼 카메라와 삼각대까지 꺼내가며 열정적으로 저녁 만찬 사진을 찍어주었던 윤종이까지 모두 짧았지만 한 가족 같았던 그 겨울밤을 잊지 못해 아직도 서로 안부를 전하며 살고 있다. 토니오빠와 윤종이는 그 뒤에도 한번 더 놀러 오기도 했다.


그날들에 찍었던 트리와 촛불, 그리고 음식 사진들은 우리집 홍보를 할 때 메인사진으로 정말 많이 이용되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 사진들만으로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인지 잘 전달되었던 건지 후에 온 많은 손님들이 그 사진을 언급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통해 손님들과 보내는 시간을 즐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연말 분위기 물씬 나는 탁하우스의 저녁 만찬



재욱, 효민, 상린이는 ‘세 친구’ 다.

‘세계를 여행하는 친구들’ 이 그들이 내건 이름이자 슬로건이었다.

26살의 청년들은 한국에서 한참 치열하게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나이에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재욱이는 롯데월드 아르바이트, 효민이는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퇴사했고, 상린이는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탁하우스 오픈 이벤트로 재능기부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음악, 영상, 그림, 사진, 글 등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기부하여 우리 집 홍보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숙박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기획은 그러했으나 난 사실 리뷰라도 하나 잘 써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신청을 받았는데 그중 '세 친구'가 오게 되었다.

이들은 한 기업의 지원을 받아 유럽을 여행하며 영상을 찍고 있다고 했다. 지원을 받긴 하지만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 집에 와서 숙박 제공을 받게 되었다. 도착해서 제일 먼저 물어본 정보가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ALL YOU CAN EAT' 초밥집이었으니 참으로 절절했다. 그때는 오픈한 지 2주 정도밖에 안됐을 때라 도착 후에 나와 같이 이층 침대를 조립하기도 했다. 나도 처음, 그들도 처음이라 제대로 조립하지 못하고 흔들거리는 이층 침대에서 아슬아슬 숙박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사다리도 없어서 뛰어올라갔는데 그때는 그것도 재밌다고 웃었으니 얼마나 순수하고 무모했던가.


재욱이는 매사에 확신에 가득 차 있었고 자신감 넘치는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처음 얼핏 보면 네 가지가 없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그 누구보다 정이 많고 남을 많이 신경 쓰고 배려하는 녀석이었다. 스승의 날에 나보고 스승이라며 다정한 카톡을 보내주고 한국에 갈 때 심심하다고 연락하면 늘 달려 나와 주던 녀석도 알고 보면 재욱이었다. 상린이는 보컬 트레이너답게 멋진 목소리와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숙박하던 친구들 중에 사귄 지 1,000일이 된 커플이 있었는데 저녁 술자리에서 그들의 기념일을 축하하며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불러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곡 선택은 살짝 애매 하긴 했지만 겨울밤 감성 돋는 상린의 보컬은 탁하우스를 분위기 갑 감성 주점으로 만들어주기 충분했다. 효민이는 씩 웃는 미소가 귀여운 친구였다. 부드럽고 스마트해 보이는 인상 뒤에는 의외의 똘끼가 숨겨져 있었는데 그게 또 반전 매력이었다. 셋은 셋이라서 밸런스가 맞았다.


그들이 머무는 동안 숙소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멋진 '홍보 동영상'까지 제작해 주고 갔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나의 가장 든든한 응원군으로 내가 진행하는 모든 행사에 적극 참여해주고 늘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준다. 덤으로 청춘과 열정만으로 여행을 다니던 그들이 지금은 성공한 청년 CEO가 되어 누나 술 값 걱정은 덜어주고 있으니 더욱 든든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창수와 승복이다.

둘은 고등학교 친구라고 했다. 서로 다른 매력으로 훈남임을 자처했는데 한참 누나인 내가 보기에도 참 귀엽고 풋풋했다. 이들은 우리 집 4층에 있던 다른 민박집에서 오버부킹이 되어 내려오게 되었는데 붙임성이 좋아서 처음부터 '누나, 누나' 하며 날 잘 따랐다. 밖에서 이미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와서 또 저녁 술자리에 함께 했는데 그만큼 술을 좋아하고 즐기던 친구들이었다. 숙박했던 기간은 2박으로 짧았지만 체크아웃을 할 때 포옹을 하며 괜히 콧 끝이 시릴 정도로 정이 푹 들었었다.

그리고 이들과의 인연은 그 뒤로 더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 친구들은 '민박집'을 창업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흘려들었지만 말만 하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2019년 먼저 승복이가 일을 배워보겠다고 우리 집 스텝으로 왔다. 당시 나는 친구와 2호점까지 열어 운영하고 있을 때라 일손이 모자라던 2호점으로 배치되었다. 귀여운 외모의 승복이는 여자 손님들에게 단연 인기 만점이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센스와 배려가 남달랐고 매너도 있으니 손님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요리도 잘하고 자기 관리도 열심히여서 모든 게 다 좋았는데 다만 한 가지 나에게 늘 1호점에서 같이 일하지 못해 서운하다고 징징대는 것이 주사여서 개인적으로는 좀 힘들었다.


창수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안부를 물어보고 연락을 해왔다. 승복이를 스텝으로 추천해서 우리 집에 오게 한 것도 창수였다. 승복이와는 다른 침착하고 어른스러운 매력이 있는 친구였다. 창업자금을 모으기 위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내가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늘 연락을 주고 행사에도 참석해주고 하면서 실상 우리의 인연을 이어오게 해 준 일등공신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2021년 겨울 체코 프라하에 꿈을 이루러 왔다. 코로나 상황으로 포기할 만도 했는데 결국 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특하고 대단해 보였다. 창수는 본격 오픈을 앞두고 좀 더 배우고 싶다며 '실습생'을 자처하여 2021년 12월 우리 집에 왔다. 꽉 채워 5년 만에 돌아온 감격적 순간이었다. 민박일을 안 하다 하느라 조금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의 나를 도와주러 온 창수는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미루었던 페인트칠이나 집을 재정비하는 데에도 자기일 처럼 나서 주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따뜻한 연말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사실 상 짧은 2박의 숙박을 하고 간 이들임에도 '개국공신'으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나한테 있어 처음으로 애정을 듬뿍 담을 수 있었던 손님들이었기 때문이다. 아.. 손님들하고도 이렇게 '진짜 인연'으로 거듭날 수 있구나라고 알려준 존재들. 그리고 그렇게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이들의 노력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한 명이고 매일 10여 명의 새로운 손님들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머무를 때에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 인연을 모두와 계속 이어나가기는 사실상 힘들다. 내가 답을 하든 하지 않든 무신경해지거나 바빴을 때도 이들은 끊임없이 연락을 하고 나의 행보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며 응원해 주었다. 심지어 일련의 사건들로 내가 이들과의 인연을 끊으려 했을 때도 여러 번 화해의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런 노력들로 인해 손님에서 친한 동생들로 긴 인연이 이어질 수 있었고 '손님'을 '손님'으로만 보던 내게 손님에 대한 애정을 좀 더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던 존재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애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손님들을 대하는데 어느 손님이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풋풋했다 우리 정말



이렇듯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오픈 첫 해 12월 나에게 영향을 준 존재들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맞이한 거의 첫 손님들이기도 하다. 첫 손님들에 대한 추억과 인상이 너무 좋았던 것이 내가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을 필두로 '소중한 인연' 들은 그 뒤로도 수 없이 많지만 처음은 늘 의미가 깊은 것 같다.


'베드 버그', '에이전시 사기', '한 겨울 오픈', '상호명 바꿈' 등의 악재로 시작했던 '탁하우스'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로 가득 차고 핫한 신생 민박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이들 덕분이었다!

손님이었지만 친구가 되어주었고 나의 일이었지만 자신들의 일처럼 늘 응원해주었던 이들이 내 첫 손님이었기 때문에 나는 나의 공간을 사랑할 수 있었고 손님들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의 '피렌체 탁하우스 이야기'는 이들을 필두로 손님이자 소중한 친구들에게 보내는 나의 '세레나데'이다.


다음은 당신 차례이니 충분히 즐기며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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