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분명 밥 해준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고 저녁 먹은 뒤에 술자리 안주는 또 뭘 만들어 주지...라고 고민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눈떠서 밥 해 먹이는 데에 하루를 다 쓴 지도 벌써 일주일째였다. 난 분명히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공사판 함바집 아주머니가 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지금 뭐가 한참 잘못돼도 잘못된 것 같다!
시작은 순수한 호기심과 선한 호의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진짜 진짜 조금의 장삿속도 포함되었었지.
내가 병준이를 알게 된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 2016년 민박집을 차리고 나서 이런저런 홍보로 고민하던 차에 일단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여행 인플루언서들을 모조리 팔로우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그들은 지금만큼 파급적인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랑'이나 '유디니' 같은 여행 커뮤니티가 한참 성장하고 있을 때였고 그들이 올리는 여행정보나 추천에 우리 집 이름이 올라가는 것은 더없이 좋은 홍보수단이었다. 뭐.. 시작은 그랬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들의 여행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병준이와 누리 커플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지프차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차에서 자고 먹고 놀고 알콩달콩 여행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사진뿐 아니라 적어놓은 글들을 보면 그들의 열정이 느껴져서 마음이 더 갔다. 그래서 페이스북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 피렌체에 오게 되면 꼭 들르세요!! 제가 맛있는 한식 해드릴게요 :)'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눈 것이 전부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준이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 사장님, 제가 지금 여행 중이지만 패션위크 때 포토그래퍼로서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1월과 6월에 피렌체에 '피티 우모'라는 남성복 패션위크가 있어서 이번에도 출장 차 갑니다. 혹시 다가오는 1월에 숙소 예약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너무너무 좋죠!!!'
'아.. 그런데 저 혼자 가는 게 아니에요. 같이 일하는 동료와 후배들도 같이 갈 것 같은데요. 한 8명 정도 예약 가능할까요? 그리고 저희는 관광이 아닌 일을 하러 가는 거라 저녁까지 제공해주셨으면 하는데 그것도 가능할까요?'
당시 개업한 지 세 달쯤 되어서 아침, 저녁밥을 다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고 그저 평소에 좋아하던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온다는 것에 너무 신이 난 나머지 별생각 없이 모든 조건을 수락했다. 저녁밥까지 주면서 심지어 숙박비도 더 할인해 주었다. 다가올 미래를 모른 채 팬심으로 두근두근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들이 왔다! 포토그래퍼들!!!!
첫인상은 뭐랄까. 술자리에서 한 이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
"수염 안 기르면 포토그래퍼 못하는 거야?"
아침 일찍 일어나 8시 땡! 하면 밥을 흡입하고 저마다 채비를 했다. '피티 우모' 행사장이 우리 집 바로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나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나가서 단 한 명의 멋쟁이들이라도 더 카메라로 포착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썼던 것 같다.
시기도 참 제일 추운 1월과 제일 더운 6월이었다.
피렌체는 겨울에는 영하로 잘 내려가지 않아 많이 춥진 않지만 자주 흐리거나 비가 온다. 여름은... 그야말로 건식 사우나에 서너 달 사는 기분이랄까. 섭씨 39-40도에 달하는 기온에 내리쬐는 태양과 자외선을 잘 피하지 않으면 두피가 타오르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실제 타고 있는 걸지도! 길바닥에 계란을 깨서 놓으면 30초 안에 맛있는 계란 프라이를 만날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해가 길기도 길어서 새벽 6시에 해가 뜨고 밤 10시쯤 되어야 지다 보니 지열이 식을 겨를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습하진 않아서 태양을 잘 피해 그늘로 다니면 확연한 온도차를 느낄 수 있다는 점과 아스팔트 바닥이 아닌 돌바닥이라서 천천히 가열되고 천천히 식는다는 것이다.
일 년 중 가장 열악한 시기에 바깥에서 그것도 지붕 하나 없는 길거리에서 종일 사람들을 만나고 모델을 섭외하고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사진을 찍는 건 시작에 불과한 작업이었다. 그 뒤 좋은 사진을 셀렉하고 포토샵으로 보정을 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데 패션위크의 경우 현장감 있는 사진을 원하는 클라이언트들도 많기 때문에 거의 실시간으로 기한이 맞추어져 있는 경우도 있어 쉴 틈이 없었다. 말 그대로 고되고 대단한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좀 더 챙겨주고 싶고 밥이라도 맛있게 해주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분명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시작하긴 했는데 어느 순간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은 아침, 저녁을 하는 것에 대해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내 탓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체력적으로 힘들다 보니 정신적 여유도 사라진 것이었다. 또한 매일 밤 계속되는 술자리도 나에게는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물론 내가 술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진심으로 즐거웠기 때문에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밤 50병 이상 배출되는 술병에서 알 수 있듯이 마시는 양이 어마어마했고 숙취와 싸우는 일상이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술자리를 준비하는 것도 끝나고 나서 정리하는 것도 심지어 새벽까지 마신 후 다음 날 해장국을 끓이는 것도 모두 내 몫이었던 것이다.
또 그 시기에 그들만 손님으로 받았어야 하는데 일반 손님 몇 명도 함께 받다 보니 양 쪽이 다 신경이 쓰였다.
아침식사 같은 경우도 뷔페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포토그래퍼 친구들이 먹고 난 다음에는 늘 반찬이나 밥이 부족했다. 잘 먹는 게 좋기도 했지만 너무 잘 먹어서 문제가 된 것이었다. 또한 저녁 제공은 그들하고만 한 계약이었는데 주방이 오픈된 공간이다 보니 일반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들에게 맞추려다 보면 일반 손님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 같았고 일반 손님들한테 맞추려다 보면 그들에게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물론 이것은 속에서 일어나는 나만의 생각이었고 당시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매일 즐거웠고 활기찬 하루하루였다. 일반 손님들도 그 친구들이 있어서 더 즐거워했고 저녁 술자리에 가끔 특별히 초대되는 다른 사진작가나 모델 등 스페셜 게스트들이 있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나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대학교 때처럼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근처 공원으로 달려 나가 잔디밭에 둘러앉아 노상 술자리를 가지며 아쉬운 밤의 끝을 붙들기도 했다.
'좋긴 좋은데 너어무 힘들다!'
이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다음에 온다고 하면 예약 안된다고 해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그 다음 여름 그리고 겨울 시즌이 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래, 얼른 와! 보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 중 '제이림'이라는 인물이 있다. 툭 터놓고 말해 내가 제일 싫어했던 친구였다. 밥을 제때 주지 않으면 '난'이라도 일으킬 것 같던 그들이었는데 그 주동자 격인 이 친구로 말하자면 말투가 일단 투덜대는 말투였다. 억양이 센 경상도 사투리를 써서 더 그렇게 느껴질 수 도 있는데 매일 달고 사는 말이 "사장님, 오늘 반찬은 뭐예요? 내일은 뭐 해주실 거예요? 어디는 이런 것도 해주던데.. 이건 이렇게 해야 제 맛인데... 왜 이렇게 더워요? 추워요? 비가 와요? " 등등 불만도 질문도 아닌 그 어떤 애매한 중간 사이의 종류라고 할까. 안 그래도 체력이 달리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게다가 키도 크고 덩치도 컸던 이 친구는 우리 집 침대를 2개나 부쉈다. 침대만 부순 게 아니라 내 멘털도 부서졌지. 어떤 때는 와서 자기 물건이 도난당했다고 하기도 했다. 민박집에서의 도난 사건의 경우 책임소재를 가리기가 무척 어렵기도 하고 범인을 잡기도 어렵다. 그런데 온 손님에게 다 소문을 내고 우리 집에서 없어진 것이 확실하게 확인된 것도 아닌데 우리 집 사진을 태그해 도난당했다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렸을 때 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 진상놈아!!!!! 진짜 다른 애들은 다 받아도 너한테는 방 없다고 한다!!!'
내가 이런 마음을 숨기고 이 친구에게 잘해줬느냐 하면 어느 시점부터는 숙박 문의에 대해서도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전혀 반겨주지 않았던 것 같다. 집에 와도 대놓고 '진상'이라고 부르며 구박하기도 했다. 물론 친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이 먼 곳까지 매번 찾아와 주는 손님이자 동생에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불친절했다.
그런데도 왜 이 친구만은 2년, 3년이 지나도 계속 오는 거지?
다른 작가들이 다 일이 끊기거나 다른 일을 하게 되어 오지 않을 때도 제이림만은 계속 계속 우리 집에 왔다. 어떤 때는 혼자 오기도 했고 어떤 때는 모델이나 통역을 데리고 오기도 했고 처음에 같이 왔던 멤버들과 동행하기도 했지만 희한하게 이 친구만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왔다. 결국은 탁하우스 '최다 방문자, 최대 숙박일' 기록을 가지게 되기도 했다.
또 내가 올리는 글, 인스타그램 스토리, 내 소식에 매번 가장 빠르게 반응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 도 이 녀석이었다. 우리 집 홍보에 가장 열을 올리는 것도, 내가 하는 한국에서 주최한 행사에 큰 화환을 보내준 것도, 한국에 갈 때마다 제일 먼저 연락해 찐하게 한 잔 하자고 졸라대고 맛있는 걸 사주는 것도... 전부 제이림.
왜 이러나 싶고 귀찮기도 했지만 어느새 익숙해진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이 밑도 끝도 없이 의리 있는 녀석에게 물들어 버렸다.
어느 날은 이 친구가 물어봤다.
"사장님, 근데 왜 맨날 내 예약받아준 거예요?
순간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 왜 그랬을까? 대답은 물론 또 심술궂게도...
"내가 방 없다고 해도 네가 막무가내로 찾아올 거 같아서 그냥 받았어."라고 했지만 일 년에 두세 번 제이림이 안 오면 섭섭했다. 오지 말라고 구박하면서도 기다리게 되고 밥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구시렁대는 소리가 안 들리면 허전할 정도랄까. 결국엔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와 사귀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다.
2017 피티우모 포토 바이 제이림 작가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에 와있을 때는 그들이 지불하는 비용 이상으로 내가 너무 베풀고 있나 싶기도 했고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짧고 편협한 생각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이상으로 이들도 나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었다.
이 모든 인연의 시작이었던 병준이와 누리 커플은 세계여행 중 재정비를 위해 쉬어가는 곳으로 우리 집에 머물기도 했다. 그중 누리는 우리 집에서 혼자 2주 정도 나와 같이 지냈는데 아직도 그때 나누었던 대화들과 책임감 있고 똑 부러지던 누리의 모습은 무척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지금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데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쳐서 힘들어하는 내게 넌지시 툭 "우리 집에 와요."라고 권해 주었다.
이게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이유는 갑작스러운 자연재해와도 가까운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억지로 들어오긴 했지만 사실 서울 생활은 적응이 잘 안 되고 괴롭기만 했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사람들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불안정한 마음의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하지만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는 일단 나에게 익숙한 환경이자 분위기였다. 내가 운영하는 공간은 아니었지만 손님들이 계속 오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이다. 인식하지 못했지만 많이 힘들었던 나는 그곳에 가서야 숨통이 트였다. 자신들도 어려운 시기였을텐데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알아주어 초대해 준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푹 쉬고 체력과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가장 필요한 시기에 나의 마음과 몸이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선물해 준 것이다!
또한 이들은 지금까지도 늘 무슨 일을 하든 나의 의견을 물어보고 귀를 기울여주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한다. 언젠가는 제주도 난산리에 커다란 타운을 만드는 게 꿈인 병준이는 그 한편에 내 가게 자리를 늘 두고 있다고 하니... 내 인생 3라운드를 펼칠 장소로 이만한 장소가 어디 있겠나 싶다.
구체적 언급을 다 할 순 없지만 이들 말고도 '포토그래퍼' 들과의 좋은 인연은 아직까지도 쭈욱 잘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더 유명해지기도 했고 혹은 다양한 분야로 흩어져 활동하고 있기도 하지만 기회가 되면 늘 안부를 묻고 연락을 하며 만나기도 하는 내 곁에 좋은 친구들로 남게 된 것이다.
뭐.. 대부분 내 글에 나오는 존재들은 비슷하게 이런 결론으로 남겠지만 나를 정말 체력과 정신적으로 극한에 달하게 한 적도 있었던 이들이라 더욱 각별하다.
이 글이 유난히 안 써졌던 이유는 참으로 복잡한 감정이 이들에게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이 글로 인해 그들이 혹시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솔직하게 적고 싶었던 탓에 걱정이 되었던 것인데 지금 문득 깨달은 것은 이미 이들과는 내가 이보다 더 심한 욕을 써도 '허허 그땐 그랬지.'라고 웃어버릴 정도의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때 가장 진상이었지만 '2022 피렌체 탁하우스 어워드'의 '가장 오래된 VIP' 상은 단연코 이들의 것 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