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곧 마흔의 국제연애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야기
더 이상 연애에 환상을 가질 만큼 어린 나이는 아니다.
완벽한 상대도 완벽한 연애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왜인지 내어주는 것보다 바라는 게 더 많아지는 이번 연애는 과연 어떻게 될 것 인가.
그를 알게 되고 만나게 된 지 어언 일 년 반이 훌쩍 지나갔다. 중간에 6개월의 공백이 있었고 자주 만나지 못한 기간까지 다 더하면 지나온 시간에 비해 함께 한 시간은 찰나이고 쌓아온 추억은 정말 티끌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음의 거리는 시간이 더해갈수록 멀어져만 가는 기분이다.
처음에 그를 만났을 때 운명이 아닌가 생각했고 현실로 돌아와서도 그는 나에게 큰 기쁨이었고 위안이었다. 그는 귀여웠고 섹시했으며 나의 이탈리아 생활을 한 단계 더 넓혀주었고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그에게 서운함이 생기고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오해가 쌓이다가 혼자 마음을 접다가 그걸 눈치챈 그가 적극적으로 해명하면 또 풀어지다가 믿어보다가 그러다 다시 서운해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이런 게 연애인거지.. 하다가도 전혀 그를 이해해주고 싶지 않아 하는 내 이기적인 마음이 투명하게 들여다 보일 때마다 자신에게 놀라고 실망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나는 주는 사랑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내 기억도 그렇고 전 남자 친구들의 기억도 그러하니 그게 맞는 것 같다.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의심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까지도 어떻게든 구해서 주려고 했고 그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건 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해가 안 돼도 고쳤다. 그렇게 자기 파멸적인 사랑은 나를 불태웠고 상대도 불태웠기에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못했으나 적어도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나이 먹고 외롭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 시작한 이번 연애는 기본전제부터가 불확실했다.
'나는 과연 그를 사랑하는가? 아니 좋아라도 하는가?'
그와 보내는 시간이 좋고 데이트가 행복하고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Jo에게 내어줄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닐까? 팍팍한 외국살이에 나에게 마음의 여유라고는 없다. 사실 연애도 사치인데 그렇다고 혼자 계속 지내기는 싫었다. 현지인 한 명 사귀어서 정착하는 게 제일 지름길이라는 말을 애써 부정해 오다가 지친 나머지 그 말에 현혹되었다. 그때 마침 나타난 사람에게 기대고 싶었는데 그것조차 내 마음 같지 않자 곧바로 불만이 튀어나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아냐, 난 Jo가 좋아. 너무 좋은데 그는 내가 그를 신경 쓰는 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봐 자꾸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거야. 그는 나에게 확신을 주지 않잖아.'라고 생각이 수십 번 바뀐다.
지난달에도 별거 아닌 걸로 다퉜다. 나의 한국인 친구들은 이제 그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내가 싸울 때마다 욕을 하도 해대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직접 대면해 보니 신뢰가 가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나는 필터링 없이 이 의견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게 네가 그들 앞에서 나한테 키스하면서도 나를 여자친구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들이 뭐라고 하던지 간에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잖아. 그럼 우린 아무 문제도 없는 거야."
"아니, 난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제 내 친구들도 그게 문제라고 하니까 기분이 안 좋네."
"남의 말에 신경 쓰지 마.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우리야. 아무도 우리 감정이나 관계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어."
"그래 그건 네 말이 맞긴 하는데 내 요점이 그게 아니잖아!!!! 뭐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그런 질문이 왜 나와? 난 그냥 네 곁에 있고 싶어."
"됐다. 말을 말자."
그리고 며칠 뒤 아무렇지 않게 메시지가 온다.
"헤이, 벨라. 너 아직도 나한테 화났어? 네 친구들 때문에?"
그 능청스럽고 뻔뻔함에 또 부아가 치밀어올라 "이건 내 친구들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했더니 내가 너무 공격적인 사람이 되어서 실망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저녁 먹자고.. 그놈의 저녁.... 와인 한 병... 이젠 한숨부터 나지만 이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관계가 싫다고 밀어내면 더 다가오고 나의 거부를 거부하고 그래서 내가 더 잘해보려고 다가가면 또 조금은 선을 긋는 것 같은 이 멍텅구리 같은 Jo를 말이다.
이게 또 Jo만 그런 건가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내 미국인 친구 중 하나는 나보다 더 심했다. 그녀는 로마에 사는 이탈리아 남자를 만나고 있는데 친구로 알게 된 시간부터 연인처럼 지내고 있는 기간을 다 합치면 5년도 넘는다고 했다. 나도 그녀의 남자인 그를 몇 번 같이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역시 그녀를 자신의 '여자친구'라거나 '아모레'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도리어 내 앞에서 서로 이상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키 작고 글래머러스하고 굴곡진 그녀 앞에서 자기는 키 크고 마른 모델 스타일의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늘 전 세계로 여행을 다니고는 했는데 대부분의 비용은 내 친구가 내고 있었다. 심지어 자기 집인 캘리포니아에도 두 번이나 초대해서 온 가족과 함께 한 달 이상을 보내고 또 그 남자의 고향집인 나폴리에 가서 매 번 그의 가족과 연말을 보내는 데도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여자친구라고 부르지 않았다. 둘이 대화를 하면 늘 그의 핑계는 "넌 결국 미국으로 돌아갈 거잖아. 난 그게 두려워."
아니, 그게 두려우면 그녀 돈으로 여행도 가지 말고 걔네 집에 가서 한 달 넘게 신세 지고 그런 것 도 하지 말란 말이다. 그녀의 손을 잡지도 키스를 하지도 않아야지. 이 이태리 놈들아!!!!!!!
아.. 잠시 내가 너무 감정이입을 했다. 아무튼 그 관계를 보면서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혹은 내가 좀 나은 건가 싶어 위안을 삼았다. 어느 날 내 친구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처음에는 신경 쓰였는데 이젠 정말 상관없단다. 그가 자기를 확실히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명칭 따위는 상관없고 자기들은 행복하단다.
이런 식으로 몇 년을 지내다가 결혼한 커플들도 여럿 보긴 했다.
그러나 나는 도무지 괜찮지가 않고 상관없지도 않다. 친구 남편들도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그 명칭이라는 게 꽤나 중요하다고 한다. 그 명칭이 주는 책임감이 있는 거라고.
나는 이제 가벼운 연애가 싫다. 그런 건 너무 많이 해봤고 그런 관계를 즐길 에너지도 여유도 내게는 없다. 뜨겁진 않아도 따뜻하고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고 힘들 때 서로 기댈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원하는 것이다.
Jo와의 미래가 자꾸만 부정적으로 다가오지만 그는 절대 나를 놓지 않는다. 내가 떠나려는 기미를 보이면 그는 나를 꼭 붙잡는다. 이 나이에 이런 사람을 또 어떻게 만나겠어라고 약한 마음이 계속 든다. 그래서 이 연애는 끝날 듯 끝나지 못하고 있다. 좀 더 해피엔딩을 기다렸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이 글을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든다.
'차라리 그를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