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웃음과 웃는 얼굴이 좋아. 자기가 그렇게 웃을 때 매력적인 걸 알고 일부러 눈을 찡긋하는 게 재수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참 예뻐. 그냥 담배연기는 질색이지만 그의 수염에 묻어 나오는 담배향은 너무 좋아. 향수가게 Tabaco 향은 비교도 할 수 없단 말이지. 못생기고 투박하지만 굵은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귀여워. 이태리어 억양이 잔뜩 묻어 나오는 영어 발음도 좋고 남부 사람이면서 피렌체 식 이태리어를 구사하려고 애쓰는 것도, 그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귀여운 포인트 중 하나야. 뭐든 잘 먹어서 좋아! 술도 잘 마시고 심지어 우리 엄마가 담가서 보내 준 파김치를 미친 듯이 먹는 것도 사랑스러워. 심지어 요리도 잘하잖아? 그리고 무엇이든지 도전해보려고 하는 자세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너무 심할 때만 빼고는 좋아.
그런데 말이지. 내가 딱 하나 못 참는 게 있거든... 바로바로 남 탓 하는 거. 내가 예전에 진짜 사랑하던 남자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랑 결혼을 꿈꾸면서도 늘 남 탓 하는 모습에 '아 얘랑은 못 살겠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나란 말이지.
그런데 너.... 네가 그런 사람일 줄이야...
Jo와 만나기 시작한 지 6개월 즈음에 접어들었을 때 알게 되었다. 이 녀석 늘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 Colpa tua(sua)"
이탈리아 말로 '네 탓이야 or 그의 탓이야'라는 건데 그는 참 이 말을 자주 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나와 같이 있다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에도 그는 늘 변명을 하거나 남의 탓을 했다.
처음에 잘 느끼지 못했던 건 아무래도 우리가 외국어로 소통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나는 주로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남의 나라 말이다 보니 그냥 상황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다 보니 이게 전혀 그런 이유로 일어난 일이 아닌데도 늘 남의 탓을 한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남자와 오래 사귄 경험이 있는 친구나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한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보니 이것 또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특징이란다. 투 머치 토커인 것과 오지랖은 어찌어찌 넘어갔는데 이것 또한 그들의 특성이라니까 맥이 빠졌다. 이탈리아와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서 여기서 살고 있는 건데 친구들한테는 전혀 못 느꼈던 그들의 특징이라는 점이 Jo 에게서 유난히 도드라지게 느껴지다니.
아무래도 좀 더 깊은 관계를 맺어가는 단계이니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의 탓을 넘어 모든 일에 핑계가 참 많았다. 안되면 안 된다고 처음부터 말하면 되는데 질질 끌다가 결국 남의 핑계를 대면서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 번은 내 친한 친구가 성악을 전공하던 터라 공연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그가 밀라노에서 돌아오는 날이었어서 조심스럽게 혹시 올 수 있냐고 못 와도 정말 괜찮다고 하며 물어보았다. 그는 너무 흔쾌히 '당연히 내가 가야지'라고 하면서 초대해 주어서 고맙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막상 공연 시간이 다가오니 연락이 되지 않았다. 공연이 시작한 지 30분 정도 지난 후에 메시지가 왔다.
'정말 미안해. 기차가 연착이 됐어. 그래도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룸메이트가 할 말이 있다는 거야. 내가 약속이 있다고 했는데도 중요한 일이라고 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났어. 못 갈 것 같은데 어쩌지?'
나는 이미 공연하는 친구는 물론 같이 가는 친구들에게도 다 Jo 가 올 거라고 이야기를 해둔 터라 늦게라도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했지만 그는 결국 오지 않았다. 그는 바이크가 있었고 그의 집에서 공연장은 바이크로 7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였다. 그냥 피곤하고 오기 싫었던 거였다. 룸메이트도 중요한 이야기도 다 핑계였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친구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을 때도 여러 번 초대했지만 그는 매번 오겠다고 하고 마지막에 핑계를 댔다. 그래놓고서는 나보고 너는 왜 나한테 한국음식을 한 번도 만들어 주지 않냐며 타박을 하고는 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랐다.
반대로 나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자리라거나 심지어 그의 친구가 하는 전시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게 말이 쉽지 정말 나한테는 어려웠던 일이었던 게 나는 보통 하루에 체크인/아웃이 5-6개 있던 터라 종일 집에 몸이 묶여 있었다. 그런 초대를 받으면 어떻게든 한두 시간의 틈을 만들어 뛰어갔다가 오거나 친구에게 사정해서 집을 맡기거나 하면서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던 것이다.
그가 나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게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자기 가족과 친구들을 소개해 준 다는 건 당시 나에겐 큰 의미가 있었다. 그냥 가볍게 만나고 말 여자라면 가족이나 친구는 소개해 주지 않는 게 국룰(이탈리아룰)이라고 했다. 특히 가족중심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 내 존재를 소개한다는 건 날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여러 친구들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나를 존중한다거나 배려한다는 게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자리들에 집착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붙잡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이렇게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다녔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그 사람을 만나면서 느끼고 직접 판단하며 될 일을 평소의 나답지 않게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고 다녔었다. 얘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얘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문화차이인 건지 그런 게 궁금했던 것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던 것 같다.
"이탈리아 애들 원래 그래."
그럼 이탈리아 남자들은 원래 이런 건데 그게 나랑 안 맞는 건가? 너네들하고는 정말 잘 맞아서 결혼까지 한 거야?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평화로운 가정에 불씨를 지피고 싶진 않았다.
너무 답답해서 그와 이런 주제로 직접 대화를 시도하면 역시나 그는 내 핑계를 댔다.
"네가 늘 너무 바쁘잖아. 그래서 우리가 잘 못 만나는 거야. 넌 휴가를 길게 낼 수 도 없잖아. 같이 풀리아에 갈 수도 요트를 타러 갈 수도 없는 것도 네가 너무 바빠서 그런 거야. 그리고 넌 친구가 너무 많아. 넌 늘 친구들이 오잖아."
마치 우리 관계가 발전할 수 없는 게 다 내가 바쁜 탓인 것처럼... 매번 내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도리어 내가 듣고 있었다. 그놈의 '꼴파 뚜아(네 탓)'라고 할 때마다 그의 주둥이를 한 대 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나는 폭력을 싫어하는 문화 시민 이므로 속으로 여러 번 분노를 삼키곤 했다.
그럼에도 둘이 함께 있을 때 너무 다정한 그의 모습에 나는 그냥 눈과 귀를 막았다. 우리 둘 다 조금만 한가해지면 나아질 거라고 여름 성수기만 지나면 같이 풀리아에 가자고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면서. 이 연애는 분명 순조롭지 않았음에도 나는 겨우 찾아온 인연을 놓지 않고 싶었던 것이다.
예전에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을 큰 단점이 있었지만 다른 장점이 많으니까.. 그리고 나 또한 완벽한 사람이 아니니까 잘 맞춰가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 일이 일어났다.
당시 나는 내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와 별도로 작은 원룸 아파트를 구해서 따로 지내고 있었는데 그 집 또한 Jo 가 친구를 통해 구해 준 집이었다. 그런 식으로 틈틈이 현지인 찬스로 도움을 받고 있던 터라 더더욱 그를 놓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그가 종종 그 집에 놀러 오고는 했다. 그나 나나 여름이 다가오는데도 같이 먹고 마시고 해서 그런지 둘 다 통통히 살이 올라왔던 터였다.
어느날 그가 내 침대에 퍽! 하고 걸터앉았는데 갑자기 '뿌지직' 소리가 나면서 침대가 부서지는 게 아닌가...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에 나무로 된 대 하나가 아주 반 토막이 난 거였다. 분명 자기가 앉았고 부순 게 명백한 상황에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참 가관이었다.
"네가 평소에 무거워서 이게 약해져 있었나 봐."
"뭐라고????????"
"아 미안해. 근데 이게 원래 잘 안 부서지는데 그냥 부서진 게 이상하잖아? 나는 그냥 살살 앉았는데... 평소에 약해져 있었던 게 분명해."
"Jo, 너한테 책임지라는 소리 안 해. 그러니까 헛소리 좀 그만해 줄래?"
"아.. 미안. 나 근데 가봐야 될 거 같아."
"갑자기?????"
그렇게 그는 갔다. 그리고 그의 친구에게 내가 직접 부서진 침대에 대해 설명하고 사과하고 새 침대 틀을 사주며 변상할 때까지 그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내가 침대값을 입금한 날..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친구한테 들었어. 새 침대를 사줬다며? 왜 그랬어? 고칠 수 있었는데."
"너 연락도 없었잖아."
"아, 내가 밀라노였고 바쁘니까 어쩔 수 없었지."
"됐어.. 이젠 지겹다 너 핑계."
"마음 고생했으니까 우리 근사한 저녁을 먹자! 나 오늘 피렌체로 돌아가. 내가 널 위해 진짜 좋은 와인 한 병을 준비할게."
"됐어. 나 시간 없어.(마음고생한 거 알고는 있네)"
자기 친구였으니 자기가 설명하고 해결할 법도 했고 솔직히 뭐 침대값을 같이 물어 내리라고 생각은 안 했지만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친구한테 잘 이야기라도 해 줄 줄 알았는데 와인 한 병.... 그게 그의 보상이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잠수이별을 결심하게 된 것이.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이해할 것 같지도 않았고 또 다른 핑계를 댈 것 같았다.
나는 지쳤었다.
자꾸 약속을 어기는 그에게, 무슨 상황이 생기면 남의 탓이나 내 탓을 하는 그에게. 그는 변하지 않을 거야. 부서진 침대보다 내 마음이 더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는 늘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아는 한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문화 차이라면 그래.. 나는 이탈리아 사람하고는 사고방식이 맞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