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지 않는 이탈리아어와 늘어가는 몸의 대화

이탈리아 남자와 토마토 소스의 상관관계

by 피렌체장탁

Sex.


이탈리아 남자와 연애를 논한 다면서 이 주제를 뺀다면 엄청나게 섭섭하다.

넷플릭스 미드에서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농담에 따르면 더더욱 그렇다.


"비아그라? 그런 것 따위 필요 없어. 유 노 왓? 나 이탈리안 이잖아. 그렇지만 가지고는 있지. 내 평판을 유지해야 하거든 "


예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이탈리아 남자를 총 두 번 경험해 보았다. 잠자리까지 가는 깊은 관계로 봤을 때 그렇고 이탈리아에 온 지 8년 차인 것에 견준다면 나란 인간 참 건전하고 착실하게 일만 하고 살았던 것이다.

첫 번째 궁금해서 만나 봤으나 여러 면에서 안 맞다고 생각했던 그 유리공예 예술가 남자와도 딱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는데 그게 바로 속궁합!

'와우! 이건 좀 차원이 다르구먼. 이래서 이태리 남자, 이태리 남자 하는가 보다.'

어떤 피지컬 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을 잘 알게 되고 또 잘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


70대 할아버지도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로맨스가 가능하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라. 그곳이 바로 이탈리아인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할아버지들이 칵테일 한 잔 하러 가자고 젊은 여자들에게 길에서 말을 걸곤 하는데 이들은 정말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느껴지기 때문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 열려있는 생각이 부럽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여자를 잘 안다.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성 관념으로 인해 자유롭고 풍부하고 다양한 성생활을 경험해 보아서 그럴 거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자 강한 확신이다. 많이 해보면 잘하게 되는 것 또한 인생의 진리 아닌 가 싶다. 그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잘 수용하고 또 어떤 때는 말하지 않아도 정확히 상대방의 욕구를 파악할 줄 안다. 섬세할 때는 섬세하고 거칠 때는 거칠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속력이 굉장하다!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본 바에 따르면 토마토를 평생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하던데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어쨌든 체력과 정력이 굉장하다는 것은 비단 나의 경험일 뿐 아니라 여기 와서 살고 있는 많은 다른 친구들의 경험담으로도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까 뭔가 한국 남자들의 저항을 받을 것 같긴 해서 덧붙이자면 물론 한국 남자들도 훌륭한 분이 많이 계시다. 다만 전체적인 평균치로 봤을 때 이탈리아 남자들이 적어도 로맨틱한 성생활에 있어 전 세계 상위권에 위치한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견해이지만 다시 말하자면 미드에도 많이 나올 만큼 전 세계적인 인식이니까.


이렇게 장황하게 이탈리아 남자를 칭송한 이유는 단 하나다.


Jo는 그야말로 내가 만나 본 모든 남자들 중 에서 최고였다.


그게 내가 처음에 그를 쉽게 떠나지 못한 이유이자 다시 만나자고 했을 때 결국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이다. 인정할게. 인정하면 쉽다.

그는 일단 제대로 분위기를 잡을 줄도 달콤한 키스와 스킨십으로 예열할 줄도 알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나를 애달프게 할 줄도 알았다. 무엇보다 그를 빛나게 했던 건 사실 그가 거대했다는 것인데 이걸 자기 자신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렇게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다. 한 번 그와 관계를 하고 나면 2kg쯤 빠져 있었는데 정말 정신이 나갈 것처럼 힘들었지만 그만큼 만족감도 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데이트의 삼분의 이의 시간은 몸의 대화에 집중되고 있었다.

내가 원해서 그렇게 한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패턴이 굳어가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나도 똑같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다 보니 자꾸 이 사람이 단지 이 목적을 위해 나를 만나는 게 아닌가 라는 의심과 불만이 쌓여만 갔다. 그러면서도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으니 내 속마음과 몸은 따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를진대 또 그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였다.


제대로 해 본 건지 모르겠지만 국제 연애란 게 참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문화 차이로 인한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의 차이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이 놈의 말.. 언어 그게 사실 가장 큰 장벽이자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인 것이었다.


처음에 만날 때는 잘 느끼지 못한다. 상대방의 외적인 매력이나 처음 만남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호기심에 취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잘 들리고 어떻게든 소통하려고 애쓰니까 말이다. 그리고 할 말도 많다.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기본교육에서 배웠던 "어디서 왔니? 이름이 뭐니? 나이는? 취미가 뭐야? 어디를 여행해 봤어? 어떤 일을 하니?" 등의 질문만으로도 대화가 풍성하고 만족스럽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좀 친해질 때도 보통 자신의 호불호나 여러 번 말해봤을 과거 경험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 시간이 또 공백 없이 채워진다.

그다음 단계인 서로 친해질 만큼 친해져 궁금할 것도 별로 없어지고 일상을 공유하게 되고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때부터가 문제이다. 나한테 당연한 것이 그에게 당연하지 않아서 나의 행동을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 처음에 애정이 넘칠 때야 나나 내 나라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고 시시콜콜 설명해 주는 것이 오히려 재밌고 기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귀찮아진다.

' 아, 이것까지도 내가 설명해야 되는 건가?'라고 현타가 오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그렇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데도 상대방이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거나 또는 전혀 이게 공감받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게 보일 때이다. 한 마디로 내 말도 아닌 외국어로 어떻게든 골 아프게 내 행동이나 감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게 상대방의 왼쪽귀로 들어갔다가 오른쪽 귀로 나오는 것이 보일 때 이제 화가 쌓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감정이나 심리를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은데 그걸 일일이 설명하고 있어야 하고 특히 힘들어서 그 힘든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할 때 시도는 해보지만 공감받지 못하고 그런 일로 왜 힘들어하냐 는 반응이 반복된다면 어느 순간 입을 꾹 다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건 국제 연애가 아니라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소통의 문제 이긴 하다. 그렇지만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는 적어도 나오는 말이 그대로 이해는 되잖아. 알아듣고도 이해해주지 않는 것과 애초에 내가 하고 있는 말이 나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건 뭐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가장 가까운 단어나 표현을 찾아내야 할 때부터가 힘이 든다.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펑펑 나는데 네이버나 구글 검색을 해야 하는 내 꼴도 웃기고 겨우 찾아낸 단어가 지금 상황을 하나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면서 당황해하는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도 괴롭다.


그렇게 점점 대화가 없어져 가다 보니 할 것 이라고는 몸의 대화 밖에 없었고 우리는 가장 가깝게 밀착하고 있었지만 가장 멀게 느껴지는 비극을 써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관계의 진척이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이탈리아어 책을 애써 다시 펼치고 강의를 듣고 했지만 하루아침에 말이 느는 것도 아니라서... 그리고 그런 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늘 Jo는 영어로 소통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영어는 그의 말도 나의 말도 아니니까 오해는 겹겹이 쌓여만 갔다. 한국에서 연애를 할 때 느껴지는 깊은 친밀감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좋았다. 이래서 맘정은 잊어도 몸정은 못 잊는다는 말이 생기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래도 결국 한계는 있었던 것 같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하면서 혼자 힘든 일을 겪으면서 내가 찾던 연애상대는 쾌락과 재미보다는 아무래도 안정과 휴식 쪽에 가까웠던 것이다.

다 즐기고 나서 할 말은 아니지만 같이 손을 맞잡고 기대고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그런 꿈같은 상대를 아직도 꿈꾸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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