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주제가 없어요. 그냥 내 근황이랄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래.. 민박은 시원하게 관뒀다.
작년 9월 말에 건물주와 이야기한 대로 집을 정리하고 나왔다.
원래 같으면 빠르게 다른 집을 구하거나 알아봐서 '피렌체 탁하우스'를 이어가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민박... 이제.. 그만해야 할 때인 것 같았다.
아니, 그래서 너 이제 뭐 할 건데?
당장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니까.
많아진 시간만큼 글을 써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을 뿐이다.
모아놓은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피렌체에서 숨만 쉬어도 200만 원은 나가야 하는 판국에 다른 대책은 없었다.
우선 쉬자. 그리고 글을 쓰자!
그리고 웃기게도.. 그리고 지금 글을 읽는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이 1년 간 단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여행을 했다.
시간이 나면 가고 싶었던 '다합'에 가서 바다와 사막을 만끽했고 오랜만에 여유 있게 한국에 다녀왔다.
아버지 칠순이라는 핑계로 내 속내를 감춘 채 가족여행도 가고 그 간 못 보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한 달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 곁에 있으니 마음이 편했지만 지금 나의 불안한 현실을 정확히 끄집어내어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가 안부를 물으면 그냥 쿨한 척 말했다.
"나도 이제 좀 쉬어야지. 이탈리아 가서 외노자로 일만 했잖아."
그렇게 다시 웃으며 돌아온 피렌체에서 (어쩌면 다시 돌아올 필요 없었던) 나는 방향을 잃었다.
타국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이 너무나 오랜 버틴 결과였던 걸까.
내 에너지는 '제로'였다.
밥 한 끼 챙기기도, 아니 숨만 쉬기도 어려운 우울이 찾아왔다.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던 나는 사람을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았다.
방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평생 꿈꾸던 '빨간 머리 앤'이 살 법한 아름다운 집의 천창에 별이 보이는 다락방에 살면서도(월세 100만 원) 글은 한 글자도 써지지 않았다.
가끔 오래 지낸 피렌체 친구 3-4명과 소통하고 밥을 먹는 게 내 스케줄의 전부였다.
대부분의 시간은 누워서 글을 읽거나 영화를 봤다.
지독하게 고독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꾸만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이걸 읽고 있는 거야. 이 시간은 낭비하는 게 아니야.'
정말 정말 물이 떨어졌을 때나 전자담배를 사야 할 때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 내가 말 안 했나.... 나 전자담배.... 그거... 피게 됐다. 지금은 아니고. )
나에겐 멋진 룸메이트가 두 명이나 있었다.
외모도 직업도 훌륭한 이탈리아노들 두 명. 원래 같으면 벌써 너무 친해져서 별 이야기 다하며 파티를 10번도 더 했을 그들에게 나는 그저 '방구석 히키코모리'로 기억됐으리라.
이런 생활을 하면서도 스스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진 않았다.
나 평생 너무 열심히 일했으니까 이만큼은 쉬어도 돼. 이것도 자기 투자야... 맨날 하던 생각.
그 와중에 나에게 자주자주 연락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이제 막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던 중이었다.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거의 2년동안 나와 아이디어를 공유했었기에 이제 막 오픈을 앞둔 시점에서 하는 고민들을 나에게 또 공유했다.
귀찮기도 했지만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은 느낌에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며 내 의견을 말했다.
그저 그의 새로운 도전이 잘 되었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한 개, 두 개 과제를 던져주기 시작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그가 던져주는 일을 하면 월세 이상의 돈이 나왔기에 처음에는 월세 번다는 심정으로 그를 도왔다.
그는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엔 주로 '사용자 가이드' 같은 글이 중심인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나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한 발, 두 발 그의 사업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고...
어느새 매일 통화하며 어떻게 하면 그 사업을 활성화할 것인가부터 하루하루 생기는 이슈까지 시시콜콜한 일을 나와 공유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엮여버렸다.
어느 날 크게 싸웠다.
내가 생각하는 그가 부탁한 일의 범위와 그가 생각하는 내가 해줘야 하는 일의 범위가 달랐기에.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 일을 이대로 도와줄 건지. 아니면 끝내야 할지.
할 거면 도와주는 수준으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아예 같이 하는 일이지... 그러니까 내가 정식으로 그 사업에 함께 하거나 아니면 우리 (사적인) 관계를 위해 더 이상 못 도와준다고 말하거나.
한 이틀을 밤새 고민했다.
'이게 나에게 새로운 기회인 걸까? 어차피 글 한 줄도 못 쓰며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때 그의 한 마디가 주효했다.
"너 말이야. 좀 이상해.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거 같아. 너 우울증일 수도 있어. 나도 너무 힘들어봐서 알아. 그때는 정말 환경을 바꿔야 돼. 너 내가 말하는 대로 딱 6개월만 집중해 보자. 달라질 거야. 모든 게"
사기꾼 같은 그의 말에도 솔깃했던 이유는..
정말 티 내지 않는 내가 은근슬쩍 힘들다는 뉘앙스를 풍길 때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너 알아서 잘할 거잖아. 잠깐 쉬는 거지. 넌 뭐든 다시 하면 잘할 거야."
같은 대책 없는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구체적으로 말했다.
"너 일단 술을 6개월 끊어보자. 내가 금주 한지 몇 년 되어가는데 이게 한두 잔씩 가끔 마시는 거랑 아예 술을 끊는 건 좀 다른 의미야. 뇌가 아예 달라져. 완전히 집중해서 나랑 이 일 해보자. 진짜 한번 모든 걸 올인해서 일해본 적 있어?"
없었다.
난 그냥 대충 해도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는 '대충 2등 인생'의 대표주자.
40대를 맞이한 지금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상대가 실제로 내가 알던 본인의 모습과는 360도 변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믿고 따라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오픈멤버로 이제 그와 함께 플랫폼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고 그리고 우리 사업의 성공을 의심해 본 적도 없다.
(잘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핫)
20대 이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금주와 자기 절제.. 그리고 일에만 집중하는 삶.
왜 이제야 이걸 깨닫나 싶지만.. 이제라도 이렇게 살게 돼서 내 삶이 변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결론은..
난 지금 너무 잘 살고 있다. 돈은 뭐 여전히 간당간당하다.
내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미팅 하나에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스타트업 오픈멤버의 삶을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시기보다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일하면서 행복한 건 오랜만이다.. 민박 초기 때 정도..?)
주저리 했다.
그냥 알리고 싶고 쓰고 싶었다.
글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써본다.
그리고 이 마음을 전해본다.
나도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우울과 밑바닥을 알아봐 주고 끄집어내 줘서 고마워.
40대 미혼 그것도 해외살이 9년 차 경단녀를 고용해 줘서 고마워.
내가 잘하던 거 다시 잘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그래서 내가 지금 뭐 하냐고?
미용구인구직 플랫폼 셀렉미 ㅎㅎㅎㅎ
길고 긴 광고글이었냐고?
그건 아니다. 그래도 뭐 영업 대표 이사 격인 내가 언급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두서없는 글 혹시나 읽고 있다면
나의 근황이 궁금했다면.. 고마워요!
그리고 이 글을 쓴 두번째 이유.
다음 연재는 내가 스타트업을 시작한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재밌을거다!
언제나처럼 부족한 내 자신에 비해 과한 기대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