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따님의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의 저자 웃따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였다. 우울증 때문에 나의 심리에 대해서 유튜브에 찾아보던 날들이 있었고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웃따님의 채널이 떴던 것이다. 담담하게 미소를 띤 얼굴로 열심히 상담해 주시는 장면이 나왔다.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이면에는 가면성 우울증을 앓고 있는 웃따님이 계셨다는 것을. 애정결핍으로 인한 가면성 우울증으로 인해 다섯 번의 자살시도까지 했었다고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분인데 그 성실함 뒤에 중증 우울증이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던 나의 우울증의 이면에는 애정결핍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난 뭐든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뒤처진 것 같고 세상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어렸을 땐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도 없다. 어쩌면 애정결핍도 조금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웃따님도 그랬듯이 나도 많이 미숙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고 차가운 로봇과도 같았다. 내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할 줄도 몰랐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친구를 보면서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느낀 적도 있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남들에게 감정표현을 하는 방식이 나와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남편을 만나고 많이 변했다. 10년의 결혼생활 동안 나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매 분 매 초가 그랬다고는 볼 수 없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많은 것을 받았다. 남편은 내면이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에게 많은 걸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면성 우울증을 앓았던 저자가 처음으로 남편에게 가면을 벗었을 때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우울증 치료의 시작은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주변인에게 알림으로써 시작되는 것 같다. 나도 지금은 평소와 다른 우울감을 느낄 때면 ‘아 또 우울증이 찾아왔구나’ 자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저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심하게 앓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치료 중입니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창피하다거나 하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냥 마치 ‘제 이름은 아무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별다를 것 없이 느껴진다.
저자가 무섭고 강압적이던 엄마에게 속마음을 전달하고 위로받았던 부분은 어쩌면 모든 우울증 환자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관문인 것 같다. 나의 경우에도 우울증이 중증으로 발전되었을 때 부모님에게 지금까지의 서운함을 울부짖으면서 토로했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셨고 나는 그 뒤로는 부모님을 용서하고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우울증 치료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 부모도 자식을 다루는 데에 있어 미숙할 수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
행복은 타인이 정의 내려주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편해야 하는 것이고 조건, 환경, 성과처럼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인데 제 안에는 그게 없었던 것 같아요. 오직 목표와 열정만 존재했고 자유나 평안은 없었습니다
인간의 존재는 우주의 먼지만도 못하다. 그런데 뭘 그렇게 살겠다고 아등바등 부여잡고 인생을 살아가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김주환 교수님의 명상 교육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인간은 온 우주에서 정말 미미하고도 미미한 존재라고. 그 아무것도 아닌 존재. 내 자신이 뭔가를 꼭 이뤄내야 하고 아주 심각하게 인생을 살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죽어간다.” 그저 하루를 내가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면 그만이 아닐까. 나의 타고난 상황은 불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나만의 평안함을 추구하며 살지 아니면 괴로워하며 살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오롯이 나의 선택이다. 내가 어떤 목표를 위해 괴롭지만 달리고 있다면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정중독은 살면서 제일 무서운 중독인 것 같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나를 병들게 한다. 제일 버려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인정중독이다.
자존감이 낮은 미숙한 사람이었던 나는 학창 시절 때부터 친구들의 눈치를 많이 봤다. ‘저 친구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나한테 이런 행동을 하니까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구나.’ 따위의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책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자존감이 낮은 미숙이들의 특징이라고 한다. 어떻게든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이럴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의식적으로 체크해서 나의 과도한 생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여나 싫어하면 어떠리. 나도 상대 안 하면 그만인 것을.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살았었다. 그것부터가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또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할 수도 없고. 그냥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대로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대로 놔두면 그만이다. 인간관계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인정중독의 하나의 가지인 것이다.
어렸을 적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거나 강요, 억압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거짓 자아’를 갖는다고 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만 생존을 할 수 있는 어린아이들은 그야말로 부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따라서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부모의 기준에 맞춰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자신의 감정 표현에 서툴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진짜 생각이나 감정을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바로 내가 그런 경우였다. 나는 사실 지금도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표현하는 것에 서툴다. 많은 훈련을 통해서 내가 충족감을 느끼는 일, 감정 등을 알아내기는 했지만 그 과정이 정말 힘들고 오랜 기간이 걸렸다. 그만큼 나는 내 마음을 꽁꽁 숨기고 살아왔었다. 그러다 풍선처럼 한순간에 뻥 터져버린 것이었다.
성장 과정에서 자존감에 상처가 자주 난 사람은 다시는 자존감이 다치지 않으려고, 그러니까 깐 데 또 까이지 않으려고 매우 강박적이고 신경증적으로 인정과 애정에 목맵니다.
나의 완벽주의 성향이 왜 생긴 건지에 대해 어느 정도 대답이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성적에 강요를 받으며 자랐고 성적이 좋지 않으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렀다. 그러다 보니 강박적이고 신경질적인 면이 도드라졌다. 내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보니 원래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완전 반대로 태평하며 느긋하고 분주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30대 초반까지 나는 1분 1초를 아까워하며 살았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항상 미리 약속 장소에 나가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울증을 앓고 난 뒤로 나는 어떤 일에든 태평하게 행동하려고 한다. 상대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약속 시간에 많이 늦기도 했다. 그게 원래 내 본모습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그게 편했다. 주변인들에게 항상 완벽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했던 과거의 내가 빠졌던 인정 중독에서 나온 습성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목표주의적인 삶을 사는가. 그 목표에 사로잡혀 과정은 어찌 됐든 뒷전이다. 그러니 나 자신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괴롭다. 목표 없이 살라는 말은 아니다. 목표가 있되 그 과정 또한 즐기라는 말이다.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내가 있고 거기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인 시각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여유가 생기고 과정이 즐겁다. 책의 제목처럼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말고 인생을 향유하고 즐겨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객관적인 판단이 잘 되어서 목표한 일이 더 잘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유독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으로부터 나를 본 것
어떤 집단에서 그냥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으로부터 나를 본 것이라고 한다. 참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은 없었지만 역으로 생각해서 누군가가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한다면 그 사람은 나와 닮은 사람이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내가 너무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그 사람을 통해서 봤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싫어하는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나의 약점을 그 사람을 통해서 본 것이다. 만약 지금 내가 누군가를 이유 없이 싫어하고 있다면 어떤 점이 싫은지 파악하고 그것이 나의 감추고 싶어 하는 약점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나를 제일 모르는 존재는 바로 나다. 나를 똑바로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우울증의 치료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이와는 반대로 처음부터 사람에 대한 기대가 높은 편이었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니까 나도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저 사람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해‘ 라는 생각을 누굴 만나던 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굉장한 상실감과 자괴감에 빠졌고 그 사람이 나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 사람에 대한 굉장한 실망감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것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인데 나는 그 사람의 인정을 바랐고 그 사람 또한 내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철없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건 바로 내가 자존감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생활해 왔던 것이다. 이런 부분은 현재는 많이 고쳐져서 타인과 나를 분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사람에 의해 상처를 받으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많이 낮추게 되었다. 어쩌면 사람에 대한 기대를 처음부터 아예 안 하는 편이 나의 정신건강에는 더 이로울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착각하는 사람,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나는 요즘 들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열을 낸 적이 많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 칭찬을 하거나 친해지려고 다가오면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다. 앞서서는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많다고 했었는데 우울증이 발병하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머릿속으로 한번 더 꼬아서 받아들였다. 심각하게는 내 가족에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얼마 전 일이었다. 우울증이 좀 가라앉았다고 생각했었던 때였는데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 무심코 한 말에 내가 마구 열을 내며 성질을 냈던 것이다. 나도 당황했지만 동생은 아마 더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나는 그 길로 다시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힘들어서 나 자신을 많이 자책했던 일과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모욕감과 수치심이 잠식해 있다가 갑자기 어떤 트리거로 인해 올라오면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갑자기 공격성으로 발휘된 것이다. 이때의 나는 마치 본능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동물 같았다. 이 사건은 한동안 나를 굉장히 힘들게 만들었다. 타인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은 나를 정말 괴롭게 만들고 자존감을 바닥까지 하락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이좋았던 동생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 졌으니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기 바로 직전에도 회사 사람들 모두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래서 더욱 다니기 힘들었다. 회사를 가는 것 자체가 나의 자존감을 상실시켜 버렸으니까. 정말 우울증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병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도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이러한 잠재의식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서 휘발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힘들지만 의식적으로 과거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현재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