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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Oct 12. 2021

게으르고 자유롭고 쿨한 할머니

프란 르보위츠 (Fran Lebowitz)

영국 온라인 서점에 시선을 사로잡는 책 커버가 하나 있었다. 흰 셔츠 위에 남성미가 풍기는 회갈색 코트를 걸쳐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한 사람, 한 손엔 불붙은 담배 한 개비를 들고 있다.     

'뭐지 이 사람의 포스(force)는?'

책 표지 속 인물의 기운이 책을 뚫고 나오는 듯했다. 나는 묘한 기류에 이끌려 책 소개를 훑고 지나갔다. 책 내용이 나의 게으름을 압박할 난이도 있는 영어로 구성됐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책장을 빨리빨리 넘길 수 없을 책 같았다. 호기심의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게으름의 승리로 이 저자와의 인연을 나는 그렇게 서둘러 마무리했다.        

 

이로부터 얼마 후, 집에 한 달 동안 묵혀뒀던 가디언지의 책 리뷰 잡지에서 그 범상치 않은 인물을 다시 발견했다. 가디언지의 주말지는 기본 신문에 부록처럼 매거진을 따로 제공한다. A4보다 살짝 작은 사이즈에 26페이지로 구성된 얇은 책 리뷰 잡지에 그 사람의 인터뷰가 커버스토리로 실렸다. 그녀의 이름은 프란 르보위츠 (Fran Lebowitz). 그녀는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친구인 70세의 뉴요커이다. 그녀가 주연으로 선 마틴 스콜세지와의 두 번째 다큐 <도시인처럼( Pretend It's a City)> 이미 넷플릭스에서 큰 성공을 거둔 듯했다. 이 기세를 몰아 40년 전에 출판된 그녀의 에세이집 두권 <Metropolitan Life>와 <Social Studies>를 하나로 엮은 <The Fran Lebowitz Reader>가 영국에서 최근 출간됐다. 그래서 인터뷰가 실린 듯했다.


이곳에 실린 그녀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서 한동안 괜히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인터뷰에 보인 그녀의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말과 기이한 면 때문에 그랬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결코 없다. 어떻게 하면 감옥에 가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할까 하는 생각했다."


"나는 책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창밖으로 내던지고 싶은 인간들은 있다."

와 같은 위트 있는 어록을 인터뷰 기사에서 쏟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디지털 세상에 지배당하지 않고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녀에겐 휴대폰도 노트북도 없다. 언론사 인터뷰는 대부분 집 전화로 이뤄지고 피치 못할 경우 인터넷이 되는 친구네 집에 가서 줌 인터뷰를 진행한다. 디지털 노매드 삶이 대세인 요즘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그녀를 기이하다 여기게도 하겠지만 어찌 보면 그 누구보다도 소신 있는 삶이 아닌가 싶어 나는 그녀가 존경스럽다. 디지털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영 못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집에는 디지털 기기 대신 만권이 넘는 책이 있다. 팬데믹과 봉쇄령으로 뉴욕 집에 갇혀 지낼 때는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프란 르보위츠 특유의 퉁명스러운 태도가 요즘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그녀의 학창 시절에 그것은 흑역사를 만드는 퇴학 사유가 되었다. 십 대 때 학교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자, 책을 좋아했던 그녀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뉴욕으로 온다. 생계를 위해 택시 운전수 등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언더그라운드 잡지에 기사를 쓰고, 이후 앤디 워홀이 창간한 잡지 <인터뷰>에 글을 기고했다. 앤디 워홀을 비롯한 저명한 예술가들과 70년대 뉴욕 아트 씬의 중심부를 생생하게 경험한 산 증인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그녀 자체가 예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녀는 1981년에 출간한 <Social Studies>를 마지막으로 집필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90년대에 소설을 집필하기로 했으나 그것 또한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 좋아하는 그녀가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한 것은 강연이다. 한 인터뷰 영상에서 그녀는 글쓰기가 무척 힘든 일이라고 했다. 자기는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말로 한다고 했다. (글쓰기는 골방에 갇혀 인내심을 실험하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종종 생각할 때가 있다. 프란 르보위츠가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니 조금 위안이 된다.) 글쓰기 못지않게 말로 표현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나는 그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은 내키지 않으면 쓰고 지울 수라도 있는데, 말은 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어 더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교 중퇴자인 프란 르보위츠가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풍부한 사교 활동(그녀는 젊은 시절 늘 파티에 갔다고 다)으로 얻은 지혜와 만권이 넘는 책 친구들 덕분인 것 같다.         

 

성소수자인 그녀는 남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물론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 따위에 개의치 않는다. 다른 사람의 표정에서 조차 은근한 동의를 감지해야 마음이 편한 나는 그녀의 그런 면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나는 말주변도 별로 없고 누구와 언쟁이 생길 때면 헤어지고 나서 아니면 뒤늦게서야 할 말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종종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상황에 꼭 필요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꼭 필요한 말에 강한 힘과 위트를 은 그녀의 언변이 나를 즐겁게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을 사로잡는 그녀의 비결도 바로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저력은 내년 여름에 예정된 유럽 투어에서 런던 바비칸센터 강연 2회 모두 솔드 아웃된 걸로 증명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부지런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나는 종종 한다. 한국에서 자란 는 어릴 때부터 게으름은 퇴보라는 인식을 받아왔다. 내 주변만 봐도 부지런한 분들이 많다. 그들 사이에 있으면 느린 성품의 나는 가끔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엄마가 되고 나서 게을러져서는 안 된다는 무언압박감을 은연중에 받는다. 집안일과 육아를 하고 나면 나만을 위한 시간이 무척 짧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부지런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시간의 부족함을 느끼는데도 나는 생각만 많고 다른 사람들처럼 잠을 줄이진 못한다. 잠을 많이 잔 날엔 내 자신이 더욱 게으르게 느껴지곤 한다. 사실 적고 보니 나는 게으름을 정당화할 핑계와 변명을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이때,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은 게으르다고 당당히 밝힌 프란 르보위츠가 딱 나타났으니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으르고 자유롭고 쿨한 할머니의 말에 위로를 받으며 오늘도 나의 게으른 하루를 시작해본다.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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