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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Jul 11. 2021

순례자의 길을 여행하다

전시회에 가서 어떤 작품 앞에서 한참 머물러 본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작품에 최대한 다가설 수 있는 만큼 가서 가까이 보고, 조금 뒤로 물러나 멀리서 떨어져서 보고 옆에서도 한번 보고 그래도 자리를 떠날 수 없어 그 작품 주위를 맴도는 경험. 그런 작품이 때로는 당신을 울게 만들기도 한다. 내게 그런 경험을 처음 안겨준 작품은 윌리엄 터너의 작품 세 점과 트레이시 에민의 "My Bed"가 함께 전시되던 Tracey Emin, My Bed/ JMW Turne  전시회에서였다. 어둠 속에서 격정적으로 파도치는 바닷가 풍경과 그 옆에 더럽고 너저분한 침대와 꽁꽁 묶여있던 여행가방은 고군분투하는 나의 마음을 들킨 것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와 예술가의 작품들이 한 공간에서 같은 리듬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얼마 전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에 Igshaan Adams의 <Kicking Dust> 전시회에 갔다가 한바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닥을 거의 뒤덮은 카펫처럼 깔린 공예 작품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것을 바라본 지 오분이 채 되지도 않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나는 그 작품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비즈, 천, 무명실 등 다양한 색과 패턴의 서로 다른 재료들이 촘촘히 한데 엮여 하나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광활한 초원이나 산림으로 뒤덮인 대자연을 보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인간은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것, 종교적, 정치적 이념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고 피를 흘리는 것, 인종적 우월함을 내세우는 차별 같은 문제들이 거대한 자연의 세계 앞에서 한없이 무용하게 느껴졌다.         

카펫 위에 펼쳐진 자연과 함께 하늘에는 와이어와 비즈, 머리카락, 피부?(전시 리플릿에 쓰여있었음) 등 자연재료가 섞인 설치작품이 산 위의 구름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남아프리카 출신인 작가가 어릴 때 봤던 토속적인 춤에서 땅을 발로 차면 흙먼지가 피어올랐는데 그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산과 구름은 두발을 땅에 온전히 내린 인간과 갈피를 잡지 못해 안개처럼 허공을 떠다니는 인간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산과 구름을 공기처럼 둘러싼 전시실 벽에는 나일론 끈, 무명실, 폴리에스테르, 그리고 플라스틱, 나무, 유리 비즈로 만든 태피스트리가 전시되어 있었다. 태피스트리는 벽걸이나 가리게 등 실내 장식품으로 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이다. 어떤 평론가는 Igshaan Adams의 태피스트리를 보고 추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하였는데 정작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태피스트리는 초상화와 같다고 하였다. 나는 초상화라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이 작가가 카펫과 테피스트리를 한 땀 한 땀 만드는 (물론 4명의 어시스트가 있지만) 행위는 그야말로 도를 닦는 행위, 그리고 신과 자신과 대화하는 수행의 과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게 있어 창작은 불완전한 인물인 자신을 완성해가는 여정처럼 정의되는 것 같았다.


Igshaan Adams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의 일환인 집단 거주지법에 따라 백인과 달리 가난한 지역에서 자랐다. 그리고 피부색이 더 어둡다는 이유로 형보다 차별대우를 받았다. 또한 그는 미국의 한 현대 미술 비평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약물 중독에 가정 폭력을 휘두르던 괴물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어머니도 알코올 중독자였기에 부모 대신 그를 부양한 이는 외할머니였다. 그녀는 크리스천이었지만 손주들의 종교인 이슬람교를 존중했고 그들이 이슬람 교리를 계속 배울 수 있게 했다. 한때 그는 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자기 자신도 미워했었으나 이슬람교의 믿음으로 상처투성이이자 성소수자인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장례를 위해 시신의 몸을 닦는 것처럼 아버지가 자신의 몸을 닦는 퍼포먼스를 선보인적이 있다. 형과는 발을 씻겨주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속 응어리를 하나씩 예술 행위로 풀어나갔다.     

<Versperring (Barrier)>라는 태피스트리 작품은 이슬람교 도상학에서 이용되는 상징적인 모티브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으로 이슬람교적인 믿음은 정신과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중간중간에 조명을 받아 빛을 내는 반짝이는 비즈가 그 촘촘한 태피스트리 안에서 깨달음을 얻은 영혼처럼 영롱한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감동에 젖어 일렁이는 눈으로 그 빛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Versperring (Barrier)>, 2018

구도자와 같은 예술가인 Igshaan Adams은 나를 가슴 벅찬 순례자의 길로 그렇게 인도했다. 그 길을 걸으며 신에게 닿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어떤 것일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예술이라는 것은 어쩌면 종교 예식처럼 아름다움의 의미를 찾기 위해 온 정성을 다 바치는 성스러운 행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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