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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Jun 29. 2021

세계적인 작가의 사인본 책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출시된 상품을 사본 기억 나는 아직 없다. 그런데 최근 이런 제품에 대한 환상을 품어보는 경험을 했다. 명품처럼 고가의 물건이나 사치품도 아니고 다름 아닌 세계적인 작가의 사인본 책 때문이었다.   

 

쇼핑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 내가 그나마 자주 사는 것은 책이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와 마찬가지로 내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데 독서는 큰 힘이 되었다. 게다가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져 독서로 여가를 대신하다 보니 책을 계속 사게 된다.  구매하는 책 대부분은 아이 책이고 내 책은 그중 이십 프로 정도 된다. 영어로 책 읽기는 내게 공부 같고 귀찮아 영국 서점에선 꼭 보고 싶은 책만 산다. 봉쇄령 기간에는 꼼짝할 수 없으니 워더리(Wordery), 블랙웰즈(Blackwell's), 포일즈(Folyes)의 온라인 서점에서 자주 구매했다. 그러다 외출이 가능해지면 영국에서 가장 많은 매장을 보유한 워터스톤즈(Waterstones)에 간다. 베스트셀러 같은 대중적인 책을 저렴히 구매할 수 있어 대형마트로 가끔 책 쇼핑을 가기도 한다.

9월에 나올 샐리 루니의 신작 소설

그런데 얼마 전 포일즈에서 받은 이메일을 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샐리 루니의 신간이 9월에 출간될 예정인데 미리 한정해서 사인본 100권을 온라인 서점에서만 추첨 판매하겠다는 것이었다. '100권 한정'과 '사인본'이라는 단어에 순간 내 심장이 빨리 뛰는 게 느껴졌다. 샐리 루니라면 소설 <노멀 피플>로 부커상 역사상 최연소 수상 후보에 오른 인물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노멀 피플>은 전 세계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 다수의 유력 일간지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BBC에서는 드라마로 제작해 방영했다. 작년에 나는 BBC 드라마로 이 소설을 접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로부터 바턴을 이어받을 이 시대의 청춘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세계적인 소설가의 사인본이라니...'사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쪽으로 조금씩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소비 충동을 내려놓고 나중에 시내 서점에 사인본이 풀릴 거라고 기대에 가까운 추측을 내놓았다. 시간이 지나도 생각이 나거나 필요하면 그때 사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작 <클라라와 태양> 사인본을 시내 서점에서 판매하는 걸 이미 4월에 보았기 때문이다. '내 운을 시험할 겸 재미 삼아 한번 구매해볼까'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경험상 저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그냥 구매한 사인본은 그저 글자가 몇  더 얹어진 것 밖에 별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였다. 눈이라도 마주친 일대일의 교감 대신 실체가 불분명한 독자라는 무리를 뭉뜽그려 막연하게 대하는 작가 사인은 왠지 감흥 없다. 게다가 추첨이라니! 그러면 사인본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는 셈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마케팅의 극대화를 위해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부추기는 다양한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을 출시한다. 어떤 사람들은 한정판을 갖고 싶어 일부러 몇 배의 돈을 더 지불하기도 한다. 나는 왜 세계적인 작가의 사인 한정판 책에 마음이 흔들렸을까? 일단 책 욕심이 났고 한국에선 없을 기회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희소성 때문에 한정판을 가지면 왠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누릴 거라고 기대한 것다. 물론 그게 오래가지 않을 기분이라는 것도 나는 안다. 그래도 지나가는 행인이 아니라 한 번쯤 남의 시선을 받아보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거랄까. 영화 속에서 관객의 뇌리에 박히는 감초 역할은 아닐지라도 조연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 비슷한 거라면 이해가 될까? 눈에 확 띄진 않더라도 무리 속에 묻혀서 안 보이고 싶지도 않은 마음.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사십춘기인가?  

 

내게는 엄마, 딸, 아내, 주부라는 타이틀이 있다. 생각해보면 불리는 이름이 다양한데 가끔 뭔가 허전할 때가 있다. 출생 신고서에 적힌 내 이름 석자로 불려지고 싶을 때가 있다. 생활인으로 살다가 런 날을 간절히 희망해보는 날들이 있다. 건조하고 어떤 무게가 실리지 않은 이름으로 불려질 날. 팬데믹으로 사람들과 교류가 적어지고 집에서만 주로 지내다 보니 내 고유의 이름으로 불렸던 날이 더 그리워진다. 사실 어찌 보면 이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요즘은 그게 그런 것도 아니라는 때 묻은 생각이 든다. 노바디(nobody)가 아니라 썸바디(somebody)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이제는 가끔씩 한다. 한국에 살았어도 이런 생각을 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해외에서 살며 만든 좁은 인간관계와 마이너리티인 이방인의 신분은 가끔 내가 투명인간이 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세상으로부터 지금과는 그냥 조금 다른 식으로 인정받고 싶다. 


쩌면 나는 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샐리 루니를 그저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친필 사인이 적힌 책을 부적처럼 가지고 있으면 그녀처럼 직업적으로 뭔가를 일궈낸 멋진 삶을 언젠가 나도 움켜쥘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삶에서 부적보다 더 강력한 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믿음이다. 어떤 것에 막연히 로또 같은 희망을 걸기보다는 진실하고 성실한 자신에게 온전히 기대는 마음.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은 온갖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포장된 허울 좋은 유혹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나를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내가 꿈꾸는 삶으로 나를 데려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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