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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Jun 01. 2021

엄마 사람을 말한다

영국문화계 소식

우리는 엄마가 되는 걸 여성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일로 여긴다. 하지만 이건 인생을 바꿔놓는 대사건이다. 아이를 통해 얻는 기쁨과 행복이 분 있지만 엄마가 된 여성은 새로 부여받은 정체성에 적응하느라 적잖은 난관에 부딪친다. 임신한 몸은 아기를 위한 보호소이자 영양분의 공급처가 되고 출산 후엔 신체적 후유증도 겪는다. 먹고, 싸고, 자고, 울고, 가끔 웃는 아이는 말로 의사 표현하기 전까진 주양육자인 엄마를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적어도 한동안(어쩌면 한 세월?) 엄마에게 모든 일의 우선순위는 아이가 된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책도 보고 강연도 챙겨보고 공부하지만 막상 닥치게 되는 낯선 경험에 엄마는 서툴기만 하다. 좋은 것을 주려고 조심조심 정성을 다해 키워도 때론 불상사가 생기기도 하고, 그저 운이 나빴던 일을 엄마는 자기 탓으로 돌리고 쉽게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영국 가정에 어린 아기였을 때부터 자녀를 혼자 재운다. 엄마의 독립적인 공간을 인정하는 양육방식이다. 워낙 개인주의가 우세한 사회이다 보니 영국인은 엄마 역할을 적당히 편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국 엄마들도 우리와 똑같다. 그들도 엄마 역할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요즘 영국 문화계에서 모성을 다룬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예술가들의 새로운 창작을 장려하는 런던 Battersea Arts Centre에서는 지난 4월 <The Motherhood Project>를 진행했다. 모성을 주제로 연출한 15개의 단편영화들을 온라인으로 선보인 프로젝트다. 각각의 단편영화는 엄마의 삶을 반영한 연극적 독백 형식으로 창작되었다.

작품성 있는 연극을 올리는 런던 Soho Theatre에서는 오는 10월 20일부터 한 달간 연극 <Mum>을 공연할 예정이다. 영국 공연상인 올리비에 상 수상자와 영국 BBC에서 방영되어 2019년에 미국 텔레비전 상인 에미상을 휩쓴 코미디 드라마 Fleabag의 제작자가 의기투합해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Mum>의 제작진은 대부분 양육자인 배우와 스태프의 상황을 고려해 리허설 시간을 조정하고 줌을 이용한 회의를 하는 등 양육 친화적 제작 환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2015년 영국에서 Parents and Carers in Performing Arts가 설립된 이래, 공연계에 이런 양육 친화적인 환경이 조금씩 조성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Mum> 출산 후 갓 엄마가 된 상황을 소재로 한 스릴러 연극이라고 하니 관객이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혹은 엄마들만 공감할 수 있는 독특한 긴장감을 가져다줄 것 같다.


BBC 2에서 최근 코미디 드라마 <Motherland> 세 번째 시리즈를 시작했다. 다소 괴팍하고 예의 없는 엄마 줄리아를 중심으로 개성 있는 캐릭터 5명이 좌충우돌 겪는 영국 초등 학부모의 상황을 그렸다.  민망하고 코믹한 상황에 처한 TV 속 학부모의 이야기가 현실의 엄마들에게 공감과 묘한 위안을 가져다주는 나름 힐링 드라마이다.

<Motherland, 출처:BBC>

2017년 첫 번째 시리즈 첫 에피소드는 줄리아 딸의 생일파티를 담아냈다. 영국에서 아이 생일파티는 나름 큰 행사다. 보통 파티 한 두 달 전부터 초대장을 돌리고 케이크와 음식, 구디백이라 불리는 작은 답례품 준비는 필수이다. 필요에 따라 파티의 주제를 선정하고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줄 엔터테이너와 장소를 섭외해야 한다. 한국에서 어릴 때 생일상만 차려주면 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곳의 생일파티는 초대 인원이 많으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엄마의 독창성과 조직력이 시험된다고 할 수 있다. 줄리아가 아이 생일 파티를 급하게 준비하며 애쓰는 모습은 영국 학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이야기이다. 내니 고용에 어려움을 겪던 워킹맘 줄리아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반 전체를 생일파티에 초대한다. 학부모에게 호감을 사고 나중에 도움을 받으려는 빅 픽처를 그린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파티 몇 시간 전부터 아프고, 우여곡절 끝에 예정대로 진행된 파티는 줄리아의 빅 픽처와 정 반대방향으로 나간다. 시리즈 초반 워킹맘인 줄리아는 이렇게 직장 일과 엄마 역할을 동시에 하느라 허덕이더니 나중엔 결국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전향한다.     

줄리아는 엄마 역할뿐만 아니라 딸 역할에도 부담을 갖는다. 갑자기 몸이 불편해진 줄리아의 친정 엄마는 잠시 줄리아의 집에 함께 살다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곧 떠날 준비를 한다. 줄리아는 해방감에 더없이 들떠있었다. 하지만 친정 엄마가 혼자 살기 어려울 거라는 의사의 전화를 받고 줄리아는 화장실에 가서 괴성을 지르며 통곡한다. 평소 친정 엄마와 원만하지 못한 관계였던 줄리아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과장된 면도 있지만 어느 정도 이해 된다.  


<Motherland>를 비롯해 위에 언급한 영화와 연극은 평소 우리가 터부시 하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엄마 됨을 주제로 평범한 부모, 성숙한 어른 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해준다. 어느 여름밤에 누군가로부터 시원한 맥주 한잔을 건네받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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