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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Apr 16. 2021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팬데믹 예술

영국의 예술가 레이첼 화이트리드 (Rachel Whiteread)

영국에서 올해 1월부터 이어지던 봉쇄령이 4월 12일 한 단계 완화되었다. 기껏해야 테이크 어웨이 식당이나 슈퍼 마켓만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동물원이나, 필수 상점 등을 방문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세 번의 봉쇄령으로 6개월이 넘는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영국인들처럼 답답한 일상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부활 방학을 보내고 있는 아들과 함께 시내의 대형 서점에 가는 소박한 계획을 세운 것뿐이었지만 나는 4월 12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서점 근처 메이페어(Mayfair)에는 고급 상업 화랑이 분산되어 있다. 마침 그중 한 곳에서 영국 예술가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내부 들(Internal Objects)> 전시회 열고 있었다. 레이첼 화이트리드는 서른 살이던 1993년에 영국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 예술가이다. 터너상이 제정된 지 9년 만에 그녀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 <집>은 집의 내부 공간에 콘크리트를 부어서 굳힌 다음, 외부의 벽을 뜯어내 벙커처럼 생긴 원형의 형태만을 남긴 주조방식으로 창작되었다. 그녀의 예술작품들은 주로 이렇게 콘크리트 주조 형식으로 제작되어 묵직하고 투박한 무게감을 준다. 대부분의 터너상 수상자들이 그러하듯 그녀는 4년 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그녀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는데 전시장을 찾아 직접 그녀의 작품을 만나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전시 오프닝 날이어서 그런지 갤러리에 잠시 들린 레이첼 화이트리드도 보았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면에 나무로 지은 하얀 헛간이 보인다. 쉐드(Shed)라고 불리며, 영국 주택의 정원 한구석에 창고처럼 쓰이는 헛간은 영국인들에게 비교적 익숙한 구조물이다. 하지만 전시장의 헛간은 형태는 겨우 갖추고 있지만 문짝과 벽, 그리고 헛간 내부의 나무 바닥도 부서지고 갈라져 틈이 벌어져있다. 위태로운 모습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그녀의 기존 작품에서 보이던 콘크리트의 견고함은 발견되지 않다. 집 안을 흔들고 물건을 날아다니게 하거나 가구 등을 부숴버리는 '시끄러운 유령'이라는 뜻의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라는 작품이다. 외딴곳에 버려져 방치된 것 같은 이 독특한 이름의 헛간이 보후밀 흐라발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연상시켰다. 소설 속 주인공 한탸가 혼자 지하의 폐지 작업장에서 폐지 압축기를 돌리면 책 속의 수많은 텍스트들이 신성함을 잃고 비명을 지르며 유령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일까.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헛간의 우측에 있는 복도를 따라가면 두 번째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또 하나의 하얀 헛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까와 비슷한 헛간인데 이번에는 무언가에 제대로 직격탄을 맞았는지 지붕과 벽 한쪽이 사라졌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줄기가 얇은 나무들이 헛간을 관통하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헛간의 외관을 자세히 살펴보니, 동그랗고 네모난 모양의 통조림 캔 뚜껑이 나무벽에 군데군데 들러붙어 있었다. <도플갱어(Doppelgänger)>라는 작품이다. 이것은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의 도플갱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재난과도 같은 코로나 팬데믹의 환영처럼 느껴졌다. 작년부터 이어지는 팬데믹으로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고단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어떤 이는 직장을 잃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또 어떤 이는 사람들과의 단절된 삶으로 처절한 고독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했다. 그러다 누군가는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도플갱어(Doppelgänger)>는 이런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겪는 내면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 놓았는지도 모른다.

Untitled (Crinkle-Crankle), 2018


Doppelgänger, 2021
Untitled (Night Drawing), 2018

부서진 헛간인 <도플갱어>를 둘러싼 벽에 걸린 작품들을 하나씩 둘러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좋은 전시는 각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길을 만들며 관람자를 또 다른 공간으로 안내한다. 그 공간에서 관람자는 예술가가 어렵게 꺼내놓은 말을 겨우 알아듣게 되기도 하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건네고 관객은 마음의 대화를 나누며 예술가에게 공감하게 된다.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내부 사물들(Internal Objects)>은 그런 전시였다. <도플갱어>의 헛간은 무질서한 혼돈의 세상 그 자체였다. 그런 세상에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대면하며 상처를 받고 슬픔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슬픔 속에 절망도 있지만 아름다움도 있다. 슬픔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 근원에 사랑이 품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게 마흔이 조금 넘은 나이에 누군가의 죽음을 겪으며 내가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도플갱어> 헛간의 부서진 벽 너머로 세 개의 프레임이 보인다. 새까만 우주처럼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파피에 마세(Papier-mâché) 위에 하얀색 잉크와 과슈가 별처럼 수놓아진 <Untitled (Night Drawing)>라는 작품이다. 무언가가 세게 할퀴고 지나간 듯 흉터가 남은 작품들을 보며 슬프고 시린 기분도 들었는데, 수많은 별이 빛나는 이 작품의 잔잔한 아름다움 위로를 받았다.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가 절망적인 마지막 선택을 할 때 사랑했던 집시 여인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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