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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Apr 28. 2022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8시 30분. 우리는 집안의 모든 불을 껐다. 집안 어딘가에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향초 두 개에 불을 붙였다.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아이의 잡지가 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잡지에서 인상 깊었던 한 페이지를 읽고 아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 종종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Earth Hour에 대한 기사를 읽은 아이는 오늘이 그날임을 알고 바로 실천하고 싶어 했다. Earth Hour는 세계자연기금이 주최하는 환경 운동으로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8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소등하는 캠페인이다.


아이가 우리를 재촉한 시각은 저녁 7시 50분쯤. 남편은 늦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런던의 한 쇼핑몰에서 아이의 책과 필요한 것들을 사고 쇼핑객들 사이로 이리저리 밀려다녀 피곤했던 나는 잠시 드러누워있다 막 일어났다. 온종일 동동 거리고 다녔기에 저녁 시간을 느슨하게 보내고 싶었다. 다음날도 아이 친구의 생일 파티로 하루가 채워질 것이고 이렇게 주말은 대부분 아이의 스케줄에 맞추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아이의 갑작스러운 제안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그날 저녁 시간만큼은 건성으로 보내고 싶었다. 아이의 시간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창문 밖을 바라보던 아이는 이미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일렬로 나란히 이어진 이웃집의 창이 어두운 것은 집에 주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Earth Hour 때문이라고 아이는 믿었다. 아니면 아이는 동네 사람들을 환경을 생각하는 이웃들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신난 아이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고, 호기심에 순순히 아이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집안은 어두움에 휩싸인 동굴이 었다.  


성냥을 그어 초에 불을 붙이니, 막 요리한 카레와 와인잔, 그리고 음식이 담긴 접시에 겨우 불빛이 닿았다. 음식 재료의 색은 수줍게 슬금슬금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주변의 소음도 아이 물건으로 어지럽던 다이닝 룸의 풍경도 모두 어둠에 덮여 고요해졌다. 초의 연약한 불씨 아래 내 마음의 소란함도 사그라들어 모든 게 평화롭고 차분해졌다. 평소 같았다면, 식사를 하면서도 다음 할 일을 생각하거나, 읽었던 책의 내용이나 누군가가 했던 말을 떠올리거나 해서 배 대신 이미 머릿속이 꽉 찼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어둠 속에서는 내 생각과 시간은 눈앞에 앉아있는 아이와 남편 그리고 우리에게만 온전히 존재했다. 광활한 우주에 우리만 남은 것 같았다. 촛불이 반사된 우리의 눈은 서로에게서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타오르는 초 위의 흩어지는 연기처럼 언어를 날려버리지 않고, 순간과 순간을 응시하는 눈 맞춤을 했다.

아이는 기타를 들고 나와 기타 줄 몇 가닥을 튕겨보았다. 아직 초보자 수준이어서 노래 한곡을 연주할 수는 없었지만 영롱하게 울리는 기타 소리는 우리를 둘러싼 검은색 배경을 목탄으로 스케치한 듯 부드럽게 채워주었다. 우리 사이를 드나들다 공간을 감싸며 어둠으로 사라지는 기타 소리는 이 순간을 더욱 명징히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의 한 시간은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 시간은 내게 이미 익숙해져 버린 일상의 여느 시간과는 달랐다. 훗날 기억 속에 남을 것 같은 아끼고 싶은 시간이었다. 이제 아이에게 어둠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이 어둠의 경험과 대조되는 한 장면이 생각났다.

한국에서 여름엔 주로 저녁때 집 근처의 북한산에 오르곤 했다. 산으로 향하는 언덕길에서 풍경을 내려다보면, 아파트의 활짝 열린 창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상가의 네온사인이 번쩍 번쩍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파트의 불빛은 정감 가고 다정한 반면, 네온사인의 불빛은 내가 더 낫다고 경쟁하듯이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공격적으로 달려와 멀리 있는 나의 시야에 와닿던 지나치게 밝은 그 빛들은 눈을 찌르고 해치는 공해처럼 느껴졌다. 영업시간이 끝났으면 소등해도 좋으련만 도시는 불빛마저도 아등바등거리고 있었다. 실내에는 백색 형광등의 불빛으로 가득하고, 거리는 알록달록함으로 치장해 도시 더 밝아지기 위해 조바심을 냈다. 쉽게 스위치를 끄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불안처럼 인공의 빛들은 건물에 매달려 하루 종일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환경을 보호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존중하며 했던 Earth Hour의 경험은 도시의 불빛이 익숙한 내게 어둠이 불편하고 막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적막이며 평온함을 준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집안의 스위치도, 잡음으로 가득한 마음속의 스위치도 모두 다 끄고 수많은 자극들로부터 멀어졌다. 깨끗하게 비어진 각자의 마음속에 곁에 있는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초대할 수 있었다. 그저 그 시간에 온전히 존재함으로써 순수한 기쁨을 감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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