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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Jun 08. 2022

엄마를 혼자 두고 왔다

짧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왔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혼자인 엄마와 시간을 잘 보내겠다고, 1년에 겨우 한 번 보는 엄마에게 이번엔 더 잘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런던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서의 나는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했다. 이번에도 엄마에게 너무 받고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로 일흔 하나이신 엄마에게는 하루 일과가 정해져 있었다. 아침 다섯 시쯤에 기상해서 집 근처 북한산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집에 와서 건강한 아침을 드시고, 마사지 의자에 몸을 기대 쉬시곤 했다. 그러고 나서 친구를 만나거나 볼일이 있으면 낮에 일을 보고, 그게 아니면 TV를 보거나 지인들과 전화 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셨다. 오후에는 치매 예방차원이라는 명목 하에 '인터넷 고스톱'을 치고, 이후엔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기도 후엔 저녁식사를 하시고, 나머지 시간은 다시 일일 연속극에 감정을 몰입해서 보셨다.   


나는 일상을 느슨한 듯 부지런히 꾸려가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조금 안심이 되었다. 엄마 집은 수많은 화분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엄마의 일과 중 하나였다. 엄마는 반려 식물들의 변화를 반가운 뉴스 전하듯이 내게 말해주셨다. 몇 달째 건강히 피어있는 선물 받은 서양난의 꽃을 신비롭게 여기고 예뻐하셨고, 윤기 나는 초록잎을 풍성하게 두르고 있는 식물들을 보며 대견해하셨다. 긴 여행을 떠나 집을 비우게 되면 반려 식물들이 목이 타 죽을까 봐 신경 쓰시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면서 이 근처를 지나는 새언니에게 반려식물에 물을 주라고 부탁하면 되겠다며 스스로 안도하셨다. 운동하러 산에 오르는 길에 보이는 꽃들의 풍경을 내게 전하시는 모습에도 엄마는 생의 활기로 가득해 보였다. 감사하고 다행이었다.  


 런던의 우리 집에도 화분이 있다. 하지만 우리 집의 반려식물들은 엄마 집의 그것들과 달리 활기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 어떤 화분은 건강한 것 같은데, 어떤 것은 생기를 잃고 무거운 어깨처럼 잎을 길게 축 늘어뜨리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주인들 때문에 반려식물들이 고생하는 것 같다. 엄마 집에서 생기 있게 자리 잡은 식물들을 보며, 아빠를 보내고 혼자되신 엄마가 어쩌면 나보다도 더 잘 지내고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루틴이 있어야 삶이 무료하지 않고 일상을 단정하게 지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나만의 루틴을 확립하려고 노력 중인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나도 엄마처럼 루틴의 틀이 잡히면 집안의 화분을 더 사랑할 수도, 사물을 대하는 태도도 변하게 될까?


런던에 돌아온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엄마를 쓸쓸히 홀로 두고 나 혼자 이곳으로 멀리 떠나온 것 같아 마음이 아직도 편치 않다. 하지만 엄마가 일상을 돌볼 줄 아는 마음을 지니셨기에 걱정을 조금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엄마의 일상에는 애정이 가득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의 일상을 받쳐주는 든든한 식물 친구들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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