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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Apr 01. 2019

움직이는 전시

미술가 양혜규 X 첼리스트 이옥경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미술가 양혜규의 <Tracing Movement> 전시가 내가 좋아하는 South London Gallery에서 열린다고 해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언제 갈까 계획하다가 이왕이면 첼리스트 이옥경이 공연하는 날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지난 토요일에 아이와 함께 다녀왔다.


봉준호나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볼 때처럼 양혜규 작가의 작품을 볼 때 내 눈은 더욱 크고 초롱초롱해지고, 진공상태에 있던 내 머릿속의 창문은 활짝 열려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와 저 멀리 처마 끝의 풍경 소리가 들리게 되는 것 같다.

첼리스트 겸 작곡가, 즉흥 연주가의 수식어가 있는 이옥경은 내게는 생소한 이름인데 웹서핑을 통해 알아보니 이미 해외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연주자였다. 그녀의 음악을 들어보니 으스스한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가 연상되어 흥미로웠다.    


Sonic Dress Vehicles
Carsick Drawings


이옥경의 첼로 공연 전 미리 도착해서 전시장을 둘러보았을 때에 양혜규 작가는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들어오는 바퀴가 달린 두 개의 인상적인 대형 설치 작품 <Sonic Dress Vehicles>이 있었고, 그것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블라인드와 무당이 쓰는 것과 같은 방울들로 조합되어 있었다. 그리고 설치 작품이 놓인 전시장 바닥에는 검은 테이프로 기하학적인 문양의 패턴이 사선으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영국 예술가이자 사회운동가인 Walter Crane의 나무 바닥 패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기하학적인 문양의 작품들과 그녀의 여러 다른 작품들이 전시장 벽면을 둘러싸고 있어 어떤 움직임이나 동선의 표현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그중 <Hardware Store Collages>에서 보인 SK Magic Electric Bidet Toilet Seats, Samsung QLEDs and Remotes에서는 풍자적인 느낌도 가미되어 있었다. 그리고 음률의 흐름을 보여주는 악보를 연상시키고 유머러스함도 느껴지는 <Carsick Drawings>에서는 작가의 사소한 일상도 예술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의 길을 만들기라도 하듯이 천장에서 늘어진 스피커가 일렬로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작년 남북 정상회담 때 두 정상이 취재진을 피해 멀리서 대화를 나눌 때 들리던 새소리와 인위적인 사람의 목소리가 나왔다.

 

첼리스트 이옥경의 공연

두 개의 대형 설치 작품은 정해진 시간대에 사람이 안에 들어가 움직이게 하는데 이옥경의 공연도 이때 스케줄 되어 있었다. 이옥경이 첼로를 들고 관객들 사이로 이동하면서 연주하며 공연이 진행됐고, 얼마 후 양혜규의 설치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조각품과 같은 설치물과 첼리스트 이옥경이 만들어내는 묘한 분위기는 전시장의 오브제에 숨을 불어넣어 또 다른 전시장의 풍경을 만들었다.

남북정상회담의 새소리, 설치물에 달린 방울소리, 이옥경의 첼로 소리가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었다.

대형 설치물의 모습이 우리나라 왕의 왕관처럼 보이기도 하여 남북의 정상이 연상되었고, 설치물들이 이리저리 움직일 때 예전 학창 시절 때 유행했던 분신사바가 뜬금없이 떠오르며 주술적이고 원시적인 느낌이 들었다. 내 맘대로 해석하자면 마치 외국의 정치적 간섭 없는 남북문제의 성공적인 해결을 기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해외를 돌아다니며 전시하는 작가의 이방인으로써의  유목민적인 삶도 투영하는 듯했다.


방향성을 갖는 물리적인 움직임,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움직임, 한국의 전통적인 것과 서구의 현대적인 것들, 진지함과 위트가 뒤섞여 다층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 <Tracing Movement> 전시는 이옥경의 첼로 연주와 너무나 절묘하게 잘 맞아 연출되었던 훌륭한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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