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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Jun 06. 2019

영국에서 나의 오전 시간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가 학교 갈 준비를 할 때 딴짓하지 않게 감독한다.

여차저차 어쩌다 보면 지각하겠다 싶어 부랴부랴 급하게 아이를 킥보드에 태우고 나는 빠른 경보 걸음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아이와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이미 혼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 아침에 시간 관리를 잘 못하면 이렇게 맘이 바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공원에 다다르면 이제 집에 거의 다 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며 예쁜 꽃들과 풀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가냘프게 흔들흔들거리는 꽃들이 마치 내게 손 흔들며 인사하는 것 같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서로의 몸이 닿아 샤샤샥 내는 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집 앞 골목에 다다르 지나던 이웃집 고양이와 안부를 주고받는다. 

오늘 할 일, 그리고 아이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 같은 미안함 등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며 길을 걷다 집에 오면, 일단 지각하지 않기 위해 수고한 몸과 마음을 편히 쉬게 한다.

보통 인터넷 서핑을 하며 쓸데없는 기사들을 훑어보며 멍 때리거나, 좋아하는 BBC 시트콤 <Not Going Out>을 본다. 그런데 나같이 타국에 고립된 이방인은 인터넷 중독 가능성이 더 커서 인터넷을 적당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Not Going Out>은 초등학생 저학년쯤 되는 아들과 딸을 둔 Lee의 가족과 그의 친구가 주축이 되어 전개되는 영국 일상 시트콤이다. 영국에 살고 극 중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있는 나로서는 엄청 공감이 되는 소재에다가 풍자와 웃음을 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알찬 대사들로 구성되어 있어 꼭 챙겨본다. 가장 공감되는 아이들 학교에 대해 나온 에피소드는 현 공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그에 대응하는 일반 영국인들의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나는 보면서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  

대사가 엄청 빠르고 비꼬는 듯 웃기는 특유의 영국식 유머와 표현이 있어서 영국인들을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때에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요즘 수강하는 수업에 나만 빼고 영국인인데 그들이 빠르게 대화할 때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서 이 시트콤을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보통 한국에서는 아이가 집에 없는 오전에 주로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곤 했다. 아니면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쾌적하고 맘에 드는 도서관도 없거니와 제일 가까운 도서관에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안 가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는 친구도 별로 없고, 밖에 나가면 이방인으로써 가지게 되는 불편한 긴장감을 느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더 많아지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혼자 하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내가 새로운 모험을 할 수 있게 데려다주는 것 같기도 하다. 영국 생활의 외로움과 고립감이 아이러니하게 삶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마음의 속도가 다시 제자리를 잡으면, 빨래나 청소의 집안일을 하고 이후 한국 전자도서를 읽거나 글을 쓰거나 한다. 요즘은 갤러리에서 듣는 수업의 숙제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과 아이의 하프 텀 방학 때문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큰 숙제는 다 끝내서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제 4번만 더 가면 그 수업도 끝나는데 그전까지는 글쓰기에 더해져 계속 그림을 조금씩 그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친구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허전함을 잊게 하고 뭔가 집중할 수 있게 해 줘서 이 수업을 정말 잘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집안일을 비롯해 이것저것 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흘러 어느새 아이 하교 시간이 된다. 나를 위한 시간이 충분한 것 같은데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 보면, 가끔 나에게는 독신의 삶이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꿀맛 같은 혼자만의 오전은 이렇게 짧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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