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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Sep 04. 2019

피터팬의 네버랜드가 된 놀이터

런던 켄싱턴 가든의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그라운드>

공원 가는 게 즐거운 일상인 런던의 아이들


런던은 3000개의 크고 작은 공원으로 이뤄진 녹지대가 40%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런던의 아이들은 복잡한 도시 속에 살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공원으로 산책 가거나 놀러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자치구인 일링구(Ealing Borough)에만해도 10여 개의 공원이 있어 아이가 집 앞의 공원을 식상해하면 버스를 조금 타고 동네 다른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곤 한다.

공원에는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영국인들의 역사도 담겨 있어 크고 울창한 오래된 나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데, 아이들은 이런 자연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탐험하기도 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어릴 때부터 배우게 된다. 아름드리나무와 광활한 잔디밭, 그리고 다람쥐와 새가 서식하는 자연환경 외에 공원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놀이터이다. 자연의 품 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곧잘 놀곤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생일 파티가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인 영국에서는 공원이 아이들의 생일 파티 장소로도 자주 이용된다.      

런던 시내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는 하이드 파크(Hyde Park),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s) 등을 비롯한 런던의 가장 크고 대표적인 8개의 공원이 과거 왕족의 소유였던 왕립 공인데, 과거에 주로 왕족의 여가 공간으로 용되었다가 1800년대 초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오늘날관광객과 런던너들의 휴식처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놀이터가 런던의 관광 명소?


왕립 공원 중 하나인 켄싱턴 가든에 영국의 놀이터 중 가장 인기 있는 놀이터라고 할 수 있는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그라운드(Diana Memorial Playground)가 있다. 12까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 놀이터는 다이애나비를 추모하기 위한 놀이터로 2000년에 완공되었고, 이후 한해 100만 명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른은 아이를 동반해야만 입장이 가능하고, 사람이 많아 때로는 줄을 서야 하는 이 놀이터에 과연 어떤 특별한 점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런던 퀸즈웨이(Queensway)나 베이스워터(Bayswater)역에 인접한 켄싱턴 가든 진입 문쪽에 있지만 영국의 유명 관광지인 자연사박물관, 과학관,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이 밀집되어 있는 사우스 켄싱턴(South Kensington)역에서 도보로 15분쯤 걸어서도 갈 수 있다. 관광객들이 자주 가는 시내 중심가인 1존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켄싱턴 궁, 하이드 파크와도 이웃하고 있어 외국인들에게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지리적인 접근성을 가지고 있다.

켄싱턴 가든에 들어서면 저 멀리에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궁금하여 그곳을 향해 가면 공원 카페테리아를 지나 울타리가 둘러진 놀이터의 입구가 나온다. 놀이터 게이트에는 문지기가 갤러리에서 하는 것처럼 방문객의 수를 휴대용 수동 계수기로 카운트하고, 어른은 아이와 동행하는지를 확인한다. 일반 놀이터와는 달리, 찾는 이가 워낙 많아 질서 유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것 같은 일련의 입장절차를 밟고 나면 눈앞에 압도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놀이터에 들어서면 보이는 첫번째 구역


방학기간이고 여름이라 복작대는 인파도 인상적이지만 거대한 해적선, 드넓은 백사장, 보물상자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풍경이 의심할 여지없이 아이와 어른 모두를 동심의 세계로 초대한다.    

놀이터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이내 해적선 위로 뛰어 올라가서 노느라 정신이 없다. 항해를 하기 위해 배의 운전대를 잡은 아이, 갑판대 위의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아이들, 배 밑의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모래놀이를 하거나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아이,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거나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 등 모두가 분주하게 놀이의 세계 속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놀이터의 두번째 구역


가 있는 놀이터의 첫 번째 구역을 지나면 긴 나무다리가 이어진 두 번째 구역의 놀이터가 나오는데 이곳의 바닥은 모래 대신 나무껍질로 채워져 있다. 어찌 보면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메인 놀이터와 대조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느낌이 드는 자연 놀이터이다. 특히 이 공간은 몸이 불편한 어린이들을 배려하여 휠체어도 지나다닐 수 있게 진입로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휠체어를 탄 아이들도 자유롭게 나무다리 위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그라운드 지도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그라운드는 위에 소개된 두 개의 메인 놀이터와 그 주위를 둘러싼 크고 작은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나무 울타리 뒤 곳곳에 그네, 시소, 모래놀이, 터널, 인디언 텐트, 악기 등 12세까지의 모든 연령대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탐험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거리 놀이 공간이 숨겨져 있다. 유아들이 놀 수 있는 아기자기한 공간도 놀이터 입구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놀이기구들은 연령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놀이터의 전체적인 공간 디자인뿐만 아니라 놀이 기구의 디자인을 보아도 영국의 다른 놀이터들과는 달리, 아이들이 숨바꼭질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아이들의 독립적인 공간을 존중해주어 놀이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이점이 바로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 그라운드와 영국의 일반적인 놀이터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칫 한눈을 판 사이에 아이들의 행방을 놓치기 쉽다. 실제로 며칠 전 이곳에 갔을 때 8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린 동생을 안고 울면서 헤매고 있어 엄마를 찾아 준 적이 있다.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이 놀이터에 4세 미만의 유아와 함께 방문할 때에 부모의 방심은 금물이다.           

              



동화 속 상상의 공간이 된 놀이터


사실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 그라운드의 특별한 점은 이제까지 보여진 것 외에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놀이터가 동화 <피터팬(Peter Pan)>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제임스 메튜 배리(James Matthew Barrie)가 1902년에 발표한 성인 소설 <작은 하얀 새(The Little White Bird)>의 챕터 <켄싱턴 가든의 피터팬(Peter Pan in Kensington Gardens)>에 처음 피터팬 캐릭터가 등장하였다. 이후 1904년 피터팬이 등장하는 이 챕터 부분을 아동극 <피터팬, 자라지 않는 아이(Peter Pan, or The Boy Who Wouldn't Grow Up)>으로 발전시켜 무대 위에 올려 큰 성공을 이루고,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1906년 <켄싱턴 가든의 피터팬(Peter Pan in Kensington Gardens)> 챕터의 글에 삽화가 덧붙여져 책으로 따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1911년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동화 피터팬이 <피터와 웬디(Peter and Wendy)>라는 타이틀로 최종 완성되었다.


피터팬의 이야기 속 배경이 된 켄싱턴 가든에 피터팬의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나라 '네버랜드'가 놀이터로 만들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2016년에 왕립 공원 전담 관리기관인 로얄파크(The Royal Parks)에서 작성된 "켄싱턴 가든 운영계획(Kensington Gardens Management Plan)"에 보면 피터팬의 작가 배리가 1909년 켄싱턴 가든에 놀이터를 건립하는데 기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1912년에는 피터팬의 동상이 설치되었고, 1930년에는 피터팬의 등장인물과 요정들로 꾸며진 조각품 <Elfin Oak>이 설치되었다.

배리가 처음 켄싱턴 가든에 만든 놀이터가 시간이 흘러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그라운드로 명맥을 이어가며 동화 속 상상의 공간이 놀이터로 재탄생된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체 활동뿐만 아니라 피터팬의 등장인물이 되어보는 상상의 놀이도 할 수 있게 다양한 놀이거리를 갖추어 놓았다. 그야말로 아이들의 창의력을 발달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독특한 공간의 놀이터이고, 탐험하기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놀이터 입구에 설치된 조각품 <Elfin Oak>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게 좋아!

도전이 즐거운 놀이터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 그라운드의 운영시간 정보와 놀이터에 대한 설명이 함께 나와있는 표지판을 읽다가 나는 우리나라 놀이터와 영국의 놀이터의 가장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 그라운드에서도 강조된 것처럼 영국에서는 놀이의 요소중 'risk taking'을 중요시하고 있었다. 안전하고 쉬운 놀이기구도 있지만 아이들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보기엔 조금 위험해 보이는 듯한 놀이기구를 함께 설치해 놓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가 아이와 가본 놀이터에는 모두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놀이기구가 있었다.


좌)리치몬드 공원(Richmond Park), 우)월폴 공원(Walpole Park)
영국의 국민 동화 작가 줄리아도널드슨의 성공작 <괴물 그루팔로>


아이는 아슬아슬하게 놓인 로프 위를 걷다가 아니면 해적선 위의 돛대 위에 매달리면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놀이 속에서 아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이런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고 나면 도전에 대한 성취감과 자신감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이런 'risk taking'의 놀이가 일상에서 반복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처하는 현실 속에서의 문제 해결 능력도 키워질 것이다.

위기의 순간을 재치 있게 모면하는 생쥐의 여정을 그린 영국 동화작가 줄리아 도널드슨의 동화 <괴물 그루팔로(The Gruffalo)>가 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큰 성공을 얻은 것도 바로 영국인들이 놀이에서 발견되는 'risk taking'을 중시하는 문화가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무조건 보호하기보다는 아이가 위기의 상황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옆에서 방향을 제시해주고, 아이의 선택을 지지해주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언제까지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영국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깨닫게 해 주려는 게 아닌가 싶다.


영국에 올 기회가 있다면, 영국의 문학과 문화와 창조성이 결합된 독창적인 놀이터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 그라운드에서 어른과 아이 모두 동심의 세계로 풍덩 빠져보는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 그라운드처럼 한국 고유의 예술과 문화가 결합된 한국판 네버랜드 놀이터가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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