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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Dec 06. 2019

탐험하기 좋은 런던의 제3의 공간

복합문화 공간 바비칸센터(Barbican Centre)

영국의 겨울은 본격적인 우기의 계절이다. 흐리고 축축한 날이 이어져 어른이고 아이고 스멀스멀 어두운 기운에 압도당하기 쉽다. 하지만 바깥활동에 제약이 많은 이 시기가 박물관, 미술관을 비롯한 영국의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을 탐방하기에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다.        

영국은 정책적으로 귀천 없이 모두가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박물관, 미술관을 입장권 없이 무료로 개방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래서 교과서에 나올법한 유명한 예술가들의 미술작품을 테이트(Tate)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등에서 마음껏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이런 문화 공간에서 아이들을 위한 워크숍이나 이벤트가  무료인 경우가 많다. 이와 더불어, 잘 찾아보면 런던의 공연장이나 영화관에서도 주말에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한다.



모든 시민에게 열려있는 독특한 공간

"바비칸센터(Barbican Centre)"

 

최근에 내가 아이와 함께 찾아간 제3의 공간은 바비칸(Barbican)과 무어게이트(Moorgate)역, 그리고 런던의 금융 중심지에 위치해 있는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re)이다.                 

바비칸센터는 런던의 한 지역구이자 금융 중심지인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이 운영하는 유럽에서도 손에 꼽히는 규모의 공공 복합 문화 공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로 불리는 플(Flat) 단지와 길드홀 음악 연극 학교(Guildhall School of Music and Drama)가 긴 복도로 연결되어 둘러싸여 있고, 건축학적으로도 가치 있어 건물 투어 프로그램도 따로 있는 독특한 공간 안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길을 잃기도 쉽지만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이 탐험 놀이를 하기에도 적합하다.    


바비칸센터 입구 (출처: 구글 이미지)
바비칸 센터의 건축 구조(출처:구글 이미지)


바비칸센터에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무용, 연극, 클래식 음악, 장르가 허물어지거나 혼합된 다원예술과 같은 전 세계의 예술성이 뛰어나고 우수한 공연을 유치하여 소개하는 공연장으로 명성이 높다. 올해는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바비칸센터에서 클래식 음악 협연 공연을 했었다.


그러나 바비칸 센터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가족들이 나들이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바비칸 센터의 홈페이지 메뉴에 "What's on"이나 "Your visit" Families를 클릭해보면 가족 이벤트나 워크숍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바비칸 센터의 갤러리나 영화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무료 워크숍이 주말마다 다양하게 펼쳐지고, 만 5세 미만의 영유아들이 놀 수 있는 놀이공간 스퀴시 스페이스(Squish Space)가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일요일에만 개방하는 온실인 컨서버토리(Conservatory)에서 1500여 종의 나무와 식물이 서식하는 자연 속에서 잠시 동안 휴식을 즐길 수 도 있다.  


컨서버토리(출처:바비칸 홈페이지, credit_Max Colson)


또한, 바비칸센터 내 공연장 앞 로비에서 시민들을 위한 무료 음악회가 열리기도 하고, 테이블과 의자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노트북을 들고 와서 혼자 작업을 하는 런더너들도 종종 볼 수 있는 도심 속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다.

거나 일을 하다가 출출하면, 바비칸 센터 내의 캐주얼한 레스토랑인 바비칸 키친(Barbican Kitchen)에서 식사를 하면 된다. 그런데, 어른이 음식을 주문하면 아이의 음식은 무료로 제공된다. 어른의 음식값도 7-8파운드 정도로 저렴한데, 아이는 간단한 샌드위치나 피자 한 조각 정도를 무료로 먹을 수 있어 가족들이 부담 없이 끼니를 때우기에 좋다. 메뉴를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물가 비싼 런던에서 아이 음식이 무료인 것은 큰 혜택처럼 느껴진다.

 

바비칸 키친


바비칸센터 안에는 도서관도 있다. 규모가 큰 편이라 그런지 영국 공공 도서관 치고는 보기 드물게 어린이 도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어린이 도서관에는 유럽권의 외국어로 된 동화책들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다른 도서관들처럼 어린 독자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스토리텔링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어른들이 이용하는 도서관 곳곳에는 "Buggy  Park"라고 표시된 유모차 주차 공간이 있어서 아이와 함께 온 어른들도 좀 더 편리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다른 런던의 도서관에서는 흔히 경험할 수 없는 바비칸의 특별한 점이기도 하다.


좌) 바비칸 도서관, 우) 바비칸 어린이 도서관


바비칸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는 주로 유료일 경우가 많은데, 이와 별개로 Family Day 프로그램은 주말 하루나 이틀 11시부터 4시까지 아이들이 창작활동 및 워크숍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어린이 미술 워크숍 프로그램(출처: 바비칸 홈페이지)



바비칸어린이 영화 프로그램

"패밀리 필름 클럽(Family Film Club)"


바비칸에는 여러 개의 영화 상영관이 있는데 그중 별관에 따로 있는 바비칸 시네마 2&3(Barbican Cinemas 2&3)는 패밀리 필름 클럽(Family Film Club)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매주 토요일 오전, 어린이는 2.5파운드, 동반 어른은 3.5파운드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수준 높은 어린이 영화를 상영한다. 페어런츠 앤 베이비 스크리닝(Parents& Baby screening)이라고 부모와 12개월 미만의 아기가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은 6파운드 정도이다. 영화관에서 특별 행사가 있는 날에는 어린이 3파운드, 동반 어른은 5파운드에 영화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보통 영국에서 영화 티켓이 10파운드를 넘기 때문에 패밀리 필름 클럽의 영화 티켓 가격 정도면 꽤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영화관 매표소에서 패밀리 필름 클럽 로열티 카드(Family Film Club Loyalty Card)를 만들면 6번째 영화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바비칸 시네마 2&3에서는 디즈니나 픽사에서 만들어지는 상업적인 최신 영화보다는 예술성 있는 영화를 선보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무료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며 매년 12월엔 크리스마스 이벤트도 한다.


바비칸의 어린이 영화 축제

"패밀리 필름 위크엔더 (Family Film Weekender 2019)"


얼마 전에 아이와 바비칸 시네마 패밀리 필름 클럽에서 1년에 한 번 하는 어린이 영화 축제 <패밀리 필름 위크엔더 (Family Film Weekender 2019)>에 다녀왔다. 이번 영화 축제는 기술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때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자는 취지 아래 기획되었다. 직접 가서 경험해보니 행사에 참여할 대상의 적정 연령은 만 5세부터 11세까지의 영국 초등학생이었다. <패밀리 필름 위크엔더>는 유료 영화 상영, 전문가와 함께하는 무료 워크숍, 그리고 이벤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영화관에서는 축제의 주제에 맞춰 1902년에 프랑스에서 제작된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elies)의 무성영화 <달나라 여행(Le Voyage dans la Lune)>과 같은 고전 영화에서부터 2008년에 미국에서 제작된  로봇 영화 <월-E (WALL-E)>와 같은 과학영화를 상영했다. 워크숍 장소로 영화관 로비와 카페, 그리고 사무실 같은 공간 활용되었다. 


패밀리 필름 위크엔더 워크숍 프로그램


워크숍 프로그램에는 낙서 로봇 만들기(Doodlebot Workshop), 영화 관련 책 읽기 코너(Book Corner), 영화와 관련된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Family Film Kiosk), 애니메이션 만들기(Imaginary Creatures Workshop), 배경과 인물을 따로 합성하는 그린 스크린 체험(Green Screen Studio), 그리고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 체험이  있었다.


Family Film Kiosk
Green Screen  Studio
Imaginary Creatures Workshop


시간 관계상 모든 프로그램을 참여해보진 못했지만 이 행사를 오기 전부터 눈여겨본 낙서 로봇 만들기(Doodlebot Workshop) 애니메이션 만들기(Imaginary Creatures Workshop) 특히 인상적이었다.

낙서 로봇 만들기(Doodlebot Workshop)는 말 그대로 아이들이 직접 낙서하는 로봇을 만들어보는 워크숍이다. 평소 로봇을 이용해서 작업을 하는 예술가를 초하여 이 워크숍을 기획, 진행하였다. 우선 작은 종이 박스 밑에 구멍을 뚫어 낙서할 때 작동될 펜을 다리처럼 부착하고, 전선을 꼬아서 모터와 배터리를 연결해 낙서하는 로봇을 만들어보았다. 그러나 아직 만 7살인 아들이 혼자 모든 걸 하기에는 조금 무리였다. 그래서 아들은 틈틈이 워크숍을 진행하는 예술가의 도움을 받아 로봇을 완성했다. 단순한 재료로 움직이는 로봇을 창조해낸 경험에 아이는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게다가 자신이 만든 로봇을 집으로 데려갈 수 있어서 더욱 좋아했다.         



 애니메이션 만들기(Imaginary Creatures Workshop)는 먼저 종이를 여러 개 덧대어 튼튼한 몸통과 팔다리 등을 나누어 만들고, 완성된 각 부위가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게 구멍을 뚫고 클립 같은 것으로 연결하여 상상의 생물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행사 진행자에게 그것을 가지고 가면, 아이가 자신이 창조한 생물체를 1초당 한 번씩  조금씩 움직보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이가 연출한 여러 컷의 장면을 컴퓨터 스크린에 저장한 진행자는 최종적으로 컷들을 연결시켜 아이의 창조물이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스크린으로 보여주었다. (이 영상을 나중에 이메일로 보내준다고 하였는데 행정이 느린 영국에서 과연 언제쯤 영상을 받아볼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Imaginary Creatures Workshop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이용해 자신이 만든 오브제에 생명을 불어넣는 경험은 요즘 아이들이 비록 디지털화되고 자동화된 사회 속에 살지만, 이런 테크놀로지에 함몰되거나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기술을 활용하여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려는 것 같았다.


<패밀리 필름 위크엔더> 행사는 비교적 작은 영화관 건물에서 진행되어 협소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제한된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아이들에게 영화와 관련된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진행자들은 아이들에게 워크숍 방법에 대해 처음에 설명을 하고, 이후에는 불필요한 개입을 최대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 스스로가 여러 과정을 거쳐 스스로 연구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도록 유도하였다. 보조 진행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요청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새로운 창작 경험을 할 수 있 기획한 다양한 워크숍들이 사실은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최고의 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아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었던 <Doodlebot Workshop>의 예술가 Paul Granjon은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영국 웨일스(Wales)지역 전시관을 대표하는 예술가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버추얼 리얼리티를 경험할 수 있게 영상을 제작한 Framestore는 오스카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미 여러 번 수상 경력이 있는 영상기술 전문 스튜디오였다. 심지어 패밀리 필름 키오스크(Family Film Kiosk)라는 어찌 보면 단순히 만들기 워크숍처럼 보이는 이 이벤트를 이끈 이도 Reza Ben Gajra라는 예술가였다.      

그리고 청각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도와주는 수화 통역사(BSL interpreter)도 배치되어 있어, 모든 상황에서 <패밀리 필름 위크엔더>의 진행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최 측에서 세심한 신경을 썼다.




나는 바비칸 센터에서의 경험을 통해 영국이라는 나라에서의 예술기관의 존재가치와 영국인들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깨달았다. 바비칸센터는 항상 세계 최고의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소개하는 명실상부 영국의 대표적인 기관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소홀히 넘길 수도 있는 무료 어린이 워크숍조차도 최고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심혈을 기울여서 기획한다. (아마도 이것은 경제 중심지인 시티 오브 런던의 바비칸 센터에 대한 풍족한 재정지원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바비칸 영화관의 이벤트를 통해 평소 같으면 만나보기 힘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갖는다. 이번 <패밀리 필름 위크엔더>에서는 영화 현장의 전문가와 워크숍을 했지만, 작년 크리스마스 이벤트에서는 영국 BBC의 어린이 채널 CBBC의 진행자가 초대되어 아이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즐거운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영국에서는 영화관이나 공연장에서 수화 통역 서비스가 가능한 날짜를 며칠 지정해 놓아 모든 사람이 예술을 향유수 있게 해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비칸 센터의 이번 영화 이벤트에서도 수화 통역사가 있어서 모든 어린이들이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이렇게 바비칸 센터는 신체적인 불편함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수준 높은 예술을 경험하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게 하는 모두를 위해 열려 있는 문화공간이다.


대부분 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두에게 입장료 없이 무료로 개방되어 있듯이, 바비칸 센터도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가까이 문화예술을 누리고 적용할 수 있게 하는 상징적인 문화예술기관이다. 그래서 영국 아이들은 이런 환경을 통해서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 소수를 위한 특별한 것이 아니라, 도서관 가서 책을 보듯이 일상적이고 쉬운 일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경험한다. 그리고 이런 환경이 영국의 예술이나 문화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의 배경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도 정책적인 지원과 문화적인 환경이 더욱 조성되어, 예술을 즐기는데 어떤 제약이 없모두가 불편함 없이 일상 속에서 쉽게 예술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양한 놀거리로 가득한 독특한 문화공간 바비칸 센터에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 가족은 금세 우중충한 영국의 날씨를 잊게 되었다. 날이 춥고 우울하다고 집에서만 웅크려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 아이와 함께 어딘가로 탐험을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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