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공간 X 해외리포터] SEE SAW 독일 리포터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 X 해외 리포터]에서는 아이와 함께 해외에서 살고 있는 엄마, 아빠 리포터들이 직접 경험해본 다양한 제3의 공간을 소개합니다.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놀이터, 공원 등 공간의 물리적인 환경은 물론, 공간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 아이들이 경험하는 콘텐츠까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읽고 쓰기 좋아하는 늙은 엄마 이진민입니다. 독일에서 다섯 살, 세 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정치철학을 전공했어요. 특히 공포(fear)라는 개념에 관심이 있었고요. 근데 첫 아이를 낳고 나니 제 뇌의 절반을 아이에게 뚝 떼어 준 느낌이더라고요. 둘째가 나머지 절반을 가져가서 이제는 머릿속이 청순합니다.
누구나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 타인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잖아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각 시대를 지나면서 가장 고민이 깊었고 똘똘했던 사람들이 “인간의 삶이란 역시 이런 거 아닐까.”라면서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아서 그 대화들이 너무 귀하고 좋았어요. 인류의 지성을 정수로 모아 담은 선물 세트를 받는 그런 느낌요.
그런데 철학이라고 하면 많이들 거리감을 느끼잖아요. 사실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고 삶에 대해 빡세게 고민했던 삶의 선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있는 게 안타까웠어요.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제가 쓴 논문을 제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것 자체가 참 어렵더라고요. 같은 한국말인데도 사용하는 단어가 너무 달라서.
그래서 철학을 말랑말랑한 일상의 언어로 바꾸는 그런 작업에 늘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철학하는 사람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배운 것을 좀 말랑하게 풀어내는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브런치에 연재하는 <철학하는 엄마>는 그런 마음에서 나왔어요.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과정을 지나면서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반짝반짝 철학적 모먼트가 보이거든요. 이런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 안에 철학을 끌어 온다면 철학하는 사람인 저로서도, 읽는 분들로서도 즐거운 작업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과정을 지나면서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반짝반짝 철학적 모먼트가 보이거든요.
예를 들어 제왕절개 수술을 하느라 부분마취를 했을 때, 수술대에 묶인 제게 ‘자유’라는 개념이 굉장히 절절하게 다가왔어요.
모유 수유 경험은 페미니즘과 가슴해방운동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됐고요.
아이들이 커 가면서 끊임없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당할 때는 루소의 자연상태(State of Nature)에 내재된 비극이 떠올라 슬퍼지고, 그렇더라고요.
모든 아이들이 내 새끼처럼 예뻐 보이는 거요. 아이뿐 아니라 조그만 새싹, 꼬물거리는 작은 새끼 동물들처럼 작고 귀엽고 연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이 피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동학대나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에 대한 뉴스를 보면 진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머리로 반응했던 것이 이제 뇌를 거치지 않고 몸으로 반응하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저는 늘 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제 밑바닥을 가끔 보게 되는 것 같아 자주 괴롭습니다. 내가 이렇게 못난 사람이구나, 자주 느껴요. 엄마가 된 지 이제 겨우 여섯 살이라, 저도 크고 있는 중인가 봐요.
동화를 쓰게 된 계기는 거창한 게 아니라,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와하하.
유럽에 사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독일에 이사 와서 집에 인터넷을 설치하는데 수개월이 걸렸어요. 당시 저는 미술 작품으로 철학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한참 쓰고 있었거든요. 그림과 조각들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해야 하니 인터넷 검색이 꼭 필요했는데, 못 쓰게 되니 한과 창작 욕구가 지옥불마냥 용솟음쳐서... 그래서 인터넷 검색 없이 쓸 수 있는 글이라도 써 보자 싶어서 제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몇 편 쓰기 시작했어요. 외국에 살고 있으니 한글로 된 이야기를 접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런데요, 동화를 쓰는 일이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아무 제약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내가 만든 세상에 폭 들어가 있다가 나오는 경험이 엄청나게 즐거웠어요. 어른들은 뇌도 일상도 약간 굳어 있잖아요. 어른들에게 동화는 근사한 휴가지가, 필요한 영양소가,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구나, 그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동화를 쓰고 동화를 읽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주제나 소재는 그때 그때 떠오르는 것들을 구슬 모으듯 모아 두고, 캐릭터와 에피소드는 주로 제 아이들과 지인의 아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습니다. 철학적 개념을 어린이들이 – 혹은 청소년과 어른들이 – 알기 쉽게 동화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처럼 들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간간이 철학 동화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아이들이라기보다는 그냥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계절이라든가, 시장, 심부름, 비밀 다락방, 뭐 이런 소재들이 내가 이야기를 써 보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현재 모아 둔 구슬들이고요. 딸기코 도깨비의 속편을 쓴다면 주문을 한글 고어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나무말이나 풀말이 따로 있는 건 어떨까, 뭐 이런 생각들을 해 봐요. 이렇게 구상하는 단계가 되게 재미있어요.
<슬픔을 먹는 개와 고양이> 1편에 등장한 수아와 은호 이야기는 실제로 서울에서 전주로 이사 후에 정든 친구들, 할머니와 떨어져 슬퍼한다는 이야기를 수아와 은호 어머니 M의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보고 마음에 담아뒀었고 ), <엄마, 나는 커서 엄마가 되는 거야?>에서 오빠가 발레복을 입어보는 걸 좋아했다든가 분홍색 접시를 두고 서로 싸웠다는 얘기는 실제 이웃이었던 승민이라는 친구의 에피소드예요. <뱃속 무지개>에 등장하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연두 아가씨는 제 후배 C의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 박연두 어린이가 춤추는 동영상을 보고 나서… 후후. 연두는 실제로 드레스가 찰떡처럼 어울리는 예쁜 친구예요.
꼭 장난감이라고 정의된 것을 돈 주고 사지 않아도 아이들은 세상 만물이 장난감인 프로 놀이러들이잖아요. 돈 들여 뭘 사지 않아도 재활용품이나 생활용품이 훌륭한 놀잇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아이디어를 나누고 싶었어요. 꼭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구가 아프다고 난리니까요. 세 들어 사는 입장에서 조그만 도움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죠.
제가 C Program에서 잠시 리서치를 도와 드리면서 다행히 놀이에 대한 개념을 스스로 넓히고 다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작은 아이디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저부터도 신기했던 경험이 종종 있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웃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장난감은 아이들이 스스로 제작에 실험처럼 참여할 수 있는 장난감(ex. 구슬 길 만들기), 꼭 총칼 같은 무기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는 장난감(ex. 계란 깨기나 휴지 산 무너뜨리기), 그리고 스스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며 놀 수 있는 장난감(아직 소개하지 않았지만 박스로 만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이루어진 마을’과 ‘조약돌로 만든 먹거리 세트’ 같은 것)들입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때 손 끝에 촉이 온다 싶은 걸 일단 다 모아두는 상자가 있어요. 뭐든지 잘 못 버리는 제 기질이 한몫하는 것 같고요 (남편은 질색팔색). 그러다가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장난감이 있다든가, 아니면 어떤 걸 만들어 볼까 하고 영감이 떠오르면 그 상자를 뒤져가며 저의 창의력을 테스트합니다. 되게 재미있어요. 장난감을 떠올리고 만드는 일이 어른인 저로서는 되게 신나고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바빠 죽겠는데 내 시간을 희생해서 이런 걸 만들어준다, 이런 게 아니라 저도 노는 거예요.
기본적으로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의식해서 만들게 돼요. 그래서 알파벳과 자동차, 음식과 관련된 놀잇감을 많이 만든 것 같아요. 아이들이 이제 제법 커서 제작에 즐겁게 참여하는데, 함께 하는 그 과정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애들이 아직 어려서 지금은 주로 엄마가 주는 선택지 중에서 고르는 역할을 하거나 디테일에 관여하고 있는데, 점점 주도권이 아이들에게 넘어가기를 바라고 있어요. 최근에 청개구리 작업실에 관한 소개글을 읽었는데, 그 작업실의 홈 버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1년간 교환학생 한 것까지 치면 미국에서 11년을 지냈고, 독일로 건너와 3년째네요. 지금 사는 곳은 뮌헨 북쪽에 있는 하임하우젠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이에요. 아이들 인터내셔널 스쿨로 쓰이고 있는 멋진 성도 있고, 정조 임금님 때부터 빵을 구워 온 빵집도 있고, 임진왜란 지나고 오픈한 맥주 브루어리도 있고, 길에 가끔 말도 다니고요. 저렇게 말하면 너무 낭만적으로 들리려나요. 정말 소박한 시골이에요. 처음 이사와서는 가끔 코 끝에 스치는 비료 냄새와 물비린내가 좀 힘들었어요.
저도 한국을 나와 산 지 오래되었고 제 독일 경험을 섣불리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제가 느낀 선에서 말씀드리자면요. 가장 큰 차이는 사람들이 ‘흩어져서도 행복하게 산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무조건 서울 같은 대도시를 선호하지 않는 점, 고루 흩어져서 만족하며 재미나게 산다는 점. 그게 결국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 공간, 시설 측면의 아주 깊숙한 데서 기본적으로 영향을 주는 베이스 포인트가 아닐까.
아이를 좀 더 중심에 두고 말하자면 아이들이 자연과 접할 기회가 많고 좋은 리스크에 호의적이라는 점, 생명과 자연을 존중하고 아끼는 법,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주는 그런 사회 환경이 좀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매년 오던 철새가 안 오면 사회적으로 깊은 시름에 잠겨 근심 걱정으로 난리가 나는 그런 나라요.
그런데 이게 사실 조금의 차이가 있고 속도가 좀 다를 뿐,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고 저는 믿어요. 제가 해외특파원으로 글을 쓰면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구운 감자를 들고 와서 “느 집엔 이거 없지?”하던 <동백꽃>의 점순이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아무래도 이 곳의 좋은 공간을 소개하는 글이다 보니 자랑처럼 보일까 싶어서 걱정이 돼요. 한국에도 좋은 공간들이 진짜 많잖아요. 한국의 좋은 점도 저는 육백 오십 개쯤 꼽을 수 있고, 독일의 좋은 점도 비슷하게 꼽을 수 있거든요.
아이들이 자연과 접할 기회가 많고 좋은 리스크에 호의적이라는 점, 생명과 자연을 존중하고 아끼는 법,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주는 그런 사회 환경이 좀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살면서 배워야 할 부분은 아이들이 서서히 감당하게 두는 그런 거요. 예를 들어서 저희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샛길에는 손에 찔리면 굉장히 아픈 가시풀이 있는데, 어른들이 나서서 그걸 몽땅 제거하기보다는 이렇게 생긴 풀은 아프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준다든가, 이런 열매를 먹으면 배가 아프니 조심하라든가, 이렇게 같이 사는 법을 알려주는 게 좋더라고요. 아이들 스스로 적응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놀이터 시설물 같은 것도 좀 야생미가 넘쳐요. 제가 가 본 한국 놀이터(주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는 대체로 경고문, 안내문이 되게 많고 하지 말라는 게 많더라고요. 놀이 시설물의 이용 방법을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해 주는 안내문을 보고 당황+황당했던 적도 있어요. 여기는 놀이터에 대체로 룰이나 안내문이 없고, 오히려 아이들이 시설물 꼭대기에 올라가 볼 수 있게 슬쩍 장치를 해 준다든가 하는 데서 리스크에 호의적인 태도가 느껴져요.
그리고 독일에서는 애가 이제 걸음마를 좀 한다 싶으면 바로 자전거를 탑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나서서 권하더라고요.
사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격하게 내 아이를 사랑해주는 것 같은 다정다감한 미국에 살다가 상대적으로 무뚝뚝하고 엄격해 보이는 독일 사람들을 보니 처음엔 제가 적응이 잘 안 됐어요. 그런데 살면서 그들의 진솔하고 투박한 사랑을 은은하게 느껴요. 우리 동네 구멍가게도, 아이들이 가면 계산대 옆에 늘 사탕 상자를 놓아두시고 조그만 사탕을 하나씩 쥐어 주십니다.
아이들에 대한 독일 사람들의 태도에서 제가 좋아하는 점이 두 가지 있는데요.
첫째는 아이들 스스로의 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며 들어주는 점이고, 둘째는 좋아하는 것을 쉽게 주지 않는 점이에요.
첫 번째에 관해서는 뭐든지 아이들의 의견을 듣는 게 기본으로 시스템 안에 잘 깔려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이제 5살이 되어 초등 예비반을 시작했는데요. (이듬해에 학교에 갈 나이의 유치원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일주일에 1-2 시간 초등학교에 가서 시간을 보내요.) 아이가 숙제를 한 페이지 하더라도 페이지마다 꼭 자기가 판단하는 칸이 있어요. 이건 쉬웠다, 이건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이건 도움이 필요했다, 이렇게 스스로 판단하는. (아래 사진의 원숭이를 참조하세요. 숙제를 하고 나서 스스로 평가하는 란이랍니다.)
학교 예비반에서 주는 설문에도 예를 들어 “아이가 규칙을 잘 지킬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왼쪽은 부모님의 의견, 오른쪽은 아이들 자신의 의견을 기입하게 되어 있어요. 경제적으로도 독립성을 키워주는 문화인 것 같아요. 쇼핑을 하러 가도 계산대에서 엄마와 아이가 각자 따로 지갑을 열고 자기가 고른 물건을 계산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게 한다는 점, 나에 대한 판단을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하게 한다는 점은 정말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좋아하는 것을 쉽게, 많이 주지 않는다는 점
미국은 어른이 아이들에게 사랑과 정열을 다 바쳐 아이들을 미소 짓고 행복하게 하는 문화였다면, 독일은 애들이 참 수수하게 자라게 하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과시하지 않고 소박하게 사는 문화라서 그런 것 같아요. 미국도, 우리나라도, 아이들에게 뭔가 어메이징한 것을 제공하고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에 흐뭇해지는 그런 문화잖아요. 근데 여기는 애들이 감자튀김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자라는 것 같고, 유치원에서 생일 파티를 해도 소시지와 요거트를 가져와서 나눠 먹거나 머핀 하나씩을 나눠 먹는 그런 문화예요. 그게 너무너무 신나는 일인 거예요. 그렇게 크기 때문에 작은 것에 크게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죠. 좀 심심하고 촌스러워 보여도, 저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이렇게 크는 것에 찬성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만난 노부부!
제 글에도 한 번 등장했던 분들인데요.
제가 혼자서 한 살 반 짜리 아이를 데리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어른도 지겨운 12시간의 비행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지루했겠어요. 결국 비행기에서 내리자고, 문 열고 나가자고 떼를 쓰기 시작했지요. 황급히 아이를 안고 사람들이 없는 통로로 도망치려는 찰나, 근처의 노부부가 아이에게 젤리를 쥐어주시고 저에게 빙긋이 웃으며 “It’s all right, We all have been there.”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셨어요. 우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비행기를 탈 땐 늘 작은 젤리 봉지들을 주머니에 챙기신다고요. 괜찮다, 우리도 다 똑같이 지나왔다는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던지요.
아이에게 웃어주는 어른을 만나면, 불안한 엄마들의 마음에는 조그만 환한 불이 켜지는 법이거든요.
옆자리에서 칭얼대는 아이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이나 짜증 섞인 시선 대신 조용히 배려를 담은 미소를 보내는 것.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지만 최고의 격려인 것 같아요. 이 미소들이 쌓이면 그 문화는, 그 사회는 반드시 조금씩 변하고 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원래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향해 웃어준다는 건 참 엄청난 의미를 가진 일 아닌가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그 미소의 힘을 더 진하게 느껴요. 그 뒤로 저도 늘 비행기를 탈 일이 있으면 여분의 젤리 봉지를 챙겨요. 가끔 제가 먹어치우는 게 문제긴 한데...
유럽이니까, 게다가 유럽연합이니까, 땅이 사방팔방이 열려있는 점에서 큰 차이를 느껴요. 독일이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가 자그마치 9개국이거든요. 아무런 검사 없이 신호등을 건너면 프랑스가 되고, 호수를 지나면 스위스가 나오고. 이념과 바다로 막혀있는 곳에서 자랐으니, 저도 여기 와서 처음에 너무 신기했어요. 어디든 갈 수 있고,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말을 쓰면서 다양하게 살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의 다양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 구멍가게나 마트? 어른도 아이도 즐거운 곳이니까요. 그리고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관, 시냇가, 호숫가, 숲, 이런 데가 좋아요. 돈도 안 들고, 우리를 감싸 안아주는 것 같고, 어른 눈에도 재밌는 게 많은.
약 한 시간 거리의 Buchheim Museum에 다녀왔는데 참 좋았어요. Museum der Phantasie (Museum of Imagination) 라는 근사한 이름이 붙은 미술관인데, 공간 자체가 복합적으로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근처에 아름다운 호수도 있고, 안팎으로 눈을 어디에 돌려도 반짝반짝 어디 하나 안 예쁜 데가 없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주변 경관 자체를 미술품으로 생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연을 감상하기 좋게 고민한 흔적도 보이고, 갤러리도 아기자기하게 구석구석 사람을 굉장히 행복하게 하는 공간으로 설계했더라고요. 아이들도 당장에 좋아할 만한 공간. 몇 번이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인데, 경험이 충분히 쌓이면 나중에 제3의 공간 매거진에도 소개글을 하나 올리고 싶습니다. 뭐든지 한 번 가고 소개하기에는 제 눈이 아직 빠릿빠릿하지 못해서요.
저는 만족시키기 쉬운 타입의 인간이라 대체로 어딜 가도 좋아하고요.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곳을 꼽자면 Berg Tier Park Blindham. 작은 농장과 놀이 공간이 합쳐진 개념이라고 할까요. 실내와 실외 놀이 공간이 정말 광대하게 펼쳐져 있고, 작은 동물들을 만져보고 먹이도 줄 수 있는 곳인데요. 모든 종류의 놀이를 다 섭렵할 수 있고, 진짜 들락날락거리며 하루 종일 미친 듯 놀다 올 수 있습니다. 지친 부모들을 위해 탁 트인 자연이 보이는 통유리 앞에 제법 큰 매트리스들을 깔아 둔 것도 고맙더라고요. 애들은 놀고, 엄마 아빠는 누워 책을 보거나 꿀잠을 잘 수 있죠. 흐흐흐. 여기도 나중에 한 번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독일을 느끼고 싶으시면 1년 내내 별별 주제로 다 꼬물꼬물 이어지는 마을 축제(독일 사람들이 가만 보면 되게 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를 찾아서 가보시거나, 크리스마스 전후로 한 달쯤 이어지는 Weihnachtsmarkt(크리스마스 마켓 - 재미있는 부스들이 가득한 스트리트 마켓이자 작은 축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을 추천합니다. 여행하실 때 꼭 아이들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도 어른도 즐거운 곳을 찾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슬그머니 자리를 내주는 미술관:
소박한 동네 놀이터라고 하기엔 아쉬운 독일 시골마을 놀이터:
평범한 공원 잔디밭이 일요일 오후마다 놀이터가 되는 신나는 이야기:
아이들과 가볍게 들를 수 있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놀이터,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제3의 공간들을 소개하는 뉴스레터가 매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구독을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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