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진민 Apr 27. 2019

출산, 수술대에 올라 자유를 생각하다

자유의 사슬

둘째 아이를 만나기로 한 날이 밝았다.

덥고 청명한 날이었다.

어제 지시받은 대로 약품을 사용해 샤워를 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최종 점검했다.

가뜩이나 시차로 정신이 없을 언니에게, 정신이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큰 아이를 맡겨놓고 남편과 병원으로 향했다.


열 달 동안 늘 함께 했던 아기와 이제 떨어질 시간.

임산부 동료였던, 마음이 고운 한 동생이 그런 말을 했었다.

열 달 동안 혼자가 아니라 늘 둘이 함께라는 것은 여자들만 가질 수 있는 행복인 것 같다고.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밥을 먹을 때도, 거리를 걸을 때도, 슬픔을 느낄 때도, 심지어 외로움을 느낄 때도, 그 열 달만은 혼자가 아니었다는 건 참 뭉클한 사실이었다.


이제 또다시 완전한 한 개체, 나만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인간으로 돌아갈 시간.   

그래, 이제 헤어질 때도 되었다. 엄마는 시원섭섭하구나.


그게 참 시원섭섭하고 싶었는데...


내 수술은 2시에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5시까지도 수술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바로 앞 순서로 수술실에 들어갔던 산모 때문이었다. 아기는 잘 꺼냈지만 배를 열어보니 뭔가 문제점이 있었던 모양이다. 침대 두 개가 들어가는 대기실은 커튼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쪽에는 나와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고, 저쪽에는 그 산모의 가족들이 모여있었다.


침대에 누워서 본의 아니게 실시간으로 옆 산모의 상태를 중계받았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도 덩달아 걱정이 됐다. 저렇게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는 가족들이 있고 저렇게 조그만 따님이 막 세상에 와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부디 건강을 잘 회복하세요. 나는 그렇게 옆자리 산모의 건강을 기원하며 3시간을 더 누워 기다려야 했다.

옆자리 산모님의 건강을 비나이다

대기실에서 만난 간호사는 활발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네는 인사만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좀 많이 활발한 성격이다 싶었는데, 내 양팔 역시 활발하게 쑤셔댔다. 그 결과 그녀의 본분인 주삿바늘을 꽂는 데는 실패했다. 평소에 고통을 잘 참는 편인데, 여러 번 실패하다 보니 두꺼운 바늘이라 점점 힘들어졌다. 정말 얼마나 여기저기 쑤셔 댔는지 팔이 온통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으로 화사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간호사 양반 거 무기를 좀 치워주지 않겠소 ⓒ a little teapot

그녀는 내 팔이 희한하게 혈관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아 그러세요. 그래도 좀 찾아주세요.

그녀는 결국 다른 간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엉망인 내 팔을 보고 한숨을 내쉬던 그 간호사는 단 한 번에 주삿바늘을 꽂는 데 성공했다. 십이지장에서부터 감사가 절로 우러나왔다.  


내 몸을 마취한다는 것 


부분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기로 했었다. 가슴께 밑으로 하반신만 마취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내 정신을 말짱하게 유지하다가 아기가 태어났을 때 바로 내 눈에 아기를 담고 아기와 인사를 할 수 있다.


첫 아이 때도 동일하게 부분 마취를 했었다. 그때는 처음으로 분만실에 들어와 본다는 인턴 하나가 내 동의 하에 수술 과정에 함께 했다. 천으로 된 가림막이 내 가슴께에 세워졌기 때문에 나는 오로지 소리만 들을 수 있었는데, 누가 보면 그 인턴이 아이 아버지인 줄 알았을 게다.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싱글벙글, 남편보다 더 흥분하면서 어찌나 기쁜 톤으로 아기를 꺼내는 과정을 나에게 생중계해 주던지 나는 덩달아 즐겁게 혼이 반쯤 나간 상태로 누워 있었던 것 같다. 아기가 나왔다고 했는데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드디어 터져 나온 내 첫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왠지 모를 요상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 감동과는 별개로 수술대에 누워 ‘이건 두 번 다시는 못할 짓이다’ 싶었는데 (뭐랄까 사, 산 채로 배를 가르는 경험..) 어쩐 일인지 나는 또다시 그렇게 수술대에 눕게 되었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우선은 하반신 마취를 해야 했다.

등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자세를 취하면, 엄청나게 큰 주삿바늘임을 내 척추가 말해주는 (아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 바늘 끝의 대각선 각도까지 느껴지는 그런 주삿바늘이다.) 그런 주사를 맞게 된다.  

보기 좋게 나이가 든 노신사 의사분께서 어깨를 안아주며 편안하게 주사를 맞을 수 있게 도와주셨다. 따뜻한 마음과 포근함이 느껴져 참 좋다- 생각하는 와중에 아래쪽에 따뜻한 느낌이 퍼지면서 급속도로 하반신의 감각을 잃었다. 다리가 천근만근, 발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기 보다 하나, 둘, 셋, 하고 들어올려졌다).  


갑자기 기분이 굉장히 나빠졌다.

내 몸의 주인 된 성질을 잃어버린다는 것.


개구리처럼 묶인 채 발가락 하나 내 맘대로 꼼지락거릴 수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날 만큼 불쾌했다.

무력하게 누운 채 나의 생명과 안위를 오롯이 타인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기분이 별로였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이들이 갑자기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아니 병원에 테러라도 난다면, 나는 이렇게 묶여 어떤 반항도 항의도 하지 못하고 정신이 말짱한 채 죽는 건가. 누가 위해를 가한대도 내 발로 도망갈 수 조차 없는 상황. (도망가봤자 초속 1센티의 속도로 얼마나 가겠냐마는..)


갑자기 볼이 되게 간지러운데 손가락을 뻗어 긁을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간지러운 곳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도 일이었다. 아기에 정신이 팔려 내 얼굴 쪽으로는 별 관심이 없는 남편의 주의를 어렵게 끌어 어찌어찌 가려움을 해소하고 나자, 뭔가 힘들고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여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수술대에 몸은 묶여 있지만 정신은 멀리까지 달아났다.

전신에 마비가 있는 분들은 이 괴리를 도대체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첫째를 꺼낼 때는 그 신난 인턴 때문에 그저 정신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고요한 수술팀을 만나니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길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제 나이가 드셔서 침대에 주로 누워 계시는 우리 엄마는 매일매일, 저 멀리까지 달아나는 정신을 감당해 주지 못하는 육신을 어떤 심정으로 느끼실까.

파킨슨 병을 앓으신다는 은사님께선 자유롭지 못한 당신의 노구와 어떤 방식으로 화해하고 계시는 것일까.


그렇게 수술대에 누워 나는 육신과 정신 사이의 괴리를 느끼며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했고

나이 든 내 엄마에 대한 미어지는 마음이 깊어지던 그 순간 나는 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배 쪽에서 무언가가 거칠게 잡아당겨지는 느낌.

아이는 오후 5시 58분에 태어났다.


춥고 사지가 떨렸지만, 멋도 모르고 세상에 끌려 나온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자 그 모든 불쾌감이며 형언할 수 없던 무기력감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마음고생을 많이 하며 품고 있던 아이였다.

엄마가 고생을 하느라 첫째 때처럼 기쁜 마음으로 이것저것 만들어주거나 챙겨주지도 못했다.

그저 무사히 만나자, 많은 걸 못 해줘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 줄게, 그렇게만 다짐했던 아이였다.


너를 이렇게 무사히 만나서 기뻐. 고생 많았어 아가야.


자유의 의미


모든 게 평온했다.

아가의 아프가 스코어(Apgar score)도 좋았고, 나도 두 번째라 모든 것이 조금 더 익숙했다.

나랑 처음 떨어져 보는 첫째는, 언니의 말을 빌자면 뒷마당에서 포세이돈에 빙의해 격한 물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워낙에 아이들과 친구처럼 잘 놀아주는 언니라 (각종 연령대 빙의 가능) 아이도 신나게 놀았나 보다.

그러니까 이렇게 물놀이를 한 것 같다.

수액이 들어가면서 팔이 시원해지고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3시간이나 수술이 지체된 덕분에 나의 금식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는 것.

그렇게 나는 거의 하루를 쫄쫄 굶고, 밤이 되어서야 덜덜 떨면서 물과 크래커를 조금 먹다가 모든 걸 토했다. 가만히 있는데도 손과 팔이 약이라도 한 것처럼 (해본 건 아닙니다...) 심하게 떨렸다.


하지만 내 맘대로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일은 평소에 딱히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날만큼은 너무도 즐거웠다.

자유는 공포와 결핍을 통해 느껴지며, 정의는 불의를 통해 느껴지는 법이다. (feat. 몽테스키외 오빠 & 쉬클라 언니)

수술대에 올라 공포와 결핍의 순간을 강하게 체험하고 나니, 내게 다시 주어진 꼼지락의 자유가 그렇게 고맙고 기쁠 수가 없었다.


자유의 의미에 대해 논한 철학자들은 많다.

박사과정 첫 학기에 ‘자유의 개념(The Idea of Liberty)’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한 학기 내내 자유에 대해 고민하는 수업이었다. 리딩 리스트에는 칸트가, 밀이, 헤겔이, 마르크스가 있었다. 벌린이 설명하는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와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가 있었고, 스땅이 논한 고대인의 자유(ancient liberty)와 근대인의 자유(modern liberty)가 있었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 계몽주의에서 말하는 자유, 공화주의에서 말하는 자유가 있었다. 아주 자유가 풍년이었다.

그러나 이 날만큼은 내게 그저 꼼지락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달콤했다.


엄마의 자유


두 번째 아이라 수유 자세도 힘들지 않게 제자리를 잡았지만 첫날에 당장 배부르게 나올 리는 없었다. 간호사들이 띠처럼 된 헝겊을 내게 두르고 그 안에 아기를 쏙 넣었다. 엄마와 살을 맞대고 있게 하려는 것. 

태어난 지 24시간 이내의 아기는 엄마와 맨살을 맞대고 따뜻하게 안겨 있는 것만으로도 혈당이 올라간다고 한다. 임신과 출산 과정을 통틀어 인체의 신비란 이런 거구나 싶은 게 많았지만, 내가 경험한 가장 어여쁜 신비였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아기는 먹지 않아도 혈당이 유지된답니다. ⓒ a little teapot

* 미국에서는 출산 후 엄마와 아기가 한 방에서 지내는 게 기본입니다. 천국이 따로 없다는 우리나라의 산후조리원을 경험 못한 것은 아쉽기도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를 데려가지 않고 "이제 가족이네요."라고 하면서 한 방에 함께 있게 한 건 이 쪽이 좋았습니다. 아기도 엄마 곁이 좋았겠(...그랬을 거야...)지만, 다음 글에 나올 예정인 가벼운 우울증에 저는 아기의 존재가 정말 큰 위로가 되었거든요. 아기가 너무 울어 엄마가 잠을 못 잔다든지 하는 경우에는, 간호사분들이 가족에게 의향을 물어보고 엄마가 푹 쉴 수 있도록 아이를 신생아실에 데려가 보살펴 줍니다.

 

그렇게 아기와 찰싹 붙어 있자니 "자유란 사슬을 끊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묶여 있을지를 선택하는 것"이라던 어느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졸며 채널을 마구 돌리다 그 부분만 뇌리에 남아, 어느 영화인지 기억도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


사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체로 주어진 틀 안에서 사고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선택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인간 존재 자체가 무수히 많은 제약으로 묶인 존재다. 태어나자마자 기본적으로는 물과 태양과 공기에, 나아가서는 부모와 사회와 국가에 묶인 존재.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땅 위에 정주하면서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했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 위에 놓이지 않고 시작하는 삶이란 없다. 때문에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 누구의 아이로 태어나 삶을 시작하는가가 그 사람의 알맹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기본적인 사슬에 엮이지 않고 자신만의 자유를 바로 구가할 수는 없다. 일단 시대라는 공기, 사회라는 토양 속에서, 부모라는 햇빛을 받은 알맹이가 싹을 틔우고 자라야 나중에 잎을 펼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바람에 또다시 자유롭게 흔들릴 수 있다. 자유란 무조건 사슬을 끊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행복하게 묶여 있을지를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채널이 돌아가는 그 몇 초 사이에 졸린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올 만큼 울림이 컸다.   


그렇다면 아가야, 이렇게 너와 묶여 있는 것이 내 자유인가 보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너를 낳기로 선택하고 지켜온 것, 이렇게 함께 묶여있는 것.  

그간 나는 불편하고 힘들었고 앞으로는 더 수고롭겠지만, 내가 누릴 참 귀한 자유구나.

너도 네 의지대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릴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너도 네가 가진 자유의 의미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우리 따뜻하게 잘 묶여서 지내보자 아가야. 

엄마, 예쁘게 묶어 주세요. ⓒ a little teapot


이전 02화 출산 전야, 죽음과 처음 눈 맞추고 인사를 나누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철학하는 엄마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