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아주 재미난 말을 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타인이 되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부모가 되는 것이라는.
내가 남이 된다고? 아니 어떻게?
레비나스에 따르면 아이를 가지면 되는데, 아이는 바로 “타자(타인, 혹은 다른 이)가 된 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가 된다는 것을 나와 타자의 오묘한 관계에 대한 경험, 초월적인 경험이라 말한다. 이게 대체 뭔 말인가 싶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나를 넘어서는 나를 만나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아이는 “나지만 나는 아닌 존재(me, but not myself)”이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태어난 또 다른 나.
나도 아니고 그렇다고 타자도 아닌 존재.
내 아이.
맞는 말이다.
첫 아이를 가진 것을 알았을 때의 그 기분을 기억한다.
내 안에 다른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내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설레는 긴장감 같은 것이 생겼다. 분명 내 몸인데 내 안에 저렇게 콩콩 뛰는 심장을 가진 다른 생명이 있다니.
내 안에 있는 얘는 나인가, 남인가.
처음 초음파로 만난 아이는 젤리빈 같아 보였고, 두 번째 초음파로 본 아이는 그새 손발이 나올 부분을 열심히 뾰족뾰족 내밀어 놓은 것이 꼭 젤리곰 같았다. 남편은 첫눈에 그 젤리곰과 사랑에 빠져, 저렇게 예쁜 것을 보면 꼭 딸일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들만 둘을 내리 낳았다. 그리고 영업을 종료했다.) 그렇게 단숨에 사랑에 빠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생명체를 대함에 있어 오묘하고 뭉클한 긴장감을 느낄 때마다 나는 레비나스를 떠올렸다.
나와,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
칼로 무 자르듯 ‘나’와 ‘타자’로만 규정지을 수 없는 신기하고 신비로운 관계.
태교라는 것 역시 그랬다.
내 몸에 세 들어 살고 있는 타자를 위해 나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 세상 모든 오글거리는 것과는 천성적으로 맞지 않아 딱히 별난 태교를 하진 않았지만, 엄마의 감정이 아이에게 전해진다는 것만큼은 믿었다.
실은 둘째를 가진 순간부터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거쳤다. 안 좋은 일이 겹쳐, 내가 굳건히 딛고 있던 양쪽 발 밑의 땅이 하나씩 꺼져버린 느낌이었다. 매일 밤 불이 꺼지면 눈물을 흘리다 잠이 들고, 그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다시 땅이 꺼질 것 같은 절망감을 느끼던 시절. 현실의 내가 너무 슬프고 절망적인데, 내 안의 아이를 위해 그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를 완전한 나로 여겨서도, 완전한 남으로 여겨서도 안 되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표출할 수 없었던 내 슬픔을 녹여주고 허탈감을 채워준 것 역시 레비나스가 말한 이 '나지만 나는 아닌 존재들'이었다. 당시 아직 두 살도 되지 않았던 첫 아이는 엄마가 우는 게 낯설어서 떨어지는 눈물을 작은 손가락으로 만져보며 이상한 미소를 지었고, 뱃속의 작은 아이는 슬픔이 빗방울처럼 뚝뚝 새어 들어오는 그 전셋집 안에서도 무탈하게 꼬물거리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잠시 누워 있을 때 한 놈은 옆에서 꼬물락 거리고 또 한 놈은 뱃속에서 꼬물랑 거리면, 바닥에 닿은 등에서부터 천천히 힘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냥 독립적인 나로서만 존재했다면, 엄마가 아니라 그저 한 개인으로만 사고했다면, 아니 애초에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현재 내 삶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내 안의 타인, 나도 아니고 타인도 아닌 존재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키우는 존재들, 나를 키우는 존재들
15년 전.
달고 맵고 짠 안주를 앞에 놓고 자유롭게 술잔을 부딪힐 수 있었던 시절, 나는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종일 철학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었다. 생일 케이크를 자를 때도 롤즈의 분배의 정의를 구현하자며 칼을 잡았고, 심지어 철학자 이름으로 25칸짜리 빙고를 하며 놀았다. (되돌아보니 미드 <Big Bang Theory>의 레너드네 무리 같았다. 왜 그랬지.)
그 시절의 나는 쑥쑥 자랐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얘네들 같았다. ⓒ CBS (Big Bang Theory Season 3)
하지만 5년 전.
첫 아이를 가지고서 술은커녕 맵고 짠 음식도 맘껏 먹을 수 없던 시절, 나는 홀로 앉아 날로 커져가는 배 안에서 내 생각을 엿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유일한 청중과 함께 또 그렇게 자랐다. 그저 엄마가 되는 것만으로 그간 미처 내 주머니에 담을 생각을 못했던 주제에 호기심이 생겼고, 새로운 생각이 피어났다. 기존의 철학적 개념들이 반짝-하고 빛을 얻어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 침묵 속에서 내 안의 타인과 교류하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리고 뱃속의 청중으로 인해 더 많은 타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일 역시 새로웠다.
열 달의 기간 동안 나는 또 쑥쑥 자랐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자랐다.
나는 아이를 키웠고, 아이는 나를 키웠다.
그렇지만.
열 달 동안 직접 아이를 품고 있는 여성에게 임신은 그렇게 조용한 성장의 계기나 형이상학적 초월의 경험으로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나에게 임신은, 초월성의 경험임과 동시에 어이쿠 정말 형이하학적이고 동물적인 경험이었다. 사변적으로 논증하고 현대문명이 이룩한 첨단 기술을 사용하던 호모 사피엔스에게 입덧이 찾아오는 순간, 수백만 년에 걸쳐 이뤄낸 인류의 자랑스러운 직립보행 능력에 심각한 오류가 생기는 것이었다. 나는 자주 네발짐승이 되거나 와생동물이 되곤 했다.
대체로 이런 비주얼이었다. ⓒ Sanrio Korea
나도 아니고 타자도 아닌 이 조그만 젤리곰은 내게 그간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철학적 사유들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생각조차 불가능한 무력한 짐승으로 만드는 능력도 탁월했다.
열 달간의 임신은 그렇게 내게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기묘한 동거였다.
엄마와 어미 사이
아기를 가지면 막연히 ‘엄마’가 된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아기를 품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어미’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엄마와 어미의 그 미묘한 온도 차이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금도 끊임없이 밀물과 썰물처럼 내 삶을 적시고 있지만, 내가 처음 그 단어를 떠올렸던 것은 임신의 동물적 무게 때문이었다.
임신은 숭고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지 이렇게 민망하고 굴욕적인 순간이 많은 일이라는 것을 세상은 그동안 가르쳐 주지 않았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가느다란 팔다리를 하고 동그랗게 나온 배 위에 우아하게 손을 얹고 있는 아름다운 그녀들 뒤로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서른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그렇게 내게 보여주는 것만 보며 플라톤(Plato)의 동굴 속에 들어앉아 있던 작은 계집아이였다. (이미 출산을 경험한 현자들은 이미 강렬한 육아의 급류에 휩쓸려 그 안에서 헤엄치느라 동굴로 되돌아와 진리를 설파하지 못했나 보다.)
*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 태어나서부터 줄곧 사슬에 묶여 벽 쪽만 바라보게 되어있는 사람들이 지하 동굴에 있다. 그 뒤에서 누군가가 그림자 극을 하는 것처럼 벽에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소리도 낸다. 묶인 자들은 그 가상의 이미지가 진짜인 줄 알고 평생을 살아간다. 간혹 사슬을 끊고 출구를 발견해 동굴을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눈이 멀 것 같은 태양빛에 괴로워하며 진실을 알게 되는 이들이 바로 철학자들이다. 그들이 돌아와 진실을 말하려고 해도, 평생 그림자만 보아 온 동굴 속 죄수들은 그림자를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것으로 믿으며 진리를 설파하려는 자들을 죽이려 한다.
플라톤의 동굴. 소파에 묶여서 TV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만 소비하며 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현대인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다. ⓒ a little teapot
풍자하자면 이런 이미지. 저 위쪽에 미디어의 허상을 간파해 내고, 사슬을 끊고 출구를 발견해 동굴을 나가는 자들이 보인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임산부들은 아직도 대체로 곱다.
어린 시절 드라마에서 본 그녀들은 밥상머리에서 욱욱 거리다 어느새 귤을 먹고 있었고, 그리고는 곧 귀여운 아기를 품에 안고 나타났다. 그래서 뭐, 딱 그 정도인 줄 알았다.
여성들이 임신을 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어떤 위험이 생기며 어떤 민망함들이 생겨나는지, 쉬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게 된 것은 (그리고 진실을 접한 어린 여성들이 경악하게 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말하기 부끄러운 것, 누구나 겪는 것, 유난 떨지 말아야 할 것, 위대한 모성을 위해 인내해야 할 것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가리고 누르며 아름답게 포장해 왔다.
배를 드러내고 웨딩 사진 버금가는 만삭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아기가 든 둥근 배의 선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2017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쌍둥이를 가진 만삭의 몸으로 공연을 선보인 비욘세 언니는 많은 이들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문제는 임신부들이 배 말고는 가느다란 팔다리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티 아닌가요), 또는 임신부는 저런 드레스 입은 모습처럼 열 달 동안 그렇게 단아하고 아름다울 거라는 망상이다.
한혜진 씨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 Marie Claire Korea
대체로 진실은 이 모습에 가깝다. ⓒ Focus Features LLC
* 사진은 영화 <툴리(Tully, 2018)>의 한 장면. 그러나 미디어는 여기에서조차도 샤를리즈 테론이 영화를 위해 어떻게 22킬로를 찌우고 뺐는지, 그래서 다시 완벽한 몸매로 돌아왔는지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더라는 것이 함정.
술이나 카페인 음료 같은 기호 식품을 마음대로 못 먹거나 감기약, 염색약을 멀리 해야 하는 것, 즉 그간 자유롭게 사용하던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 그 무수한 제약들은 차라리 이성과 자유의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성이나 의지와 별개로 변해가는 내 몸이었다.
내가 처음 느꼈던 당혹감은 겨드랑이에서 시작되었다.
예쁜 아기 천사가 생겼다면 엄마 몸에 하얗고 보송보송한 날개가 돋아야 할 것 같지만, 내 겨드랑이에는 가슴이 한 쌍 더 생기는 건 아닌가 싶은 뻣뻣한 부종과 더불어 당황스러운 착색이 진행되었다. 거울 앞에서 민소매를 입고 만세를 불러보면 양쪽 겨드랑이에 타원형의 탄 빵을 장착한 것처럼 보였다.
개처럼 후각이 민감해지고, 배 위로 휴전선이 생겼다. (임신선이란 것인데, 불러오는 배 위에 세로로 거무스름하게 생기는 선을 말한다. 쓸데없는 사소한 부분에 완벽주의 기질이 있는 나로서는, 이 임신선이 배꼽 부근에서 살짝 휘어 서로 만나지 않는 것도 내심 못마땅했다. 이놈들 왜 만나질 못해.)
먹으려고 집어 든 귤에 웬 임신선이 ⓒ a little teapot
평소에는 환장할 것 같았던 황홀한 밥 냄새가 왠지 달갑지 않았다.
식스센스에 세븐센스가 생겨나 뜬금없는 전자파 감지 능력이 생겼고 (컴퓨터를 켤 때마다 울렁증이 심했다) 내가 지금 물을 마시는 이 유리컵에 이전에는 어떤 액체가 담겼었는지 알 수 있는 초능력이 생겼다. 하루 전날 생선을 먹으면서 물을 마셨던 컵에는, 아무리 박박 닦았어도 다음 날까지도 진한 참바다 향이 넘실거려 죽을 맛이었다.
구토를 한다거나 하는 유별난 입덧은 없었지만, 항상 가슴께가 꽉 막힌 느낌이었고 내내 강한 숙취에 시달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종일 가슴을 주먹으로 콩콩 쳐 가며 몇 달간 숙취에 시달렸다. 덕분에 평소에 아끼고 사랑하던 나의 술들은 꼴도 보기 싫었다.
배가 나와서 발톱 자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데 손톱 발톱은 모든 영양이 그리로 가기라도 하듯 쑥쑥 자랐다. 쓰러져서 침을 흘리며 자고, 화장실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아이가 내 방광을 스트레스 해소 인형처럼 주무르고 노는 걸까. 땅에 떨어진 물건을 주울 때는 다소곳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자세가 되었다. 나온 배 때문에 양다리는 쩍 벌어졌고, 물건을 가까스로 손에 쥐고 일어날 때는 입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신음소리가 발사되었다. 입덧이 사라지자 젓가락도 씹어먹을 것 같은 식욕이 샘솟았다.
어이쿠 ⓒ a little teapot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자다가 침 흘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치고, 물건을 주울 때는 그래도 최대한 다리를 오므리고, 신음소리를 내는 대신 심호흡을 하려고 애썼다. 혼자 있을 때 배가 고파도 너무 게걸스럽게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임신을 계기로 기본적 욕구를 충실히 보살피고 조금 유연하게 풀어지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짐승처럼 살기에는 왠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랬다.
아기를 품었던 열 달은 기쁘고 오묘하고 뭉클한 순간들이 섞여 쇠라의 점묘화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기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민망과 굴욕의 지뢰밭에서 최소한 나의 인간성을 놓지 않겠다는 긴 싸움의 날들이기도 했다.
강인한 생명력의 어미가 되어야 할 날들이 앞으로 더 많을 것이기에, 기꺼이 어미가 되기 위해서는 엄마라는 환상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로서, 육신의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인간성을 놓지 않겠다는 단단한 마음가짐은 부른 배 안에 알맹이처럼 지니고 싶었다.
인문, 인간의 무늬를 찍을 수 있다면
둘째 때는 2 년 더 늙었다고 네 배로 힘들었다.
첫 아이는 그래도 삼십 대 후반에 가졌지만, 서른과 마흔의 경계에서 둘째를 가지고 나니 받아야 하는 테스트가 어마어마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가서, 희한하게 생긴 기계에 안긴 채 삼십 분씩 누워 있어야 했다. 아이의 심박 수와 움직임을 체크하는 기계였다. 나이가 많거나 임신 중독증 같은 고위험군의 산모는 태아가 살고 있는 환경이 아무래도 좋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의 움직임이 영 좋지 않다 싶으면 의료진의 판단하에 일찍 꺼내기 위한 조치였다. 실제로 내 옆에 누워 체크를 받던 산모 하나가 급히 수술을 받게 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나는 건강한 편이라 큰 문제는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노화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고스란히 져야 했다. 그래, 아무리 영혼이 젊다든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고 살아도 임신과 출산 앞에서 나는 그저 나이 든 여자일 뿐이었다.
막달이 올수록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다정한 한 친구는 그러니까 먹을 것 앞에서 함부로 돌아서지 말라는 개떡 같은 조언을 해 주었다.
존, 나 배고파.
첫째 때는 먹는 것도 조심하고 식사 후에는 운동도 제법 했는데, 둘째 때는 하루 종일 첫째와 씨름하다 보면 저녁시간에 방전되기 일쑤였다. 저녁을 양껏 먹고 바로 소처럼 눕는 내 옆에서 매일 저녁 간단한 운동으로 몸매를 다지는 남편이 부러웠고, 그 옆에서 고무공처럼 아빠를 따라 통통통 뛰며 까르르 웃는 아이의 에너지와 체력이 부러웠다. (하지만 늘씬하게 몸을 만들었던 남편은 둘째의 탄생과 더불어 육아 스트레스로 여기저기 귀여운 지방을 붙이기 시작했고, 반면에 나는 수유 때문에 비쩍 마른 어미개처럼 변해갔다. 인생사 새옹지마 지금은 둘 다 동글동글하다. 원래 원이라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완벽한 도형이다.)
임신, 출산, 육아.
인간은 동물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뼈저리게 (실제로 뼈가 저린다. 많이.) 느끼게 되는 와중에 그 과정을 인문학적 사고로 칠해 보고 그 열 달을, 그리고 그 이후를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의 기회로 만들고 싶었다. 나의 동물적인 변화에 서툴게나마 인문, 즉 인간의 무늬를 찍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깨달음의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틈틈이 정리한 메모들을 이제야 다시 하나씩 꺼내 글로 엮어본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내가 앉아서 제법 오랜 시간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내 몸에 세 들어 살고 있던 아기들.
지금은 제법 이성도 자유의지도 발전한 꼬마 인간들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엄마의 이성과 자유의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엄마는 아직도 동물적인 변화(이제는 호랑이로 변한다)에 스스로 당황하며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엄마에게 끊임없는 철학적 영감을 주는 아이들,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부지의 가르침 따라 중용의 미덕을 추구하는 엄마를 늘 시험에 들게 하는 아이들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