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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y 05. 2019

수유, 나는 가슴이 달린 채 존재한다. 고로?

페미니즘과 가슴해방운동

내 세상에 아기가 옴으로써 새로운 우주가 펼쳐졌다.


하지만 일단은 블랙홀 같은 우주였다.

엄마의 온 영혼과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우주.

몇 주 전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공개한 블랙홀 사진. '괴물급' 블랙홀이라는 글자, 내가 단 거 아닙니다. 근데 고맙습니다.

조그만 게 기침도 하고 재채기도 하고 하품도 하고, 너무나 신기한 작디작은 인간.

그런데 계속 살아있는 건지 불안했다.

목도 못 가눠 머리가 툭툭 떨어졌다. 아악.

폭신폭신 조그만 인형에도 숨이 막혀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아아악.

유아 돌연사증후군이라고, 침대 위에서 멀쩡히 자고 있던 아기가 사망하기도 한단다. 아아아악.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하루 종일, 애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정신이 온통 그 조그만 인간의 숨쉬기 운동에 쏠려 있었다.

계속 살아있는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어머님, 아기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십시오. ⓒJTBC (SKY 캐슬)

교대해 줄 사람이 없다면 그렇게 종일 아기에게 온 정신을 쏟으면서 엄마가 쉬고 잠을 충분히 자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실은 교대해 줄 사람이 있어도 엄마는 피곤하다.

엄마에게는 가슴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아기는 삼시 세 끼를 먹는 게 아니다. 삼시(?) 열두 끼를 먹는 게 신생아다. 위가 충분히 커진 성인들은 하루에 세 번 든든하게 먹으면 족하지만, 뱃고래가 작은 아기는 두세 시간 간격으로 먹어야 한다.

아이는 블랙홀처럼 모유도 쭉쭉 빨아들였고, 동시에 엄마의 잘 시간도 그 블랙홀 안으로 휘리릭 빨려 들어갔다.

가슴이 달린 죄로 휘리릭.


날카로운 첫 수유의 기억


유학 시절 교수님 한 분이 이사로 책장을 비우실 때, 대학원생들을 초대해 갖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고르게 하신 적이 있다. 그때 얻어온 책들 중 소설이 하나 있었는데, Kim Edwards의 <The Memory Keeper’s Daughter>라는 소설이었다. (국내에는 <메모리 키퍼>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거기에는 여주인공 노라가 아이에게 수유하는 순간이 굉장히 신비롭게 묘사되어 있었다. 수유하는 순간에 노라는 자신을 ‘만물을 감싸안는 바람’이나 ‘수액이 가득 차 흐르는 나무’, 혹은 '널리 세상을 받아들여 쉬이 자신의 물줄기로 만드는 고요한 강' 같다고 느낀다.(참고로 이 소설엔 60년대 미국에서 모유수유는 굉장히 래디컬한 것이라서 노라가 수유에 관한 정보를 찾느라 고전했다는 이야기도 잠깐 나온다. 노라 자신의 엄마도 그에 대해 논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5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모유수유는 교육 수준이 낮은 하층계급이나 하는, 다소 역겨운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절대다수였다고 한다.)


꿀 같은 수액이 가득 차 흐르는 나무 쪽이 실은 더 매혹적이긴 했지만, 그 보다는 남편과 논쟁 후 격해진 마음을 아기에게 수유를 하며 가라앉히는 부분을 살짝 오려와 붙여본다.


Slowly, slowly, as Paul nursed, as the light faded, she grew calm, became again that wide tranquil river, accepting the world and carrying it easily on its currents. Outside, the grass was growing slowly and silently; the egg sacs of spiders were bursting open; the wings of birds were pulsing in flight. This is sacred, she found herself thinking, connected through the child in her arms and the child in the earth to everything that lived and ever had.   


배 안에서 팝콘이 터지는 느낌이라든가, 뱃속에서 나비가 날아다니는 느낌이라든가, 배에서 작은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느낌이라든가. 주변에서 태동을 설명한 이야기들은 실제 겪어보니 대체로 수긍이 갔다.

그럼 수유하는 느낌은 저렇게 깊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걸까.

그리스 신화에도 우리가 은하수라고 부르는 Milky Way가 여신 헤라의 젖이 흩뿌려진 거라는데, 반짝이는 별가루라니. 그렇게 아름다운 우주 만물과 연결되는 느낌을 정말 받는 걸까.

나는 그 순간을 동경하며 기다렸다. 소설에 등장하는 매혹적인 묘사들을 되풀이해 읽고, 좋아하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

 Pablo Picasso <Mother and Child> 1963

그런데 그런 느낌은 아주 나중에,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반복되어 익숙해졌을 때의 일이었다.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잔혹했다.


일단 아팠다.

먹고 살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야무진 입에, 연약한 부위의 살을 계속 깨물리니 쓰리고 아픈 건 당연하다.

누군가는 아스팔트에 가슴을 가는 느낌이라고 했었는데, 오호 내 비록 직접 갈아본 적은 없지만 비슷할 것 같았다.

.................... ⓒ a little teapot

피가 나서 아픈데 어쩔 수 없이 또 물려야 할 땐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비명이 절로 나왔다.  

아기가 이가 나기 시작했을 땐 귀여운 아기 악어 입에 가슴을 넣는 느낌이었다.


젖이 불면 꿀이 가득 찬 벌집 같은 것이 꽉 들어찬 느낌인데 이게 또 굉장히 아팠다.

자는 아이를 깨우는 만행(지구 평화를 깨뜨리는 악행 중의 악행)을 저질러서라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싶을 만큼 아프고 불편했다.


인체의 신비는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데,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에 찌잉- 하고 전류가 통하는 느낌과 함께 젖이 돌아 뚝뚝 떨어지곤 한다. 내 이타적인 가슴은 TV에 나와서 앙앙 우는 이역만리 떨어진 남의 집 자식 놈들에게도 반응했다.

와, 이건 따뜻하고 신비로운 반응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 그게 그렇게 예쁘고 신비롭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집에 있다고는 해도 젖이 뚝뚝 흘러 방금 갈아입은 옷을 적실 때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가장 민망한 부분이 남았으니 이름하여 유. 축. 기.

이 망할 놈의 기계가 최고였다.

기계가 가슴을 쥐어짜니 아프기도 더럽게 아플뿐더러, 이 비주얼은 대체 뭔가. 그 요상한 것들이 내 가슴에 달려 펌프질을 하고 있을 때면, 이 민망한 장면을 견딜 수 없어 내게서 홀연히 빠져나가려는 멘탈을 잘 붙잡아야 했다.

젖소들에게 감정이입을 한 나머지 나는 실제로 유축기를 사용하면서 스마트폰을 들고 앉아 어떤 젖소들에게서 왜 우유가 나오며, 어떤 과정으로 우유가 생산되는지 심각하게 검색한 적이 있다.


가슴이 달려있다는 것, 가슴이 달려있지 않다는 것


가슴이 달려있다는 건 참 피곤한 거였다.

아기는 밤에 두세 시간 간격으로 깨어나 엄마를 찾았고, 잠이 부족해서 혼미한 상태로 젖을 물린 채 그대로 한참을 앉아 졸다 보면, 온몸이 경직되어 아프고 가슴도 피맺힌 채 부어올랐다.

와, 여자가 열 달 뱃속에 넣어 키웠으면 인간적으로 가슴은 좀 남자에게 달아주시지.  

내가 신이다 보니 인간적일 수가 없구나. 허허허. ⓒ a little teapot

사실 분유를 먹이면 될 일이다. 간단하다.

근데 앞글에서 살짝 밝혔듯 나는 베이컨을 좋아하는 경험주의자다.

온갖 종류의 경험을 조용히 환영한다. 그래서 수유도 해 보고 싶었다. 그냥.

(물론 내가 좋아하는 베이컨은 그 베이컨이 아니라 그 베이컨이다. 아 누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베이컨 좀 출시 안 해주나.)


다 큰 어른도 누군가에게 안겨 있으면 기분이 좋은데, 세상에 나와서 ‘여긴 어디 난 누구’ 상태인 아기도 아마 보드랍고 따뜻한 엄마 품을 좋아하지 않을까. 모유 제일의 굳은 신념으로 비장하게 모유수유를 준비한 건 아니었고,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한 번 준비해 봤어, 뭐 이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필요하면 되는 대로 분유도 먹이고 그랬다. 세상에 호들갑 떨어서 딱히 잘 되는 일은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나는 기본적으로 조용함과 편안함을 추구한다. 좋다고 믿는 것을 성심껏 추구는 하되 너무 힘들게 애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뭐 그런 태도로 인생을 살아왔다. 임신 중에도 태아에 안 좋을 수 있다고 알려진 것들, 이를테면 회나 초밥이라든가, 팥죽이라든가, 파인애플이라든가, 모두 슬금슬금 먹었다. 조심하라는 얘기, 너무 많이 먹지 말라는 얘기니까 공자님 말씀 따라,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부지 말씀 따라 중용만 잘 지키면 될 거라고 믿었다. 조리 중에 들어가는 요리용 술 한 방울에도 경기를 일으키는 임산부들의 그 마음가짐을 존경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었다.   


아이에게 좋다면 해 주고는 싶지만, 엄마의 영혼과 에너지를 모두 갈아 넣으면서까지 모유만을 고집하는 건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주려고는 했지만, 내가 할 일이 있거나 쓰려서 너무 아프거나 하면 그냥 냅다 분유를 타 주었다. 내가 우선 살아야 너희들을 먹여 살린다, 이러면서.

엄마가 편해야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다.

나처럼 남편 말고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이 타지에서 혼자 아이를 365일 책임져야 하는 경우는 더더욱.


사실 첫째 때 밤중 수유는 남편이 젖병으로 거의 책임져 줬다. 그리 하여 가슴이 달리지 않은 사람도 같이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사실 가슴이 있건 없건,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저 아이는 가슴이 달리지 않은 사람의 아이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연히 가슴이 달려서 나왔을 뿐인데, 가슴이 달렸다고 해서 힘든 수유가 전적으로 가슴 달린 자들의 책무가 되어선 안 되지 않겠는가. 전적으로 여성들이 차근차근 생각해서 선택하고, 함께 아이를 키우는 남성 혹은 여성들과 의논해서 방법을 찾아야 할 문제다.  


모유를 직접 먹이든 분유를 타서 먹이든, 아기와 부모가 몸을 밀착하고 가장 오래 붙어있는 게 수유 시간이다.
나는 수유를 하는 동안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정말 많이 실감했다.

아마 남편도 밤중 수유를 책임지면서, 아이를 안아 그 고픈 배를 채워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내 팔에 안겨 나와 눈을 맞추며 내가 주는 것을 받아먹고 자라는 너, 내 아이구나.


쉽지 않은 가슴


가슴이란 게 아직도 참 쉽지 않은 주제긴 하다.

가슴 해방 운동이 있어왔을 만큼, 그간 비틀리고 억눌려 온 게 가슴이기도 하다.

다른 성별과 비교해서 너무나 다르게 생겼으니 주목을 안 받으려고 해도 안 받을 수 없었을 터.

1968년 미국에서는 미스 아메리카 대회장 앞에서 브라 태우기 운동이 있었고(이 영향으로 급진적 페미니스트를 속칭 bra burner라고 부르기도 한다. 거 이름 참.), 2015년 즈음 영미권에서는 여성의 가슴 노출을 단속하는 공권력에 맞서 Free the Nipple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노브라에 대한 담화가 활발하다. 그 소중한 담화의 가운데엔 너무나 아깝게 세상을 떠난, 찬란하다 싶을만큼 아름다웠던 설리가 있었. 여성들의 주장은 내 가슴을 보라는 것도, 보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시선의 끝에 머무는 객체가 되기 싫다는 얘기다. 내 몸이 편안했으면 좋겠고, 내 몸을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당당히 드러낼 권리를 찾고 싶다는 것이다.


거 그냥 가려 두지 가슴을 꼭 해방시켜야 하겠나, 묻는다면.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똑같이 거 그냥 가려 두지 다리가 꼭 해방되어야 하겠나, 하고 묻지 않았을까.

'leg'라는 단어 자체도 입에 올릴 수가 없어서 피아노 다리를 피아노 다리라 부르지 못하고(이 무슨 홍길동), 디너 테이블에서도 'chicken leg'나 'chicken thigh' 대신 'drumstick, dark meat'라는 말을 써야 했으며, 다리를 벌리고 앉을 수 없어서 여성이 첼로를 배울 수 없었던 그 시기. 지금 우리가 보면 좀 웃기지 않나요.

그리고 노브라가 대량 살상의 위험이 있는 무슨 흉악 범죄도 아니고.


게다가 실은 남성의 가슴이 해방된 것도 얼마 안 된 일이라는 사실.

남성들의 가슴이 공공장소에서 노출되는 것은 똑같은 이유, 즉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금지당했다.

<Making Waves: Swimsuits and the Undressing of America>라는 책에는 1936년에 뉴욕주에서 남성들의 가슴 노출을 법적으로 허용할 때까지 남성들이 반드시 가슴을 가리는 형태의 수영복을 입어야 했었다는 귀여운 사실이 들어있다. 19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남성들이 수영장에서 몸에 붙는 수영복을 입을 수 없었으며, 수영복 바지 위에 치마 같은 천을 걸치도록 하는 곳도 많았다고. 30년대 초반에는 '수영복 바지만 입고 수영 및 선탠 할 권리'를 위해 싸우려는 용감한 남성들의 첫 시위가 코니 아일랜드에서 있었고, 35년 애틀랜틱 시티에서는 일단의 남성 시위자 그룹이 해변에서 대담하게 수영복 바지만 입고 있다가 체포되었다고 한다.  

(좌) 1936년 이전에 남성들이 입어야 했던 수영복 (우) 공공장소에서 가슴을 노출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남성들

(그러니 여성들의 가슴 해방 논의가 어후 당최 남사스럽고 눈꼴시어 못 보겠는 남성분들이 혹시 계시다면, 사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거 님들 쪽도 알게 모르게 다들 건너온 과정일 겁니다. 먼저 산 위에 올라가 있다고 밑에서 뛰어오는 사람들에게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아 주세요. 그냥 그저 자유가 있음 좋겠다, 가슴이 좀 편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렇다고 다들 벗고 다닐 것도 아니거든요.)


근데 수유 얘기하다 왜 갑자기 가슴 해방 운동의 역사.

꼭 관련성이 없는 것도 아닌 게, 미국에서는 마지막으로 유타와 아이다호가 합세함으로써 2018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모든 주에서 공공장소에서의 모유수유가 위법행위라는 오명을 벗게 되었다. 그 전에는 외설 혐의로 신고되거나 벌금을 받을 수 있었다.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가슴을 드러내는 행위가 위법행위로 적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모유수유 이외의 이유로 가슴을 노출하는 경우를 처벌하는 주는 많다. 예를 들어 루이지애나 주 같은 곳에서는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가슴을 노출하는 경우 초범(음? 가슴 노출 초범이라니, 왜 귀엽지?)이 3년의 징역, 2500달러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법이 저래 놓으면 아무래도 굉장히 조심스러워지고 위축되기 마련. 그래서 모유수유를 하는 여성들은 수유실이 확보되지 않으면 집 밖에서 긴 시간 있을 수 없고 구석으로, 화장실로 숨어들어야 했다. 물론 수유 커버라는 좋은 도구가 있다. 하지만 커버를 하든 뭘 하든 기본적으로 공공장소에서의 수유 자체를 반사회적 행위로 보는 것, 아기와 엄마가 숨어들도록 하는 것은 과연 그래야 하는 일인가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참고로 '모유수유의 역사와 문화(History and culture of breastfeeding)'라는 제목의 위키피디아 페이지에는 신기하게도 길바닥에 서서 가슴 한쪽을 내놓고 뭔가 놀라운 자세로 수유를 하는 20세기 초 서울의 한국 여성들 사진이 가장 먼저 보인다.

우왓. 깜짝 놀랐다.
지금 저렇게 하자는 것도 아니고, 나보고 저렇게 하라면 나도 못한다(왠지 힘도 엄청나게 세야 할 것 같은 자세!). 나는 단지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가 확확 바뀌어 왔고, 우리가 현재 가진 생각들이 불변의 진리로 천년만년 이어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모두 내 생각만 고집하며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조금만 더 유연했으면.

while working인지 while walking인지 잘 모르겠지만, 백 년 전만 해도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모습이었나 보다.

*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모유수유로 인한 노출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 헌법 재판소는 ‘경범죄처벌법상 ‘과다노출’ 위헌 판결(헌법재판소 2016.11.24. 2016헌가3)'에서 "심판대상조항(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33호)은 '선량한 성도덕과 성풍속’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인데, 이러한 성도덕과 성풍속이 무엇인지 대단히 불분명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과거 금기시되던 신체노출이 현재에는 유행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최근 약간의 부끄러움이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노출 행위도 개인적 취향이나 개성의 문제, 또는 사상이나 의견 표명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해당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1961년 5월 23일, 즉 5.16 군사쿠데타 이후 일주일이 되던 날, 47명의 남녀 '댄스광(狂)'이 대낮에 비밀 댄스홀에서 춤췄다고 붙잡혀 그중 45명이 실형선고받았다. 분명히 옷도 다 입고 춤췄을 텐데. 약 50여 년 후 헌법재판소는 일광욕을 위해 상의를 탈의했던 사람의 편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세상은 변하고 있다.


흠흠. 얘기가 슬그머니 옆으로 샌 감은 있지만.

그래서 이번 글 제목, "나는 가슴이 달린 채 존재한다, 고로?"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응. 그래서 그게 뭐."다.

"고로.. "가 아닌 이유, 즉 "고로?"라고 끝에 물음표를 단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가슴이 달렸든 달리지 않았든, 거기에서 뭐가 나오든 안 나오든, 저 아이는 내 아이다.

(가슴이 꽤 있는 편인데 모유가 거의 안 나오더라는 후배 H는 "언니, 나는 이거 그냥 디스플레이용인가 봐."라는 명언을 남겼다. 유쾌한 그녀가 갑자기 보고 싶다.)

나는 가슴이 달렸고, 거기에서 제법 뭐가 나오는 편이었고, 그래서 이런저런 경험을 했고,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달렸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무조건 최선을 다해 희생적으로 수유하라고 했으면, 흥, 뒤돌아(나는 소심하니까)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가슴이 달렸다고 해서 엄마만 죽으란 법 있나.


나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별 후회는 없다.

인생살이가 그렇듯, 어떤 결정에 냅다 좋은 점만 있기도, 딱히 나쁜 점만 있기도 어렵지 않은가.


가슴 달린 자의 행복


이제 그 결정으로 맛본 경험 중 좋았던 것, 재미있었던 것들을 조금 꺼내보고 마무리할까 한다.   


사실 익숙해지면 모유가 편하긴 하다.

귀찮기 그지없는 젖병 소독, 정량 맞춰 분유 타기 (및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분유 퍼먹기), 아기 입이 데지 않도록 적절하고 따뜻한 온도 맞추기, 외출할 때마다 보온병부터 시작해서 한 보따리 챙겨 나가기, 이런 모든 귀찮음이 사라지고 위풍당당하게 가슴만 꺼내면 되니까.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니 분유가 좀 비싼 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미국 수퍼에는 분유가 진열대에 있는 게 아니라 직원이 열쇠로 잠글 수 있는 유리장 안에 따로 보관된 경우도 제법 많았다. 분유를 적게 사도 된다는 건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았던 학생 부부에게 꽤 고마운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 경우엔 임신 기간 동안 붙은 살을 빼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도움이 된 정도가 아니라 중학교 이후 보지 못했던 숫자를 체중계에서 보고, 내가 혹시 죽을병에 걸린 건 아닐까 살짝 걱정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유는 엄마의 식사 메뉴에 따라 맛과 향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한다. 음식에 간장 베이스가 많은 동양인들은 달고 짭조름하다나.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이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것은 그런 이유도 있다. 차 교수님도 아닌 죄 없는 아가들에게 매운맛을 선사할 순 없지 않겠는가.

이 연구를 내놓은 연구진에 따르면, 모유를 통해 새로운 맛을 받아들이게 된 아기들은 이후 젖을 떼었을 때도 고형 음식의 새로운 맛과 변화에 잘 대비할 수 있다고 한다. 모유 유일신앙을 가진 일부 세력들은 이런 점 때문에 모유를 먹이면 아기들이 다양한 맛을 접하고 그래서 두뇌발달이 어쩌고 저쩌고... (중년 남성에게 정력 증진, 아기에게 두뇌 발달, 이 두 가지는 왠지 영혼 없는 "아 그래요"로 대답하게 된다. 비뚤어진 나.)


두뇌 발달이고 나발이고 이왕 먹는 거, 매일 새로운 맛을 보여주면 아기도 좋아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아이들도 함께 먹는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임했다.

슬금슬금 매운맛도 보여줘 가면서.

아가야, 오늘은 화이트 칠리맛이야. ⓒ a little teapot

아이들도 모유를 좋아했다.

특히 둘째가 그랬다.

쇼핑몰 같은 곳에 나갈 때는 나도 쇼핑을 하고 싶으니 분유를 챙겨 가기도 했는데 퉤, 하고 뱉으면서 “에미야, 이런 거 말고 집밥이 먹고 싶구나.”하는 눈빛으로 엄마를 쳐다볼 때가 종종 있었다. 말을 하고 나서는 "맛있어-"하며 웃기도 했다.


엄마 가슴은 아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이기도 하다.

사실 공갈젖꼭지를 개발한 사람에게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는 게 큰언니의 지론이었다. 약 15년 전(이라니 벌써. 아아.), 호빵을 닮은 조카는 입 주위에 늘 커다란 하트 모양의 자국을 새겨 이모에게 사랑을 표시하곤 했다.

근데 왜 우리 애들은 이 눈부신 평화의 메신저를 거부하는 걸까. 첫째는 혼자 잘 때가 아니면 찾지 않았고, 둘째는 진품(…)이 아니면 입에 넣지 않았다. 내 평소 당신을 그렇게 안 봤는데 대체 왜 이따위 물건을 내 입에 넣는 거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공갈젖꼭지를 물려 놓고 나의 평화를 찾고 싶기도 했지만, 배부르게 먹고 나서 엄마 가슴에서 숨바꼭질하고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내 몸을 내어주는 대가로 이런 귀여움을 보는 건 나쁘지 않았다. 행복했다.


그렇다. 피곤하고 아팠지만 수유는 나름 행복한 경험이었다.


작은 손으로 엄마 젖을 끌어당기고 고개를 야무지게 흔들며 젖을 찾는 모습도 귀엽고, 자는 것 같아 살짝 빼면 자면서 입을 계속 조그맣게 오물오물하는 모습도 너무 귀여웠다. 사실 수유를 하고 있을 때, 내가 이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가장 실감 났다. 그 순간만큼은 첫째도 나에게 치대지 못했고 나는 그 고요한 순간을 틈타 꾸벅꾸벅 달게 낮잠을 자기도 했다. 수액이 차 흐르는 나무, 고요한 강, 세상 만물과 연결된 느낌, 모두 가슴 벅차게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물론 모든 게 다 익숙해지고 났을 때의 일이다.


행복을 주고 사라진 가슴


마지막 비밀이랄까, 반전이랄까.

두둥.

수유가 끝나면 가슴이 사라진다.

아니 뭐라고요?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순 있겠지만, 많은 수의 산모들이 사라진 가슴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니 적지 않은 가슴들이 사라지는 듯하다.


평소에 속옷 매장 언니가 치수를 재어 주며 “언니(서로를 언니라 칭하는 미묘한 관계)는 편하게 딱 맞는 거 사시려면 외국 가셔야 돼요.”할 정도로 가슴이 있는 편이었다. (이젠 한국에도 제법 여러 사이즈가 갖추어졌지만 한동안 우리나라 속옷 매장에서 살 수 있는 컵 사이즈는 단 세 개뿐이었다.) 그런데 어이쿠 이건 뭐지, 어느 날 보니 얘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할 일을 다 하고 홀연히 사라진 시민영웅처럼.

내 눈에만 그런 건 아닌지, 간만에 고국에서 뵌 시어머니께서도 내 가슴이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하셨다.


아니 퇴화라는 건 원래 몇 세대를 걸쳐 이루어지는 거 아니었던가요. 얘들이 왜 갑자기 흔적 기관이 된 거죠.

둘째 수유까지 마치고 정말 오랜만에 단체로 만난 (우리 자매들은 이 세상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어요) 언니들은 날 보고 애가 앞뒤로 납작하다며 측은해했다.


그렇게, 나는 가슴이 달린 채 존재했었으나 더 이상 가슴이 없는 채 존재하게 되었다.

내 가슴은 어디 갔을까.

가슴아, 어디 간 거야.


그래도 결핍 가운데 한 줄기 빛과 같은 축복.

수유 중에 몰래 한 모금 마시는 맥주는 최고다.

수유가 끝날 날을 기다리며 최애들만 모아 잡인들의 손이 타지 않게 금줄로 묶어 보호해 두었던 나의 맥주들 ⓒ a little teapot


+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싶은 것들을 꾹 참고 여러 가지를 지키고 있는 엄마들에게 엄지 척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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