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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y 10. 2019

엄마의 몸, 엄마의 삶 (1)

 아리스토텔레스와 현대적 노예

생각해 보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지만 어떤 일을 맡게 되었다. 이 일은 출근 시간, 퇴근 시간 따로 없이 종일 이어진다. 월차도 휴가도 기본적으로 쓸 수 없다. 일은 고되다. 하루 종일 머리채를 잡힌 채 사는 느낌이다. 그런데 돈은 못 받는다. 사람들은 이 일을 직업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이 일을 전적으로 맡으면 전적으로 맡았다고 난리, 안 맡으면 안 맡는다고 난리다. 

이런 망할. 뭐 이런 게 다 있어.


엄마의 손, 엄마의 몸


나는 손이 늙었다.

요리, 바느질, 그림, 만들기 등 손으로 하는 온갖 것들을 좋아하는 데다 약간 강박적으로 손을 씻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서는 손이 광속으로 늙고 있다. 

(남편이 최근에 내 손을 보고 당황한 적이 있다. 그가 당황해서 나도 당황했다.)

특히 아기가 슬금슬금 기기 시작하고 고형식을 시작하면서 나는 정말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씻고, 닦고, 빨았다. 토해서 갈아 입히고, 응가해서 갈아 입히고 (“아니 기저귀를 채워놨을 텐데 응가를 했다고 왜 옷을 갈아 입혀야 하는 거죠?”…라고 물으신다면 참 자세히 대답해 드릴 수 있으나 참겠습니다.), 소매에 침이 푹 젖어서 갈아 입히고, 아기가 내 옷에 토해서 내가 갈아 입고의 무한 사이클을 니체의 영겁회귀처럼 반복했다. 둘째가 엎지른 물을 닦다가 냄새를 감지한 후 녀석이 싸 놓은 응가를 치우고 돌아서면 첫째가 옷에 밥을 싸 놓는 이 뫼비우스의 띠. 

이 놈들아 내가 시지프스냐 뭐냐. 

포기의 의미로 수건을 던지고 싶지만, 그것도 결국 빨래인 것…

아이들은 엄마를 거대한 수건으로 생각하는지 모든 걸 엄마에게 닦는다.(뭘 닦는지는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 않습니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는 후배 J는 “하루가 지날 즈음 아직 세수도 양치도 못했는데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나를 본다”며 나의 하소연에 응답했고, 육아 선배들은 그래도 지나고 나면 몸이 힘들 때가 그리울 거라고 했다. 지금은 삭신이 쑤시겠지만 나중엔 가슴이 쑤신다고. 


아기를 낳은 엄마는 몸이 약해진다.

아기를 낳은 탓도 있지만, 아기를 돌보느라 더 그렇다.

운동할 짬도 없고, 잠은 부족하고, 밥은 코로 먹어야 한다(아기 엄마들은 그 어려운 걸 해내지 말입니다).


게다가 나는 수술로 두 아이를 낳았다. 가른 곳을 또 갈랐다. 

자연분만이 일시불이라면 제왕절개는 할부의 느낌이라고 했던가. 

실은 나는 애 낳고 회복하는 게 체질인가 싶을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 화장실 가기와 걷기 등 단시간에 모든 미션을 클리어하고 간호사에게 슈퍼스타라는 말과 함께 하이파이브를 받은 나였건만, 살다 보니 수술한 곳은 두고두고 조금씩 아팠다. 날이 궂으면 쑤시기도 하고, 코어 운동을 좀 해보겠다고 하다 냅다 통증이 오기도 했다(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 수술 자국은 처음엔 매끈했지만 내 피부가 좀 특이한 체질이라 1, 2년이 지나면서 아프게 살살 부어올랐고, 사정 봐주지 않는 아이들이 온몸을 내던져 배 위에 올라타면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이렇게 배가 터지는 건가 (feat. 맛있는 독일 빵)

퇴원 후 먼저 다리와 발이 퉁퉁 붓기 시작했는데 아주 가관이었다. 시력 장애가 있는 분을 앉혀 놓고 내 다리를 만져보게 했으면 자신 있게 코끼리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왼쪽부터. ⓒ a little teapot

발은 출산 후 3일 정도부터 붓기 시작했는데, 제왕절개 산모가 자연분만 산모보다 훨씬 더 많이 붓는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아프고 굉장히 불편했다. 쪼그려 앉는 게 불가능했고, 발을 바닥에 디디면 저릿저릿 발이 아팠다. 온라인에서 한 치수 크게 잘못 산, 그래서 임신 기간 내내 편하게 신었던 앵클부츠도 안 들어가서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없을 정도였다. 


한 달쯤 지나자 발의 붓기가 서서히 빠지고 괜찮아졌지만, 그 한 달 동안 이번엔 무릎이 나갔다. 퇴원할 때 의사가 당분간 계단은 오르내리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1층에 부엌이, 2층에 침실과 욕실이, 지하에 세탁실이 있는 집 구조상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고 살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첫째는 아직 아가였다. 엄마가 안아 주는 게 무엇보다 좋은. 앉아서 안아 주려고 해 봤지만, 아이는 꼭 엄마 품의 포근함에 그 재미있는 높이감이 곁들여져야만 만족했다. 산후 검진 때 다시 만난 다정한 미국인 의사는 무릎이 시리다는 나의 말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정 무릎이 아프면 아이스팩을 대 보라는 조언에 내 무릎이 다 시무룩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 탈모 시대의 찬란한 막이 올랐다. 

원래 머리카락은 하루에 50개에서 60개 정도 빠지는 게 정상. 그런데 임신 중에는 머리가 잘 빠지지 않고 있다가, 출산 후 호르몬 수치가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놀랄만한 대규모 탈모 사태가 야기된다. 내 머리는 봄날 벚꽃잎 흩날리듯 흩날리기 시작했고, 아이가 돌이 될 무렵 나는 이상한 이마라인을 가진 잔디인형이 되었다.


평소 감기도 잘 안 걸리는 건강체질이었는데, 엄마가 되고 나서 정말 많이 약해졌다. 

약해진 몸으로 계속 피곤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인생의 특이점 


여자가 엄마가 된다는 건, 일종의 특이점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물리학에서 특이점(Singularity)이란 것을 지나면 그 이전과 이후의 성질이 같지 않다고 한다. 빅뱅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달라지는 것처럼. 

엄마가 되는 일 역시 내 삶의 성질이 완전히 바뀌는 일이었다. 

성질이 바뀌기 때문에, 특이점이 오면 그 이후를 예측하기 어렵단다. 

출산이라는 특이점을 지나, 내 삶은 그렇게 예측하기 힘들었다. 

네. 이 분께 배운 용어입니다. 2차 대전을 역사의 특이점이라고 설명해 주신 분. ⓒ tvN(알쓸신잡 시즌 3)


사진 속의 내가 너무 낯설어 크게 당황했던 적이 있다. 

페이스북이 툭 던져 준 5년 전의 나.


사진 속의 나는 긴 웨이브 머리에 일자로 붙는 스커트, 블라우스를 입고 힐을 신었으며 파란 백을 어깨에 메고 금속 재질의 커다란 팔찌를 하고 있었다.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짧은 머리를 아무렇게나 질끈 묶고 아이들이 만든 얼룩이 여기저기 묻은, 곧 버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수유복에 액세서리라곤 도저히 할 엄두를 못 내는 상태였다. 

들고 다니는 백? 4년째 커다란 기저귀 가방만 들고 다녔다. 그것도 때가 탈까 싶어 검은색으로 고른.


저게 불과 5년 전이란 말이지.

저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에 즐거워하고, 무슨 일에 골몰했었더라.

다시 힐을 신으라면 솔직히 못 신을 것 같았다. 그저 엄마가 되었을 뿐인데, 마티스의 그림같이 영롱하고 신선한 색깔의 날개를 가졌던 나비는 다시 집안에만 들어앉은 칙칙한 번데기가 되어 있었다.  


아이가 없었던 삶. 그게 어땠었는지 아득하기만 하고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온 것처럼, 지나온 그 강둑에 무슨 꽃이 피었었는지, 어떤 바람이 불었었고 흙냄새는 어땠었는지 너무 아득해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현대의 노예는 사유할 시간이 없다 


첫째는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미운 세 살, 둘째는 자유를 찾아 스스로 위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던 한 살 무렵, 그 황금의 콤비네이션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똥오줌 못 가리는 두 작은 인간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기고 그들의 요구에 반응하며 그들을 씻기고 그들의 오물을 처리하는 것은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나도 먹고 입고 씻어야 했지만 나의 욕구는 저만치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아기들이 먹을 음식을 따로 해서 두 가지 버전의 식사를 마련하고 (이유식 할 때는 세 가지 버전. 와 나 저거 다 어떻게 했지.) 아가들이 위험한 일을 하는 건 아닌지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며 청소와 빨래 등의 집안일까지 클리어하려면 엄마는 슈퍼 철인이 되어야 했다. 하루 종일 화장실도 내 마음대로 못 가고 아기들을 보면서, 시계를 몇 번이고 보며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의 귀가가 5분이라도 늦어지면 똑같이 흐르는 시간인데도 그때부터 왠지 곱절로 힘들게 느껴졌다. 


속 깊고 다정한 친구들이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면 ‘친정 엄마’라고 답했다.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고, 많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랑은 그저 “나도 엄마가 됐어요,” 하고 같은 공간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엄마는 워낙에 나이가 많으시니, 그보단 그냥 내가 하나 더 있었음 싶었다. 안 그래도 후드득 떨어지는 머리털로 손오공 분신술을 시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탈모의 기세라면 온 집안이 나로 가득 찰 텐데.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초, 라는 멜로디가 자동적으로 떠올랐다면 당신은 옛날 사람. 반가워요. ⓒ KBS (날아라 슈퍼보드)

한참 힘들 때는 하루가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시계를 봤다. 

살았다기보다는 버텼다. 정말 힘들 땐 진짜로 두 주먹을 쥐고 신음을 참으며 애를 쓰기도 했다. 

하루를 마치고 자리에 누울 때가 제일 달콤했다. 오늘 하루도 어떻게 넘겼구나, 하는 안도감.


나는 달걀 껍데기 같았다. 

나에게서 나온 달걀이 귀엽고 토실토실한 병아리로 삐약삐약 크고 있지만, 나는 속이 텅 비고 여기저기 금이 간 채 껍데기만 나뒹구는 느낌. 


운동할 짬이 안 나고 내 몸을 돌볼 겨를이 없으니 몸의 근육들도 풀어지지만, 생각의 근육들 역시 급격하게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종일 집 안에서 말 못 하는 한 녀석과 외계어에 능통한 또 한 녀석을 상대하며 함께 외계어를 구사하다 보면, 어른의 언어와 어른의 대화가 너무 그리웠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 지란지교에 대한 갈급은 늘 있었지만(유학생들의 삶이란 유목민 같은 것이어서 늘 헤어짐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이 때는 그냥 사람 자체에 대한 갈증이 컸다.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공부하고 글 쓰고 싶었다. 점점 무뎌지는 펜 끝을 날카롭게는 못 하더라도 녹슬기 전에 부드럽게 유지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애써 잠깐씩 짬을 낸다고는 해도 어림없었다. 


매일매일 집안일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말한 노예들 생각이 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도 굉장히 논쟁이 많은 부분이다. 이걸 내 상황에 갖다 붙이는 것 역시, 지금 글을 쓰면서도 내 머릿속이 시끄럽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두 가지 관점에서 보았다. 하나는 자산, 다른 하나는 도구. 노예를 주인의 자산으로 보는 것은 꽤 익숙한 관점이고,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도구다. 그는 노예를, 집 안에서 인간들이 먹고 입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들을 가능케 하는 살아있는 도구(tool, organon)로 보았다. 사람들이 그저 ‘사는’ 게 아니라 (living) ‘잘 살도록’ 하는데 (living well) 필요한 도구.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일들은 많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비된다. 예를 들어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옷감이 대량 생산되지 않았으니 천을 짜고 옷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는 엄청난 시간이 드는 일이었다. 이런 일들만 하고 앉아 있으면 그리스가 사랑하는 민주주의를 하러, 즉 다른 시민들을 만나 공동체에 대한 토론을 하러 아고라에 나갈 시간이 없다. 이런 일들을 맡아 집에서 노동을 해 주는 이들이 노예다. 거칠게 말하자면, 집에서 이런 노동을 담당해 주는 노예들이 있기에 시민들은 자유를 가지고 공적 토론의 장에 나가 의미 있는 행위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그저 계약에 의해 한다면 이게 논쟁이 될 이유는 크게 없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그 관계를 끝낼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노예는 그렇지 못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당시의 그리스에는 노예들이 많았고, 과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평생 노예로 쓰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당시에도 뜨거웠다. 여기에다 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생적으로 노예에 적합한 자들이 있다는 주장(Natural Slavery)을 펼쳤다. 어이쿠.

도비는 자유롭고 싶어요! ⓒ 1492 Pictures, Heyday Films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렇게 태생적으로 노예에 적합한 자들의 특징은 덕(moral virtues)이 없고, 이성적 능력(rational capacity)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것. 

(… 지금 혹시 누가 내 얘기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 능력이 충분히 발달되지 못한 자들은 다른 이들의 지도와 보호 아래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덕이 있고,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으며, 사유하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된 자들, 그래서 자기 자신과 타인, 나아가 사회에 관한 결정을 할 능력이 있는 자들은 태생적으로 주인이 어울리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논쟁적인데, 여기에다 한 마디 더 얹는다. 

'여성과 노예는 본질적으로 시민이 되기에 적절치 않다'고. 

아아니 뭐라고요. 이 봐요 할아부지, 내 당신을 그렇게 안 봤는데.


물론 기원전 삼사백 년 시대의 사람이 오늘날의 우리와 같은 가치관을 가질 거라는 것 자체가 소크라테스가 아이폰으로 비트 틀어놓고 힙합 하는 소리긴 하다. 

한데.
평소에 저 부분을 읽을 땐 나름 명랑하게 코웃음을 쳤었다. (정치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은 혜안을 가졌다고 생각해 아리스토텔레스를 정말 좋아하는 편인데, 저 부분과 인종주의적 시각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여성과 남성의 능력을 동등하게 보는 것은 오히려 그의 스승인 플라톤 쪽이다. 그리고 플라톤은 국가에 의한 공동 육아를 주장했으니, 여성의 능력과 육아는 플라톤에게도 뗄 수 없는 주제였나 보다.) 
하지만 집에서 손발이 묶인 채 지내다 보니 저 말이 서글퍼졌다. 

여성과 노예는 본질적으로 시민이 되기에 적절치 않다고? 

전처럼 명랑하게 코웃음치고 싶은데, 엄마가 되고 나니 저 말이 괜스레 마음 아프게 다가왔던 것이다.  


엄마인 나는 사유할 능력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사유할 시간이 없는 것인가.

시간이 없으니 가뜩이나 부족한 능력도 조금씩 없어지는 악순환. 

우리 가족들이 잘 살도록(living well) 내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우리 집안의 생존에 필요한 도구. 그게 나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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