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민 Oct 14. 2019

공짜로 마음껏 노는 일요일 오후

뮌헨 사방팔방에 놀이터가 솟아난다: FreizeitSportMünchen

이 글은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을 좋아하는 해외 리포터'들이 같이 만들어가는 매거진 <해외특파원이 발견한 제3의 공간>에 싣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모여 협업하는 공간이고, 저는 일원으로 참여합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것은 그야말로 제3의 공간.
평소에는 그저 평범한 공원 잔디밭이지만 일요일 오후마다 뮌헨 지역 어린이와 가족들이 신나게 뛰노는 놀이터로 변신하는 공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킹스크로스 역 9와 3/4승강장 같은, 근사한 제3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에도 9와 3/4 승강장이 있더군요. 사랑스러운 이웃 주민의 센스.

Spielnachmittage 프로그램을 저희가 처음부터 맘먹고 찾아간 것은 아니고요.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했어요. (참고로 저 아래 링크된 유튜브 비디오를 보면, 사람들이 이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길 가다가 자연스럽게 섞여들 수 있는 게 이 프로그램의 큰 매력이라고 담당자분이 설명하시는군요.)


작년 가을, 남편이 Drachen Fest(연날리기 축제)가 있다고 가보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주말 오후에 바람도 쐴 겸 나가 봤는데요.  

(나의 자식들아 너희들에게 연이란 것을 보여주마!)

신선한 가을바람이 꽉 찬 공원에 이렇게 오만 가지 연이 두둥실 떠 있는 와중에 저 쪽으로 뭔가 사람들이 바글바글, 떠들썩하고 신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처음에는 추최 측이 있는 텐트인가 싶었는데, 주최 측에서 뭐 저렇게까지 신날 일이 있을까요.

엄마! 저기 가 보자! 손가락질 중인 첫째.

풀밭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두 놈을 강아지 몰듯 몰아 그쪽으로 가 봤더니 어머나, 사람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놀이판이 떡 벌어져 있지 않겠어요. 이게 웬 떡.

보시다시피 각종 장난감들이 즐비하게 널브러져 누구나 마음껏 이용하며 놀 수 있는 공간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노세 노세

이것이 바로 Freizeit Sport München에서 운영하는 Spielnachmittage입니다. '공짜로 노는 일요일 오후'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어요.

 

어떤 모습의 프로그램인가요?


그냥 자유롭게 노는 프로그램입니다. 판만 깔아주고, 사람들이 채우는 거죠.

티셔츠를 입은 스태프가 서너 명쯤 있는데 주로 놀잇감을 풀어놨다가 거두어 가져 가는 일, 놀잇감 사용 방법을 잘 몰라서 물어보면 알려주고 시범을 보여주는 일을 합니다. 보면 주로 자기들도 어울려서 놀고 있어요. 흐흐.

어떤 장난감들이 제공되는지, 노는 모습이 어떤지 함께 맛보기로 보시겠어요. (사진 출처: muenchen.de) 

고무줄로 묶인 공을 손에 감아 후려치는(...) 볼링
고리 던지기
각종 공뿐 아니라 배드민턴, 꼬마 테니스, 찍찍이 캐치볼, 팝 앤 캐치 등 볼 게임 종류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습니다.
처음 보는 아이들이 한 팀이 되어 축구도 하고
접시도 돌리고
이거... 저희 네 식구 도전했는데 최고 기록이 단 한 발짝이었어요. 크흡. 되게 재미납니다.
우리 집 꼬맹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원래 두 명이 대결하는 오목 같은 게임인데, 저희 애들은 그저 모두 넣었다가 와장창 빼기를 즐깁니다.
아주 어린 꼬꼬마들이 놀 수 있는 공이며 탈 것, 터널, 푹신푹신 매트들도 많고요.
나의 늙은 전정기관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쏙 들어가서 타는 팽이.
이것도 되게 재밌어요. 제1 세대 전동보드 같은 이 레트로한 감성.
하키도 하고
승마(...)도 즐기고.
전통놀이도 제법 많습니다. 이건 디아볼로라고 하는 요요 같은 건데, 우리나라에도 비슷하게 죽방울놀이라는 전통 놀이가 있었다는군요.

이밖에도 놀이동산에서 볼 수 있는 아주 커다란 놀이기구들도 제법 많이 등장하고, 활쏘기, 클라이밍이나 에어로빅 같은 것도 할 수 있어요. (아래 유튜브 영상 참조)


Mein München에서 제작한 소개 영상을 보시겠어요.


유튜브에 소개 영상이 하나 있기에 가져와 봤어요.
2012년 클립이라  촌스러움이 살포시 배어있지만,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원하고 운영하시는 분들의 이야기와 함께 실제 그곳의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어서 이 공간이 궁금한 분들께는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아 가져왔어요.   
저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구는 정말이지 죽도록 어지럽습니다. 우웁.

https://www.youtube.com/watch?v=StIh4exORVQ


중요한 포인트는 뮌헨의 모든 사람들을 조건 없이 환영한다는 점인 것 같아요. 국적과 인종과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즐겁게 섞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거죠.

움직임이 적어지는 도시 생활을 감안할 때, 아이들이(그리고 사람들이) 좀 더 활기차게 몸을 움직이고 놀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고민을 했나 봅니다. 답은 무엇보다 '간편하고 쉽다는 점'. 그런 의미에서 별다른 준비 없이 그냥 지나다가 마음이 내키면 산뜻하게 들러서 움직이며 놀 수 있도록 설계해 두었습니다. 즉 특별한 옷도, 준비물도, 돈도 필요 없고, 등록 절차 같은 것도 전혀 없이 그저 즉흥적으로 와서 즐길 수 있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최대 장점인 것 같아요.


예전에 놀이 관련 리서치를 할 때 제 눈에 가장 귀엽고 신기하게 보였던 개념이 바로 play와 ability를 합친 Playability라는 개념이었어요. 현실의 바쁜 삶과 복잡한 스케줄 속에서 어떻게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나오게 할까를 고민하려면 구조적 문제(structural issues)도 중요하지만 행동학적 문제(behavioral issues)도 신경 써야 한다고 하더군요. 즉, 놀이 인프라를 갖추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행동하게 만들려면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런 점에서 이 '노는 일요일 오후' 프로그램은 진입 장벽을 과감히 허물고 (준비물, 등록 절차 노노) 접근성은 크게 높여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원에 누구나 한 번쯤 가볍게 들를 수 있도록 설계) playability 측면에서 아주 뛰어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참고> Playability란?

쉽게 말하면 일상을 playable 하게 만드는 것.


우리가 머릿속에 이렇게 행동하는 게 좋다는 어떤 개념이 있더라도, 실제로 선택을 하고 몸을 움직여 그것을 행동에 옮기기까지는 수많은 다양한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집에서 티브이만 보는 것보다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이 좋다'는 개념이 있다고 해 봅시다. 하지만 실제 놀이터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선택을 하기까지는 날씨가 너무 덥다든가, 부모가 일을 하고 와서 지쳤다든가, 아이가 학원에 가야 해서 중간에 낀 시간이 많지 않다든가 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중간에 개입하게 되지요.
따라서 좋은 놀이터나 공원 시설을 갖춰 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저 갖춰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부모나 양육자들이 현실의 바쁜 삶 속에서 어떻게 실제로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놀러 나오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면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playability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의 행동학적 문제(behavioral issues)도 중요하다는 것이죠.


Playability를 높이기 위해서는 도시 자체를 어디서나 놀이가 가능한 놀이터로 바꾸어 버리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 위에 hopscotch 패턴을 그려놓는다든가, 길을 시냇물처럼 생각하고 길 위에 작은 물고기 그림을 그려 아이들이 신나게 앞으로 가고 싶게 만든다든가, 버스 정류장에 벤치 대신 그네를 설치한다든가, 빨래방이나 병원 대기실을 작은 게임 룸으로 만드는 그런 시도들. 그렇게 일상 구석구석에 놀이를 할 수 있는 요소를 배치하면, 놀이가 특별한 계획을 요구하는 이벤트라기보다 그냥 일상 속의 자연스러운 부분이 될 수 있는 거죠.


공짜로 노는 일요일이 playability 개념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던 건, 이 프로그램이 사전에 어떤 등록이나 신청을 할 필요도 없고, 특별한 운동복이나 장난감이나 도구를 스스로 준비할 필요도 없고, 그냥 가볍게 산책하듯 나갔다가 몸만 가서 신나게 놀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갈 수 있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죠.


언제, 어디서 열리나요?


빠릿빠릿하게 팸플릿을 챙겨 온 남편 덕분에 스윽 훑어보니 뮌헨 지역의 공원 여섯 군데에서 일요일 오후마다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놀이판이라고 합니다.

서울로 치면 여의도 공원, 올림픽 공원, 하늘 공원, 선유도 공원, 삼청 공원, 양재 시민의 숲, 이런 곳에서 일요일마다 아이들이 무료로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셈.

이렇게 은혜로울 데가.

뮌헨 사방팔방에서 놀이터가 솟아난다

비가 오는 날이나 잔디가 젖은 날에는 놀이를 쉬고요. 5월부터 10월까지는 2시 반부터 6시에 진행되고, 춥고 해가 짧은 11월부터 4월까지는 1시 반부터 4시 반까지, Ost-, Westpark와 Luitpoldpark 세 곳에서만 진행된다고 합니다.


저희는 주로 Riemer Park를 가는데요. 공항이었던 곳을 바꾼 아주 널찍한 공원으로, 독일의 건축 조경 부문에서 상을 받았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커다란 호수가 있어서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고, 아까 연날리기 축제 사진에서 보신 것처럼 높다란 언덕들이 있어서 겨울에는 썰매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에요. 언덕 높이가 약 20미터나 되어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좋고, 날씨가 좋은 날에 언덕에 서면 알프스의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노는 일요일 오후' 말고도 이곳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참 많더라고요. 뮌헨에 사시는 분들은 평일과 토요일에도 거리 곳곳에서 진행되는 여러 행사들을 참고하시면 아이들 방과 후가 풍성해질 것 같습니다.  


저희의 경험을 조금 말씀드리자면.


갈 때마다 정말 즐거운 곳이었어요.

Riemer Park 자체가 축제도 볼거리도 많고, 피크닉과 일광욕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가득한 곳이거든요.

작은 휴식용 텐트들이 잔디 위에 꽃처럼 피어나고, 부러운 그릴 연기도 여기저기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곳. 킁킁.

그렇게 때문에 공원을 돌면서 호숫가에서 물놀이도 하고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이 놀이판에도 뛰어들고 하다 보면, 포도송이에 영근 포도알처럼 한 나절이 탱글탱글 꽉 차는 경험을  수 있습니다.

잠깐. 어느 집에서 지금 삼겹살 굽는데? 저기, 급하게 친교를 맺고 싶습니다만.
고리 던지기 놀이 획득
서로 등지고 캐치볼을 하는 신기술
공든 탑 때려 부수기 놀이
축구와 배구

신기했던 것은 이 잔디밭 위에서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팀을 만들어 진지하게 하는 축구가 가능하다는 점이었어요. 아이들은 짧은 다리로 어른들을 쫓아다니기에 바빠 공을 잡을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진지하게 임하더군요. 누구나 즉흥적으로 모여 노는 공간이기에 가능한 팀 구성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남녀 혼성으로 배구를 즐기는 모습도 보이더군요. 그러니까, 이 공간은 잔디 위에서 뭔가 하고 싶다면 준비물이나 팀원이 모자라는 일이 없는 공간이랄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일시적으로 한쪽에서 진행되던, 구름 모양으로 그림 그리기 코너.

지나가던 남녀노소 누구나 구름 사진 위에 자신들의 창의력을 냅다 발휘하는데, 어후, 사진마다 그 안에 든 이야기가 꼼지락대는 느낌. 작품들을 모아 꽂아두니 하나하나가 모여 조그만 그림 동화책이 된 듯 너무나 사랑스러웠어요.

팔았으면 살 뻔했음
이건 우리 작은 언니 닮았... 흠흠
우리 둘째가 좋아하는 코끼이 (코끼리)
너무나 매력적인 비주얼. 굉장히 재미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화 속 주인공 같지 않나요.

마지막으로 저희 아이들 노는 동영상을 하나 올려봅니다.

이 곳의 터질 듯 즐거운 에너지가 사진으로는 표현이 잘 안 될 것 같아서요.

일단 이 곳에 들어가면, 피부로 확 느껴지는 놀이 에너지가 엄청나요. 그 강렬하고 신나는 파장에 휩싸여 입장과 동시에 덩달아 맥박이 빨라지고 즐거워지는 곳이거든요. 아래 동영상이 그 에너지의 일부라도 전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놀이판을 정리하고 마감하는 시간에 찍은 거예요. 그래도 장난감도, 에너지도 가득하죠?)


제안합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풍성한 놀잇감으로 아이들을 기다리는 제3의 공간.

어른도 스스럼없이 뛰어들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공간.

요금도 없고, 사전 신청이나 예약도 필요 없이 아무나 그냥 가다가 들러서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

지역 사회 주민들이 아무 장벽 없이 웃으며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알록달록한 공간.


키즈카페 같은 곳보다 아이들에게도 부모들에게도 훨씬 건강한 웃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모들의 건강한 웃음은 일단 지갑이 안 열리는 데서 나옵니다... 후후.)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놀이 기회가 분명 있을 테지만, 이렇게 정기적으로 아이들과 약속된 프로그램이 있는지는 궁금합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이런 프로그램이 딱히 없다면,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나라에도 좋은 공원이나 탁 트인 장소들이 많고, 이런 놀잇감을 구비하는 데는 그다지 큰 예산이 들 것 같지 않거든요. 장난감은 기부를 받아도 좋을 것 같고, 일단 구비된 물품들은 한 지역사회 내에서 돌아가면서 이용해도 좋을 것 같고요. 그래서 인프라는 충분하(거나 적어도 구축이 어렵지 않)다고 본다면 조직과 인력만 다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심지어 자원봉사를 하려는 누나 형들도 많을 것 같은데) 이런 간소하지만 효과적인 아이디어가 널리 퍼져나가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도 싱그러운 공원에서 늘 정해진 시간에 아이들을 기다려 주는 이런 깜짝 놀이터들이 전국 각지에 마법처럼 솟아나면 좋겠어요. 엄청난 놀이 에너지가 소환된 마법진에 아이들이 휘리릭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모두가 한 번쯤 즐겁게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을 탐험하는 신나는 배움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