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쓰는 동화 5
이번 편의 그림은 동화에 등장하는 수아와 해진이가 그려주었습니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그림 너무 고마워요.
저기 슬픔을 먹는 달빛개 야나가 옵니다.
야나는 영롱한 달빛 털이 복슬복슬하고 은빛 코가 반짝이는 귀여운 꼬마 개에요. 탐스러운 꼬리는 밤길을 걷다가 다른 달빛개들을 만날 때마다 반갑게 흔들립니다. 달빛개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슬픔을 먹어왔답니다.
깊은 밤이 되면 야나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몸을 길게 늘여 쭈우욱 기지개를 켜고 엄마와 함께 세상으로 나갑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낮 세상은 시끌벅적한 소리와 알록달록한 색깔과 여러 가지 냄새로 가득하지만, 달빛을 받아 고요하게 빛나는 밤 세상에는 소리도 색도 모두 물러나고 냄새만 남습니다.
킁킁.
엄마와 야나는 차가운 밤공기를 꼬리로 살랑살랑 저어가며 촉촉한 코를 높이 들어 슬픔의 냄새가 나는 곳을 찾습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슬픔의 냄새가 있습니다. 맑은 바람 냄새가 나는 슬픔, 비릿하고 촉촉한 여울물 냄새가 나는 슬픔, 소독약 냄새가 가득 묻은 슬픔, 오랫동안 켜켜이 쌓인 낙엽 같은 냄새가 나는 슬픔, 바다 내음 나는 슬픔, 서늘한 얼음꽃 냄새가 나는 슬픔, 그리고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나는 슬픔.
달빛개들은 달빛이 비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문이 굳게 잠겨 있어도, 창문이 꼭꼭 닫혀 있어도, 방 안에 작은 달빛 조각이 하나 빼꼼히 비친다면 그 안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요. 비 오는 밤이나 검은 구름 가득한 밤에는 달빛개들을 대신해 비의 물고기와 구름의 고양이들이 세상에 나옵니다. 그런 날이면 야나는 엄마 품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 마음껏 뛰어 놀기도 합니다. 다정하고 호기심 많은 야나는 구름의 아기 고양이, 비의 꼬마 물고기들과도 사이좋게 지냅니다. 엄마가 허락해 주시면 가장 친한 친구인 구름고양이 눌의 가족이 슬픔을 핥으러 다닐 때 따라가기도 하고, 아빠와 함께 비 내리는 도시에 나가 비의 물고기 떼를 이리저리 몰면서 첨벙첨벙 뛰어다니기도 하지요.
달님이 구름 뒤에 숨었다가 나왔다가 숨바꼭질을 하는 날에는 달빛개들과 구름의 고양이들이 함께 돌아다니지만,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고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은 달빛개들이 푹 쉬는 날입니다. 나뭇잎 위에서 느릿느릿 춤추는 달팽이들과 촉촉한 땅에서 쏘옥 얼굴을 내미는 지렁이들이 앞으로 오랜 시간 비가 올 거라고 속삭여 주면, 야나네 식구는 세상 구경을 하러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해요.
야나의 아빠 리노는 올해 달빛 순찰대원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웃의 토리 아줌마, 쿤 아저씨와 함께 이른 저녁에 먼저 세상으로 나갑니다. 달빛 순찰대는 슬픔이 많이 모여있는 곳을 돌아보면서 짙고 단단한 슬픔을 먹은 달빛개들을 보살핍니다. 따가운 슬픔을 먹고 아파하거나, 딱딱하게 굳은 슬픔을 먹고 배탈이 난 개들에게 달빛 연못에서 길어 온 물을 먹이고 쉬게 하는 일을 하지요. 달빛 연못의 물은 황금색인데 꿀처럼 달고 아주 좋은 향기가 납니다. 봄에는 햇빛을 듬뿍 받은 달콤한 흙냄새가, 여름에는 코가 붕붕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이 진한 꽃향기가 가득하지요. 가을에는 연못 물에 하루하루 다른 맛의 풍성한 과일 향이 그득하고, 겨울에는 비가 그친 뒤의 숲 속 향기 같은 아주 상쾌한 향이 납니다. 야나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슬픔의 부스러기들을 조금씩 맛보곤 했어요. 그때마다 배탈이 나지 않도록 달빛 연못의 물을 꼭 마셔야 했지요. 지금은 물을 마시지 않고도 제법 많은 양의 슬픔을 먹을 수 있답니다.
야나의 엄마 시요는 어른들의 슬픔 냄새와 아이들의 슬픔 냄새를 구분할 수 있어요. 코 끝에 조금은 보드라운 아이들의 슬픔이 감지되면, 야나의 엄마는 야나를 데리고 항상 아이들의 슬픔을 먼저 먹어주러 갑니다.
“야나, 오늘은 저기 작은 벽돌집부터 가자꾸나. 냄새를 맡아보니 오늘도 먹어야 할 슬픔이 제법 많은 것 같은데, 많이 먹을 수 있겠니?”
“그럼요! 문제없어요.”
야나는 가슴을 쭉 펴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엄마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담한 꽃나무가 있는 벽돌집으로 향합니다.
달빛이 비치는 조그만 방에 야나가 작은 앞발을 들이자, 몸집이 작은 아이가 뿜어 낸 커다란 슬픔의 냄새가 강하게 코를 간지럽힙니다.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이런 큰 슬픔 덩어리가 나왔을까요. 아이는 고양이를 꼭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습니다. 고양이는 눈을 가늘게 떠 야나를 보고도, 잠깐 코 끝을 살짝 찡그리고는 다시 힘없이 눈을 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빛개들을 볼 수 없지만, 동물들은 대체로 야나를 볼 수 있습니다. 야나를 귀찮아하거나 조금 경계하는 동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슬픔을 먹으러 온 것을 알기 때문에 어서 사랑하는 주인의 슬픔을 먹어 줄 수 있도록 조용히 곁을 지켜 줍니다.
“꼬마 친구야 안녕? 내가 왔어. 오늘은 무슨 일로 그렇게 슬펐니?”
고양이 털과 눈물 자국이 함께 말라붙은 아이의 뺨을 엄마가 꼬리로 살랑살랑 부드럽게 쓸어 닦는 동안, 야나는 복슬복슬한 은빛 꼬리를 열심히 흔들며 아이의 손과 얼굴을 핥아 인사를 건넵니다. 야나는 아이들의 보드랍고 작은 뺨을 핥는 것을 좋아해요. 아이들의 뺨은 밀가루 반죽처럼 말랑하고 매끈한 데다 늘 기분 좋은 온기가 있거든요. 아이가 깨지 않게 가만가만 인사를 나누고 나서, 야나는 엄마와 함께 방 안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슬픔을 먹기 시작합니다. 먼저 엄마가 한 입 먹어보고, 야나가 먹을만하다 싶으면 아냐에게 눈짓을 하지요. 이 아이의 슬픔은 촉촉한 물기가 어렴풋하게 배어 있는 맛이네요. 슬픔을 한 입 베어 물고 오물오물 씹으면 달빛개들은 슬픔의 주인공이 어떤 일로 슬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오늘 이 아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 온 고양이가 이제 나이가 들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군요. 아이는 저녁도 먹지 않고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지쳐서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잠이 들었습니다.
달빛개들이 슬픔을 부지런히 먹어 치우면, 아이들은 꿈속에서 슬픔을 잠시 잊고 좋은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잠든 채 꿈을 꾸며 방긋 웃어주면, 야나는 기뻐서 꼬리를 흔들며 팔짝 뛰어오르지요. 슬픔을 다 먹어 치우자마자 잠든 아이의 입꼬리가 마술을 부린 것처럼 살짝 올라갈 때도 있지만, 찌푸려진 미간이 한참이나 펴지지 않을 때도 있어요. 지금 이 아이처럼요. 그럴 때면 엄마와 야나는 둥그렇게 몸을 말고 앉아서 아이의 아픈 마음을 정성스럽게 핥아줍니다. 잠시나마 즐거운 꿈을 꾸기 바라며 정성스레 정성스레 핥아주다 보면, 아이의 숨소리와 표정이 한결 편안해진답니다. 고양이를 안은 아이의 얼굴이 드디어 부드러워지자, 아이 품에 안긴 고양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달빛개들을 지그시 바라보며 고마움을 표합니다. 그제야 야나와 엄마는 몸을 일으켜 아이의 뺨을 부드럽게 핥아 인사를 건넨 뒤, 아직 슬픔의 냄새가 살포시 배어있는 방을 떠납니다.
“엄마,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왜 죽음이 있는 걸까요? 우리 달빛개들처럼 모두들 죽지 않으면 슬픔도 훨씬 줄어들 텐데.”
“음... 우리도 수명이 다 하면 점점 몸이 투명해지고 결국은 달빛에 스며들어 긴 잠을 자게 되지 않니, 미노 할아버지처럼? 우리 달빛개들에게는 그게 죽음이라고 할 수도 있지.”
“그래도 우리는 안식에 들어간 미노 할아버지를 가끔 불러내서 만날 수 있잖아요. 갑자기 헤어져서 영영 못 보는 건 너무 끔찍해요.”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건 슬픔 중에서도 아주 무겁고, 크고, 또 깊은 슬픔이지. 야나는 헤어져서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걸 죽음이라고 생각하는구나?”
“네. 엄마가 당장 세상에서 없어져 버린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이 온통 녹아 없어져 버릴 만큼 슬퍼요. 엄마, 저 아이는 고양이가 죽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슬퍼하겠죠? 아마 밤새도록 핥아도 굳은 얼굴이 풀어지지 않을지 몰라요.”
“그럼 또 와서 달래주자꾸나. 우리의 마음이 닿으면 방금 그 고양이가 아이 꿈에 놀러 와 줄 거야.”
“네. 그때는 더 많이 먹어주고 더 많이 뽀뽀해 줄 거예요.”
“그래. 우리가 이렇게 걱정하고 위로해 주면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힘을 낼 수 있지. 자, 이제는 누가 또 울다 잠들었는지 찾아가 볼까?”
다시 밤거리로 나온 엄마와 야나는 또 한 번 기지개를 켜고 온 몸을 푸르르르 털어 몸에 묻은 슬픔의 부스러기들을 털어낸 다음, 다시 코를 높이 들고 귀를 쫑긋거리며 또 다른 슬픔의 냄새를 찾아갑니다.
야나는 달빛개의 나이로 일곱 살입니다. 일곱 살이 된 달빛개는 하룻밤에 꼬마 일곱 명 분의 슬픔을 먹을 수 있어요. 열다섯 살이 되면 십 대들의 슬픔을 먹을 수 있고, 스물일곱 살이 된 달빛개는 어른들의 슬픔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지요. 서른 살이 되면 어른 개가 되는데, 그때부터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슬픔의 양을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먹습니다. 안 먹는 날이 있어도 상관없어요. 이웃집 솜이 누나는 요즘 다이어트를 한다고 슬픔을 안 먹고 집에만 처박혀 있어서 누나네 엄마가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곤 해요. 그래도 솜이 누나의 배는 별로 줄어들지 않는 것 같지만요. 유쾌하고 먹성 좋은 아빠와 다정하고 부지런한 엄마의 장점을 이어받은 야나는, 틈나는 대로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슬픔을 먹고 아이들을 위로해 줍니다.
이삿짐을 풀다 만 방에서 꼬깃꼬깃 접은 편지를 손에 쥐고 잠든 수아. 멀리 두고 온 친구들과 정든 선생님이 그리워 유리처럼 반짝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다 잠들었어요. 그 옆에는 동생 은호가 서울에 계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다 시무룩한 얼굴로 잠들었고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푸르스름한 슬픔에서는 맑은 솔바람 맛이 납니다. 씹으면 바삭바삭하고 좋은 향기가 나지요. 색도 반짝반짝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오늘은 수아가 멀리 두고 온 친구들과 재미있게 뛰어노는 꿈을 꾸기 바라며, 또 은호가 따뜻한 할머니 품에 안겨 깔깔 웃는 꿈을 꾸기 바라며, 야나는 보석 알갱이처럼 바삭바삭한 슬픔을 하나씩 씹어 삼킵니다.
고소한 기름 냄새 가득한 집에서 예쁜 꼬까옷을 입은 채 다홍빛 눈물을 흘리다 잠든 지영이. 때죽나무 열매처럼 아린 지영이의 동그란 슬픔을 찬찬히 씹어 먹어보니 지영이는 오랜만에 뵌 할머니께서 장손인 남동생만 예쁘다 하시고 지영이가 학교에서 받아 온 상장도, 지영이가 정성 들여 그린 그림도 눈여겨보아주시지 않아서 속이 몹시 상했군요. 시요는 그런 지영이가 가여워 지영이의 상처 난 작은 가슴을 한참이나 핥아 주었습니다.
“엄마, 장손이 뭐예요?”
“한 집안에서 태어난 손주들 중 맏이가 되는 남자아이를 장손이라고 한단다.”
“지영이가 더 먼저 태어났는데, 그럼 지영이는 뭐예요?”
“글쎄... 부르는 말이 따로 있나?”
“지영이는 이렇게 곱고 귀여운데, 그리고 그림도 저렇게 알록달록 멋지게 그렸는데, 왜 지영이 할머니는 동생만 예쁘다고 하셨을까요?”
“그러게 말이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달빛개들 사이에는 장손도 없고 남자아이만 예쁘다고 하시는 할머니도 없어서, 지영이의 슬픔을 우물우물 먹으면서도 야나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슬픔을 모두 이해하려면 야나도 엄마 아빠처럼 훨씬 더 많은 슬픔을 먹어야 하나 봐요.
킁킁킁. 과일 향이 솔솔 나는 달콤한 슬픔들. 이건 주로 친구가 내 마음을 잘 몰라줘서 속상한 아이들의 슬픔이에요. 말랑말랑하고 혀에서 부드럽게 녹기 때문에 핥아먹을 수 있는 슬픔이지요. 민지는 건이를 좋아하는데 건이는 해진이가 더 좋은가 봐요. 민지가 잠들기 전에 몰래 흘린 말캉한 분홍색 눈물을 찹찹 핥아보니 조금은 쌉싸름하고 설익은 복숭아 맛이 나요. 옆집에 사는 해진이는 오늘 민지랑 종이접기도 하고 같이 동네 도서관에도 가고 싶었는데, 민지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쌀쌀맞게 굴어서 속상하고 억울했군요. 해진이는 머리맡에 풋사과 향이 나는 연두색 슬픔을 조그맣게 뱉어 놓았어요. 아이들의 이런 달콤하고 귀여운 슬픔을 먹을 때는 엄마 시요의 얼굴에 살살 웃음이 번져요. 아이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정답게 자라나기를 바라면서, 엄마와 야나는 곶감처럼 말랑말랑한 슬픔을 냠냠 씹어 삼킵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엉엉 울다 잠든 현준이. 현준이를 너무나 사랑해 주시는 엄마는 베트남에서 왔어요. 피부색이 약간 더 짙고 아직 또래 친구들처럼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현준이를 친구들이 손가락질하며 놀렸나 봐요.
“네가 한국말이 조금 서툰 건, 네가 베트남 말을 그 아이들보다 훨씬 잘하기 때문이야. 그러니 부끄러워하거나 속상할 필요가 전혀 없단다. 곧 한국말도 아주 잘하게 될 거야.”
엄마가 조금은 더듬거리며 진심을 담아 따뜻하게 말씀해 주셨지만 현준이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엄마, 내가 속상한 건, 사실 다른 거야. 나를 놀리는 애들 있잖아? 걔들은 엄마가 유럽 사람인 아기가 티브이에 나오면 너무 귀엽다고 호들갑이야. 우리는 다 같은 아시아 사람인데, 왜 나는 놀리고 그 아기는 예쁘다고 해?”
엄마는 말없이 한숨을 쉬었어요. 엄마 한숨은 서늘했지만 엄마 품은 따뜻했습니다.
따뜻하게 안고 위로해 준 엄마 덕분에 현준이는 겨우 눈물을 닦고 잠들었지만, 방을 가득 채운 현준이의 보라색 슬픔에서는 설익은 살구처럼 아주 시고 떫은맛이 납니다. 현준이 엄마의 시커먼 회갈색 슬픔은 마음속에 아주 오래오래 묵혀 둔 듯 짜고, 먹기 힘들 만큼 딱딱하게 굳어 있네요. 현준이 엄마의 얼굴에는 왜인지 검고 푸른 멍자국도 보입니다. 씹기 힘든 슬픔을 엄마 시요가 정성을 다해 차근차근 씹어 먹습니다. 야나는 아직 꼬마 개라서 어른들의 슬픔은 먹지 못합니다. 어른들의 슬픔은 대체로 소금덩이처럼 짜고 돌처럼 딱딱해서 야나의 보드랍고 작은 위장에는 부담이 된다고 해요. 아이들의 슬픔 중에도 엄마 생각에 아직은 야나에게 무리라고 생각되는 슬픔이 있을 땐 엄마 시요가 혼자 먹습니다. 그럴 때면 야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의 볼과 손을 핥아주곤 해요.
“힘내요. 당신이 있어서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랄 거예요.”
시요는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현준이 엄마의 가슴을 오래오래 핥아 줍니다. 현준이가 잠결에 엄마 품으로 파고들자 현준이 엄마의 얼굴에 언뜻 미소가 번지네요. 오늘 현준이 엄마 꿈에는 저 멀리 계신 현준이 외할머니가 오셔서 현준이 엄마를 다정히 꼭 안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준이에게도 어서 속 깊고 좋은 친구가 생기기를 바라며, 야나도 현준이 얼굴을 여러 번 다정하게 핥습니다.
“우리 야나 괜찮니?”
“네, 괜찮아요. 엄마, 나 오늘 하루치 일곱 명 다 채웠어요!”
“그래, 잘했어. 방금 먹은 슬픔이 좀 시고 따가웠지? 우리 물도 좀 마실 겸 이제 아빠 얼굴 보러 갈까?”
“우와, 우와, 좋아요!”
야나는 사실 아까부터 아빠가 보고 싶었어요. 달빛 순찰대인 야나의 아빠 리노는 요새 주로 병원에 있습니다. 달빛 순찰대는 슬픔을 먹은 뒤 소화를 못 시켜 아파하는 달빛개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는데, 병원은 먹기 힘든 슬픔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엄마 시요가 몇 년 전 달빛 순찰대를 맡았을 때는 온 가족이 주로 바닷가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바다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노란 리본이 가득한 바닷가에는 모여든 달빛개들이 온밤 내내 쉴 새 없이 먹어도 없어지지 않을 만큼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엄마 개들은 눈물을 흘리다 지쳐 잠든 부모들의 가슴을 정성스럽게 핥아 주었고, 아빠 개들은 부지런히 슬픔을 먹으며 함께 울었습니다. 야나는 그때 달빛개의 나이로 겨우 세 살 된 새끼 강아지였어요. 어릴 때라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야나는 짠 바다 내음과 함께 코 끝에 강하게 느껴지던 무겁고 짙은 슬픔의 냄새를 기억합니다. 빨리 커서 엄마 아빠처럼 사람들의 슬픔을 많이 먹고 잘 위로해 주는 훌륭한 달빛개가 되겠다고 마음 깊이 다짐한 때이기도 해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