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동화는 니체가 언급한 "무(無, Nihil, Nothingness)"를 소재로 삼긴 했지만, 철학적 개념보다는 그저 제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호기심이 많고 뭔가 꽂히는 것이 있으면 집착하는 첫째.
그리고 그 옆에서 늘 무사태평, 흥 많고 먹을 것 좋아하는 먹보 둘째의 모습.
답을 맞히기를 좋아하는 형이 뭔가를 잘해 보려고 애쓰는 동안 꼼지락꼼지락 조용히 먹을 것을 찾아서 몰래 먹고 있는 동생.
그 모습을 그림 이야기로 남겨 보고 싶었습니다......만, 그림이 왼쪽 뒷발로 그린 것 같군요.
(아 몰라 다시 안 그릴 거야 그냥 올릴 거야)
내가 니체다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이자 음악가이자 문헌학자이자... 한 게 겁내 많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이름 철자가 어려워서 저는 가끔 루소(Rousseau)와 니체의 이름을 써 보는 것으로 셀프 치매 검사를 합니다.
니체는 허무주의(Nihilism)로 유명하죠.
그래서 니체를 혹시 음습한 세기말적 허무주의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無는 우리가 흔히 허무주의라고 했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도피주의, 향락주의, 퇴폐주의가 아닙니다.
(물론 도피, 향락, 퇴폐 모두 저는 참 좋아합니다만. 흠흠흠.)
니체는 누구보다 생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글은 아플 정도로 곧고, 싱그럽고 발랄합니다. 읽는 사람을 두들겨 패는 것 같은 그의 글을 저는 굉장히 좋아합니다.
니체의 無를 색깔로 따지자면 기분 나쁘고 축축한 회색이나 사람을 짓누르는 검은색이 아니라, 눈을 찌를 듯 투명하고 눈부신 빛의 색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실 빛에 색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 삶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공허함을 깨달으면서도 그래도 힘 있게 생을 살아가려는 초인적인 의지.
최고의 절대자인 신에게 대담하게 사망선고를 내렸듯, 니체는 현존하는 모든 가치나 질서를 우직하게 파괴하고, 그 안에 들어있던 알록달록한 거짓과 위선을 간파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파편과 잿더미로 가득한 허무한 공터에서 죽은 듯 엎드리는 삶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새로운 가치를 자유롭게 창조하려는 그런 생을 살라고 말하죠.
따라서 니체의 무는 그저 나약한 생의 소모 원리가 아니라 생의 적극적인 창조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요.
초등학교 선배이자 대학 동기인, 곰 같이 듬직한 친구 J군. (실제로 두산 베어스를 몹시. 맹렬히. 좋아합니다.)
그 친구는 부질없음을 마음 깊이 사랑하면서도 굉장히 치열하게 삽니다. 부질없음의 미학을 깊이 이해하고 삶의 동력으로 삼는달까요.
The show must go on.
곰이나 토토로 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니체 같은 녀석이었네.
니체는 바닷가에서 끊임없이 허물어지는 모래성을 다시 쌓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생의 의미를 배웁니다.
뽐내듯 쌓여있던 높은 성이 사르르 무너지는 모습이 즐거운 아이들.
파도가 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더 근사한 모래성의 가능성을 보고, 그 가능성과 자유(와 삽과 양동이...)가 있음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
무를 찾으며 돌아다니는 꼬마 철학자의 모습에서 니체의 건강하고 능동적인 무의 개념이 오버랩되기를 바라며, 부질없는 저의 설명 글을 이만 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