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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Oct 28. 2019

슬픔을 먹는 개와 고양이 (2)

엄마가 쓰는 동화 5

(1편에서 계속)

https://brunch.co.kr/@jinmin111/48


“아빠! 아빠! 우리 왔어요!”

저만치 있는 아빠를 발견한 야나는, 발보다 마음이 앞서 몇 번이나 고꾸라질 뻔하면서도 축구공처럼 뛰어나가 아빠 품에 와락 안겼습니다. 

“아이고, 우리 야나가 이제 제법 무거워졌네. 아빠 뒤로 넘어질 뻔했어!”

“여보, 우리 왔어. 오늘은 좀 어때?”

아빠는 엄마의 볼에 입을 맞추고 야나의 머리를 앞발로 다정히 쓰다듬어 주었어요.

“음... 여기야 뭐 늘 그렇지. 아니 근데 요즘엔 아동 학대하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오늘은 글쎄 어떤 미친... 캑캑.”

아빠가 잔뜩 흥분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 엄마한테 등짝을 얻어맞고 기침을 하는 바람에 말을 멈추고 말았어요. 

“아동 하때? 그게 뭐예요 아빠?” 

엄마가 아빠를 흘겨보자 아빠는 먼 산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계속했어요.

“흠흠... 우리 야나도 달빛개니까, 결국 슬픔을 먹으려면 알 건 알아야 하는데... 그... 언제까지 우리만 알 수는 없는... 흠흠...” 

 

“뭔데요 뭔데요? 엄마랑 아빠만 아는 비밀이야? 나도, 나도!”

네 발로 이리저리 방방 뛰며 설명을 재촉하는 야나에게, 아빠가 갑자기 아주 흡족한 얼굴을 커다랗게 들이밀며 웃었어요. 

“아 참 그렇지! 비밀이라고 하니까 생각이 났는데, 내가 아주 최고로 멋진 비밀 계획을 세워 두었다고 여보. 으흐흐흐흐흐.” 

“비밀 계획! 그게 뭔데요? 우와! 엄마! 비밀 계획이래!”

“비밀 계획을 그렇게 쉽게 말해 줄 순 없지. 하하하!”

비밀 계획이라는 말이 너무 근사한 나머지, 야나는 아까 궁금해하던 이상한 낱말은 금세 잊고 말았어요. 꼬리를 흔들며 방방 뛰어오르는 야나 뒤에서 낯익은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우리 야나는 언제 봐도 아주 씩씩하구나. 배가 볼록한 걸 보니까 오늘도 아주 많이 먹고 왔나 보네. 여기 물 좀 마실래? 시요, 안녕! 시요도 좀 마셔요. 오늘은 치자꽃 향기가 엄청나. 너무 냄새가 좋아서 물을 길다 말고 연못에 코를 박을 뻔했지 뭐야.”  

마침 물통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가던 토리 아주머니가 멈춰 서서 시원한 물을 건네주셨어요. 토리 아줌마는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우렁찬 달빛개로, 동네에서 힘 좋기로 소문난 분입니다. 동네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돕고, 야나와 친구들이 밖에 나와 놀고 있으면 큰 목소리로 모두를 불러 모아 시원한 우유 아이스크림을 나눠 주기도 해요. 그래서 모두가 토리 아줌마를 좋아합니다.  

 

“고마워요 토리. 잘 마셨어요. 아유, 향기가 정말 좋네요.”

“이렇게 구름 한 점 없이 환한 달빛은 참 오랜만이지?”

“그러네요. 참 아름다워요.” 

“아 시원해. 토리 아줌마, 고맙습니다. 저 오늘 슬픔을 벌써 일곱 번 다 먹었어요!”

“아유, 대견하기도 해라. 우리 솜이는 휴가 앞두고 무슨 다이어트를 한다고 슬픔도 제대로 안 먹고 이 놈의 계집애가 아주 엄마 속을 얼마나 썩이는지… 그럴 거면 아주 내가 북극으로 휴가를 가서 잔뜩 껴입게 만든다고 했어! 달빛개면 두둑하게 많이 먹고, 수레도 끌 수 있게 체력도 좀 길러야지. 안 그래?”

“하하하, 그맘때 아이들은 그러기도 하죠. 그래도 금방 지나갈 테니 너그럽게 봐줘요. 나도 그맘때는 털 상할까 봐 일부러 말랑말랑한 예쁜 색 슬픔만 골라서 먹기도 하고 그랬어요. 슬픔 먹으러 나간다고 하고서 멋진 오빠 개들만 따라다니기도 하고. 엄마 아빠한테 많이 혼났죠.”

“아니 여보, 지금 뭐라고?”

“아니 시요도 그랬어? 정말?”

“여보. 여보? 뭘 어떻게 했다고? 멋진 오빠 개...도 아니고 개들? 개애애들?” 

아빠가 당황한 얼굴로 엄마에게 항의했지만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눈도 깜짝하지 않았어요. 

 

“이거 말 잘못 시켜서 부부싸움 나겠네. 야나야, 아빠가 맨날 엄마한테 지면서 또 저런다. 그렇지? 우리 야나는 이번 장마에 휴가를 어디로 가고 싶니?”

“네? 장마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야나 옆에서, 엄마가 놀란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어요.

“장마가 온다고요? 언제요? 어머, 몰랐는데!”
“토리, 쉿!”
옆에 있던 아빠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처럼 발을 동동 굴렀어요. 

“응? 아니, 그 소식을 여태 몰랐어? 내가 리노한테 얘기해 준 게 벌써... 가만있자,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인데.”

“토리, 쉿. 조용조용! 내가 지금까지 혼자 비밀로 하고 멋진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래요? 아하하하하하하. 이거 말끝마다 실례가 많네. 나 더 실수하기 전에 어서 가봐야겠다. 리노, 나 미워하지 마요. 그럼 얘기들 나눠요. 우리 또 봐요. 하하하하하하하.”

 

토리 아줌마가 쾌활하게 웃으며 서둘러 자리를 뜨자, 엄마가 푸른 눈을 반짝이며 아빠를 다그쳤어요. 

“자, 어서 얘기해 봐. 장마가 온다는 소식도 숨기고, 도대체 무슨 계획을 짠 거야?”

“그게... 아, 이렇게 얘기하려던 게 아닌데!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했단 말이야!”

머리를 감싸 쥐고 아쉬워하던 아빠는 결국 아주 근사한 사실을 털어놓았어요. 

“글쎄, 비의 물고기들 말로는 다음 주에 자그마치 일주일이나 되는 장마가 온다는 거 아니겠어. 삼사일이면 몰라도, 일주일은 진짜 흔치 않잖아. 우리 야나도 이제 일곱 살이 되었으니 먼 곳으로 여행을 가도 좋을 것 같고. 그래서 말이야, 내가! 짜잔-! 달빛 폭포로 가는 기차표를 끊어 두었지!”

“어머 당신!”

“이게 다가 아니라고. 그리로 당신 할머니도 초대를 했어. 할머니께서 당신이랑 야나를 여간 보고 싶어 하시는 게 아니잖아. 좀 전에 할머님께 연락을 받았어. 달빛 위원회 일이 바쁘시지만 이틀 휴가를 내서 만나러 오실 수 있으시대. 어때, 남편이 최고지? 으아아아악!” 

엄마가 아빠를 와락 안는 바람에 아빠가 벌러덩 뒤로 넘어졌어요. 야나도 기뻐서 컹컹 짖으며 엄마 아빠 위로 뛰어올랐답니다. 

 

 

 


“도시락 지나갑니다. 무지개 맛 개껌 팔아요.” 

덜커덩 덜커덩. 

야나는 처음 타보는 기차가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휙휙,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옆으로 바삐 지나가는 풍경들. 그 모습에 정신이 팔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창문에 코를 박고 있어요. 한동안은 촉촉하게 비 오는 풍경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야나는 미끄럼틀처럼 기울어져 차창에 맺히는 빗방울들이 정말 신기했어요. 빗속을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알록달록한 비의 물고기 떼는, 기차 안에서 보니까 마치 예쁜 색 별똥별 같아요. 물고기 가족 하나가 기차를 따라오다가 창문에 붙어 있는 야나를 보고 지느러미를 흔들며 인사해 주었습니다. 기차가 간이역에 서자, 그중 눈이 동그란 꼬마 물고기 하나가 살랑살랑 다가오다가 그만 창문에 얼굴을 철퍼덕 부딪히고 말았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야나는 배꼽이 빠져라 웃었습니다. 야나도 창문에 얼굴을 바짝 대고 코를 뭉개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주었더니 꼬마 물고기도 눈이 없어지도록 웃네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빗방울 듣는 싱그런 수풀과 젖은 마을이 지나간 자리를 이제는 보송보송 달빛 가득한 새로운 풍경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달빛개 무리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환하게 지나가는 것이 보이네요. 하지만 이제 나무도, 꽃도, 집과 지붕도, 야나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에요.   

“여보, 이제 슬슬 출출하지 않아? 뭐 좀 먹을까?”

“응, 내가 남은 음식들로 도시락 싸 왔는데. 야나야, 배 고프지?”

“네!”

야나는 여전히 창문에서 코를 떼지 못하고 대답합니다. 

 

“엄마야! 아이고 깜짝이야!!! 애 떨어지겠네!”

좌석 밑에서 여행 가방을 꺼내 열던 아빠가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야나가 드디어 창문에서 코를 떼고 엄마 아빠를 돌아보았어요. 주위 손님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아냐네 가족을 쳐다보았지요. 

“목소리 좀 낮춰 여보! 당신이 애가 떨어지긴... 말이 되는 소릴 해!”

엄마의 핀잔을 듣고서도 아빠의 당황한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를 않았어요. 

“저기에 이상한 게 들어있다구! 물컹하고 따뜻한 게!”

 

야나는 고개를 돌려 가방을 쳐다보았어요.

‘응? 저게 뭐지? 엄마 아빠가 한여름에 왜 털 담요를 가방에 넣은 거지... 아아아아아! 저건! 저 꼬리는!’ 

야나는 자리에서 폴짝 뛰어내려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가방으로 다가갔어요. 

“야아! 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기쁘게 소리치는 야나의 목소리를 듣고, 가방 안에서 검은 털 뭉치 같은 것이 고개를 빼꼼히 들고 잠에서 아직 깨지 못한 눈을 깜빡입니다. 

“어머나 눌? 어머, 너 왜 거기에 들어있니? 어머머.”

“눌이라고? 아... 요 녀석. 어휴. 아주 십년감수했네. 요 말썽꾸러기 녀석아. 아하하하.”

아빠가 안아 올리자 눌은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었어요. 

“안녕하세요, 리노 아저씨. 시요 아줌마. 헤헤헤.”

“너 어떻게 된 거야? 엄마 아빠는 너 여기에 있는 거 아셔? 아이고... 아실 리가 없지.”

“그게요... 제가 편지를 써 놓고 오긴 했는데... 헤헤헤.”

“눌! 어떻게 거기 들어 있었어?”

“구름고양이에게 깜깜한 가방 안에 들어가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너 알잖아. 너는 달빛이 있어야만 들어가지만 우리는 그런 것 필요 없다구. 후후후.”

“답답하지 않았어?”

“그게... 들킬까 봐 잔뜩 겁먹고 있다가, 기차가 움직이는 것 같길래 긴장이 풀어져서 바로 잠들어 버렸어. 근데 여기가 어디야? 그 달빛 폭포라는 데는 아직 멀었어?”

“여기가 어디긴. 네가 집에서 지금 얼마나 멀리 왔는지 알아? 다음 역에 기차가 서면 잠깐 내려서 너희 집에 전화부터 걸어야겠다.”   

“네에? 히잉......”

눌의 뾰족하게 솟은 귀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어요. 야나의 꼬리도 같이 추욱 처지고 말았어요.

 

“아빠, 눌 집으로 보낼 거예요?”

“응?” 

“아저씨,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말 진짜 진짜 잘 들을게요.”

“아빠,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가면 안 돼요? 아빠, 엄마, 제발요.” 

아빠가 엄마를 쳐다보자, 엄마는 뜻 모를 웃음을 지었어요. 그 표정을 보고 아빠가 당황한 표정으로 엄마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시요, 혹시 데려가려고? 눌네 엄마가 눌을 저 가방에 담아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걸 알면 발톱을 세우고 내 콧등을 긁어버릴 거라구!”

 

엄마는 방긋 웃으며 아빠의 코를 살짝 핥았어요.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서, 앞발을 모으고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눌을 향해 엄격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어요. 

“눌, 이렇게 몰래 숨어서 탄 건 정말 잘못한 일이야. 알지? 너희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겠어. 우리도 정말 깜짝 놀랐어.”

“네...... 잘못했어요.”

눌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눌,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딘지 알아?”

“네. 달빛 폭포라고... 야나한테 들었어요. 엄청 멋있는 곳이라고.”

“너 폭포가 뭔지 알아?”

“높은 데서 엄청 많은 물이 막 우르릉 쾅쾅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래. 너희들은 털이 물에 젖는 거 싫어하잖아?”

“아니에요! 안 싫어해요!”

정색을 하며 대답하는 눌을 보고 아빠가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어요.

“안 싫어하긴 이 녀석아. 네가 목욕하는 날마다 아주 온 동네가 떠나갈 지경이다.”

“그게... 사실 그건 그런데요. 근데 사막에 있다면서요? 사막이란 건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깨끗한 모래가 있는 거라고! 그런 건 본 적이 없어요. 그런 데서 마음껏 뒹굴어 보고 싶어요!”

눌의 대답을 듣고 엄마 아빠가 마주 보며 방긋 웃었어요. 

“여기까지 이렇게 따라왔는데 집으로 보내면 눌이 얼마나 실망하겠어. 야나도 저렇게 좋아하는데. 일단 전화나 해 보지 뭐.”

“그래 시요. 이 녀석들 보고 있으니 나 어릴 적 생각이 나네. 나도 우리 엄마 속 엄청 썩였는데.”

“아하, 내 속도 종종 썩여 주시는데 아무렴요.”

“아니, 지금 누구 덕분에 어디를 가시는데 저한테 이러십니까?”   

사이좋게 투닥대는 엄마 아빠 옆에서 야나는 눌의 얼굴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어요. 

 

“같이 갈 수 있으면 진짜 좋겠다, 눌. 우리 거기서 몬 할머니도 만날 거거든! 우리 엄마의 엄마의 엄마야. 그렇지 엄마? 엄마가 세 번, 맞지?”

“그래. 눌은 본 적이 없겠구나. 달빛 위원회 위원이 되신 게 야나가 백일이 될 무렵이었고, 우리를 잠깐 만나러 오시는 날도 늘 비 오는 날이었으니까. 비 오는 날이면 너희들은 집에 틀어박혀 한 발짝도 안 나오잖니. 그전까지는 우리 동네에 함께 사셨는데.”

“달빛 위원회가 뭐예요, 아줌마?”

“구름의 고양이들로 치면 안개 클럽 같은 거야. 들어본 적 있니?”

“네. 근데 잘은 몰라요. 울 엄마가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 어른들이라고 그랬는데.”

“달빛 위원회는 백만 명 이상의 슬픔을 먹은 달빛개들이 모이는 위원회야.”

“히익. 배, 백만 명이라고요?”

“응. 그럴 수 있는 달빛개들은 얼마 없어. 그만큼 세상의 많은 슬픔들을 먹고 아픈 마음을 달래 주었기 때문에 굉장히 현명하고 지혜롭단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중요한 결정도 하시는 거지.”

“와,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만나보면 너도 좋아하게 될 걸. 나를 엄청 예뻐하셔! 재밌는 옛날이야기도 많이 해 주시고.”

“아... 근데 우리 엄마가 과연 허락을 해 줄까.”

눌이 야나에게 귓속말로 얘기해 주었는데, 눌은 중간에 가방이 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합니다. 들켜서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야 하더라도, 달빛 폭포와 멋진 사막은 보고 쫓겨날 줄 알았다나요.   

 

기차가 역에 멈춰 서자 야나네 식구와 눌은 기차에서 뛰어내렸어요. 잠깐 기차가 서는 10분 동안 좋은 소식이 있어야 할 텐데!

아빠가 머뭇거리며 엄마에게 수화기를 밀자, 엄마가 씩 웃으며 받아 번호를 눌렀습니다.  

“아... 여보세요? 칸? 저 시요에요. 아... 편지를 봐서 알고 있었다고요. 아아, 네. 그게... 저희 가방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더라고요. 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네... 여기요? 여기는 세모 역이에요. 좀 전에 세모 숲을 지났어요. 아아 네. 잠시만요.”

엄마가 눌에게 수화기를 건네며 말했어요.

“눌, 엄마가 바꿔달라고 하시네.”

눌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아 힘없이 귀에 댔어요. 야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눌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눌의 엄마가 날카롭게 하악대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어요. 

“너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거기가 어디라고 따라가!!! 하악, 하아아아아아악!!!” 

눌은 눈을 꼭 감고 수화기를 귀에서 약간 뗀 채 얌전히 서서 엄마의 잔소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어요. 엄마의 속사포 같은 잔소리에 잠시 틈이 생기자 눌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냉큼 말했어요.

“엄마, 근데 잔소리는 나중에 하면 안 돼요? 기차가 다시 출발하기 전에 타야 한단 말이에요.”

“뭐라고!!! 그걸 다시 타고 간다고!!! 너 지금...”

야나 엄마 시요가 잽싸게 수화기를 가로채 눌의 엄마와 다시 통화하기 시작했어요. 야나는 그 옆에서 눌의 손을 꼭 잡고 달님에게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달님, 제발, 제발요. 

 

몇 분 후, 엄마가 밝은 표정으로 윙크를 건네며 눌에게 다시 수화기를 내밀었어요. 귀를 살짝 접은 채 엄마와 다시 통화하는 눌 뒤에서 야나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엄마, 같이 가도 된대요?”

“응, 허락해 주셨어. 대신 너희들 말 잘 들어야 한다?”

“우와, 엄마 최고! 아빠, 고마워요!”

야나가 기쁨에 겨워 팔짝팔짝 뛰며 통통한 꼬리를 메트로놈처럼 흔들었어요. 

“우리 야나 정말 좋겠구나. 가만있자, 여기에 아기 고양이가 먹을거리가 있나? 달빛 폭포로 가는 기차라 안에서 파는 건 죄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얼른 좀 다녀와야겠다. 시요, 애들 데리고 먼저 타 있어요.”

 

덜커덩 덜커덩.

“아...... 한 달간 외출 금지에 간식 금지래요. 아아 가혹한 내 인생.”

“내가 너희 방 창문으로 몰래 껌 넣어줄까?”

“야, 됐어. 고양이 체면이 있지, 개껌을 어떻게 먹어.”

“얼씨구. 눌 너,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와서 우리 야나 껌 한 통 다 먹었던 거 기억 안 나?”  

“제가요? 언제요? 진짜요? 그럴 리가 없는데?”

“하하하하하!”

기차는 즐거운 웃음을 싣고 덜커덩 덜커덩 더욱더 신나게 달립니다. 야나의 가슴도 두근두근합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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