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두시 May 21. 2020

하루를 빛나게 해주는 힘

We are all in this together

몇 주 전에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당시 우리는 기다리는 택배도 우편물도 없었다.

우리 집은 코로나로 누군가의 발길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궁금한 마음에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에 종이 쇼핑백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현관문에서 좀 떨어진 앞마당에는 Charlie Bigham's의 로고가 적힌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장갑을 착용한 아가씨가 서 있었다.

"동네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무료 음식이야"라고 말하며,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뜻밖의 선물과 마스크도 안 한 아가씨에 대한 약간의 염려가 뒤섞인 얼떨떨한 목소리로 나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우리 가족은 슈퍼에서 세일할 때 Charlie Bigham's의 간편 조리 음식인 티카 마살라 카레를 가끔 사 먹었었다. 오븐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는 음식이지만, 집에서 만든 음식 같이 신선하고 담백하며 게다가 맛도 좋았다.

그래서인지 슈퍼에서 파는 간편 조리식품 치고는 가격이 좀 나가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가씨가 준 쇼핑백 안에는 Charlie Bigham's의 라자냐랑 생강 초콜릿 푸딩이 들어있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이만 원 가까이 되는 음식을 공짜로 받았다.

쇼핑백 안에는 음식과 함께 Charlie Bigham's에서 보낸 카드가 있었다.

그리고 카드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We are all in this together"

코로나 때문에 집에 갇혀 지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우리는 모두 함께 있다"라는 이 말은 따뜻한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Charlie Bigham's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무료 음식을 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그들이 마스크도 없이 위험 부담을 안고, 동네를 돌며 일일이 무료 음식을 배달해 주는 수고를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쁜 일러스트가 그려진 카드에 따뜻한 마음을 눌러 담아 보냈기에 내 마음도 금세 말랑말랑해졌다.


그간 코로나로 인해 짓눌려 있던 나의 하루가 그날만큼은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Charlie Bigham's에 보낸 아들의 그림


우리 집 우편물은 모두 현관문을 통해 배달된다. 영국 주택의 현관문에는 열고 닫히는 금속의 네모 프레임이 장착되어 있어, 현관 밖의 우체부가 그 프레임 안으로 우편물을 밀어 넣는다. 그러면 우리 집 현관 안에 우편물이 툭 떨어진다.  

어느 날, 오랜만에 이 금속 프레임에 인기척이 느껴져 기다려 보았다.

경제난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식료품을 지원하는 센터인 '푸드 뱅크(Food Bank)'에서 긴급 구호 식품을 기부해 달라는 리플릿을 보낸 것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본 사람이라면 잊히지 않는 장면이 몇 개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여자 주인공 케이티가 푸드 뱅크에 처음 갔을 때의 장면이 그렇다. 그녀는 기부된 식품이 쌓여있는 그곳에서 몰래 통조림 음식을 뜯어, 손으로 허겁지겁 퍼 먹었다.  며칠을 굶어 얼굴이 창백해진 케이티가 굶주림에 못 이겨 한 그 행동이 스크린 밖의 나에게 절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2008년에 있었던 미국의 투자 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전 세계적인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푸드 뱅크의 영역도 확장되었다.    

선진국이라는 영국은 2008년 집권당인 보수당에서 대대적인 사회복지 기금의 삭감과 공공기금의 긴축재정을 실행한 이후, 푸드 뱅크가 급격히 늘어났다. 교회나 자선단체에서  운영하는 푸드 뱅크는 정부가 돕지 못하는 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2004년에 2개였던 푸드 뱅크가 2017년에는 영국 전역에 2000개 넘게 늘어났다. 그리고 대형 마트 한켠에는 어김없이 푸드 뱅크 수거함이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이 쇼핑 후 식료품을 기부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영국에서 마트에 갈 때, 남편은 쇼핑 리스트에 없는 통조림 음식을 몇 개 추가하곤 했다. 그리고선 계산 후, 마트 한쪽에 놓인 푸드뱅크 수거함 그 물건들 채워주었다.


영국에서 지낸 지난 3년 동안, 푸드뱅크에서 집으로 리플릿을 보낸 적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슈퍼 마켓에 자주 못 가고, 식료품 기부도 줄어들어 푸드 뱅크 상황이 더 어려워진 것 같다.

나보다 인정이 많은 남편은 푸드 뱅크의 리플릿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비록 우리 가족도 코로나로 인해 슈퍼를 자주 못 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쌀, 시리얼, 통조림 등으로 봉투를 묵직하게 채웠다. 그리고 푸드 뱅크 자원봉사자가 식료품을 수거하기로 한 시간에 맞춰 봉투를 문 밖에 내놓았다.

그리고 얼마 후 금속 우편함에 인기척이 들렸다.

가서 보니 푸드 뱅크 리플릿의 뒷 면에 작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우리의 마음을 받고 감사의 마음으로 답한 그들의 메모를 보니, 마음속에 무지개가 또 한 번 떠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걱정 상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