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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Jul 30. 2020

비대면 시대의 친구들

외국에 살면 가만히 있어도 외로움을 금세 느끼기 쉽다.


영국에서는 코로나에 걸리면 한국처럼 빠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정말로 응급해도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조심하고 있었다. 코로나 공포에 친구들도 못 만나고 바깥 외출도 자제하며 지낸 지 이제 4개월째가 되어간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또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느껴졌다.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고, 이번에는 무척 외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외딴 섬안의 또 다른 섬이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살려면 운동은 해야지 싶어서 외로움이 사무치던 그날에도 혼자 저녁 산책을 나섰다. 일상적으로 늘 하던 걸 하기 위해 무의식이 억지로 내 몸을 떠밀어냈다.

최근 사람에게 실망했던 일까지 겹쳐져서 그런지, 그날따라 내 모습은 바람과 함께 연기처럼 거물거렸다. 힘 없이 허공 위를 떠다니던 나의 눈은 애써 내 갈길을 향하고 있었다. 생동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동네의 한적한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맞은편에서 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여자가 내게 손짓을 했다. (뭐지?!) 눈을 제대로 뜨고 다시 보았더니, 그녀는 바로 내 친한 친구 모니카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몇 개월 만에 이렇게 우연히 만나다니 우습기도 하고 신기했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산책을 나가기 바로 전에 메신저로 내게 안부를 물었었다. 아들 친한 친구의 엄마 겸 나의 친구이기도 한 그녀랑 그간 영상 통화는 했었지만, 조심하느라 서로 미처 만나지는 못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바닥을 치고 있던 그 날에 그녀는 이렇게 짠! 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2미터의 간격을 유지하며 공원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대화를 나눴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가 카톡 전화를 걸어왔다. 시차도 그렇고, 애 둘 키우고 일 하느라 시간 맞추기 어려운 그녀와도 몇 개월 만에 하는 통화였다. 이렇게 외로울 때, 딱 적절한 타이밍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다니 누군가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또 힘을 얻었다.


사실 이런 신비로운 체험은 이전에도 있었다. 예전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기분이 무척 우울했었다. 집 앞의 공원을 통해 집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한 낯선 이가 '헬로'라며 내게 인사를 했다. (북미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별로 흔치 않은 일이다.) 그 사람은 내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 그랬던 것인가? '하루를 시작하는데 기분 풀고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의미로 인사를 건네었던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갔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인사를 받으니 마음이 조금 환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날이 그날 같은 내속도 모르고, 자연은 끊임없이 놀라운 역동성을 내게 보여주고 있다.

봉쇄령이 내려진 어느 날, 아들과 우리 집 정원에 나와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의자에 벗어 놓은 모자 위로 가 툭! 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나는 당연히 나뭇잎이겠거니 하고 모자를 살펴보았는데, 그건 다름 아닌 애벌레였다. 처음엔 새끼 손가락만하고 길게 늘어진 몸의 애벌레를 보고 놀랐지만, 나중에는 잘 성장하고 있는 애벌레가 기특하게 여겨졌다. 나는 애벌레를 잔디 어디쯤에 안전하게 내려주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났을까? 검은색과 주황색의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나비가 정원에서 춤을 추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웃의 검은 고양이는 담벼락을 넘어 우리 집 정원으로 건너와 일광욕을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그 고양이가 열려있던 거실 큰 창을 통해, 나도 모르는 새 기어들어와 깜짝 놀랐던 일이 있다.

이른 아침 정원에서, 저녁 무렵 산책길에서, 삿갓을 쓴 검객 같은 여우를 마주치기도 다. 

바람이 부는 날 공원으로 걸어 나가면, 지나가는 길마다, 나뭇잎들이 파도타기를 하듯이 내게 박수를 보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선 블랙버드가 아름답게 노래를 불러준다.

ⓒ새벽두시

코로나로 거의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다 보니 무기력해지기가 쉽다. 그리고 사람 만나는 일이 예전 같지 않아 더욱 외롭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면, '오늘도 잘 살았다''힘내'라고 해주는 비대면 시대의 친구들이 늘 곁에 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외로움이 또 한 번 씻겨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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