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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Jun 30. 2020

멈춰 선 자전거

어느 날부터 아빠의 칠십 자전거가 멈춰 섰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다시 한번 달려보지 못하고, 우리 집 베란다 구석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건 자전거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빠는 항상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열심히 공부를 해서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아빠는 공채 시험을 통해 은행에 입사다. 이를 계기로 아빠는 가족과 친척 중에 처음으로 서울 땅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렇게 아빠는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팍팍한 도시 생활을 견뎌냈다. 그러다 엄마를 만나 결혼도 하고, 시골에 살던 형제들의 서울 정착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아빠가 안정된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와중에 갑자기 IMF 외환위기가 찾아다.  결과 아빠가 일하던 은행은 다른 은행과 합병을 하게 다. 그리고 경제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용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아빠직장 대규모의 구조 조정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아빠는 고민 끝에 입사한 지 이십오 년이 지난 정든 직장을 그만두셨다. 때 아빠 나이는 아직 오십 대에 불과했다. 그리고 나와 두 명의 오빠들은 한창 대학생활 중이었다.

다행히 퇴사 후 아빠 공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아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아빠가 자라면서 겪었던 가난의 경험이 불안의 불씨가 되어 아빠를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어느 날 아빠는 노량진의 공인 중개사 학원을 등록하셨다고 했다. 이후, 아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그러더니 몇 번의 고배 끝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빠는 장례지도사를 공부하시며 자격증을 따셨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빠에게 포기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아빠에게도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아빠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부동산을 개업해 운영하셨다. 일을 하시면서 아침이나 저녁시간 틈틈이 짬을 내어 운동삼아 산에도 열심히 다니셨다. 그리고 장례지도사에 대해 공부했던 경험을 활용해 성당에서 봉사 활동도 하셨다. 아빠는 새벽에라도 누군가의 임종 소식을 들으면, 장지까지 가서 돌아가신 교우의 가족들을 위로하고 도움을 주셨다.

그런데 그렇게 바쁘고 활발히 움직이던 아빠의 몸이 어느 날부터인가 서서히 무뎌지기 시작했다. 부동산 계약서를 쓸 때 아빠의 손글씨는 작게 오므라들었고, 말씀하실 때 예전과 달리 목소리도 움츠려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아빠의 이런 변화를 알아채기 시작했고, 엄마는 병원을 알아보셨다. 처음에 갔던 대형 한방 병원에서는 아빠의 정확한 병명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찾아간 한 대학병원에서 아빠는 '파킨슨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2008년도 어느 날 아빠에게 나타난 이름도 생소한 그 병은 이후 아빠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몸의 균형을 흐트러 놓는 그 병은 아빠가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설 때, 언덕을 내려갈 때, 그리고 심지어 문을 열 때에도 느닷없이 아빠를 넘어뜨렸다. 아빠는 스스로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 몸의 작은 움직임에도 온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순간 방심하면 피를 흘리며 크게 넘어졌다. 그래서 구급차도 여러 번 타야 했다. 운동신경이 둔해져 넘어질 때도 속수무책인 아빠의 몸은 흡사 날카로운 톱날에 잘려 그대로 쓰러지는 통나무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의 얼굴과 몸 곳곳에 넘어져서 얻은 상처 자국이 늘어갔다. 포기를 몰랐던 아빠는 자신의 몸을 그렇게 운명 앞에 내어줘야만 했다.

자전거는 평소 검소한 생활을 하던 아빠가 큰 맘먹고 구입한 고가의 물건이었다. 하지만 결국 아빠의 자전거는 주인의 손 얼마 닿지 못한 채 그렇게 쓸쓸히 남겨졌다. 아빠는 자전거를 시작으로 등산, 여행, 각종 친목 모임 등 일상의 사소하고 평범함을 누리는 삶을 포기해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아빠가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당시 우리 집에는 어린 내가 타기에는 조금 큰 중고 자전거가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내가 그 자전거를 충분히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당시 아빠는 회사 일로 바빠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다. 나는 아빠와 단 둘이 오붓한 시간을 갖게 된다는 생각에 덥석 자전거 핸들을 붙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안장이 높은 그 자전거에 내가 올라타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담넘기를 하듯 다리를 힘껏 늘려 자전거에 겨우 올라타면, 아빠는 자전거가 휘청대지 않게 옆에서 나를 붙잡아 주셨다. 내가 자전거에 앉는 거에 익숙해지자, 아빠는 내 옆이 아니라 뒤로 자리를 옮기셨다. 아빠가 자전거 뒷좌석을 붙잡아 주시고,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빠의 도움 없이 혼자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아빠가 내 곁에서 나를 지켜 주신다는 든든함 내가 자전거에서 넘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나 두려움을 물리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덩치보다 훨씬 큰 자전거를 짧은 시간 안에 배울 수 있었다. 땅에 발을 내딛지 않고도 몸이 공간을 이동하는 이 새로운 경험은 내게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빠는 내가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펴고 활짝 날 수 있다고 항상 굳게 믿어주셨다.  


최근에 내가 도전하려고 목표했던 세 가지가 있었다. 모두 공모전이었는데 두 개는 글쓰기, 하나는 그림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것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마감 기한을 모두 넘겨버렸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그냥 포기했다.

나는 공모전의 주제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비겁한 핑계를 댔다. 그리고 확률적인 분석을 하며 내 작품이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결론지었다. 나는 시도하지 않았다. 과를 미리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번뿐만 아니라 전에도 포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스스로 납득할만한 포기 사유를 만들어 두고,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빨리 내려놓고 싶어 했다.

나는 왜 포기가 반복되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답을 알게 되었다.

나의 이런 행동의 이면에는 내가 나를 믿어주지 못해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다. 도전 앞에서 나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며 나의 가능성을 의심다. 그리고 이것이 잡음을 내며 내 안에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다 결국 희미한 목소리로 나를 응원해오던 긍정적인 자아가 먼저 백기를 들게 했다. 나의 도전은 종종 그렇게 실패되었.


공모전은 이미 마감되었다. 나는 그걸 포기하고 나서 후회했다. 또 한편으로는 경쟁의 부담으로부터 벗어 홀가분했다.

그런데 내가 이런 기분 속에서 한참 떠돌고 있을 때,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는 파킨슨병 앞에 계속 넘어졌지만, 삶에 대한 열정은 굽히지 않으셨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족이나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운동을 꾸준히 하셨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몸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지만, 정신은 그런 현실에 압도당하지 않 깨어있으려고 했다.

지금 아빠는 높은 곳에서 열심히 나를 응원하고 계실 것이다.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어, 멈춰있던 내 자전거의 페달을 다시 밟아보려고 한다. 내가 자전거를 처음 배웠던 그때처럼.

 

                          

          

 

 ⓒ새벽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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