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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Aug 09. 2020

남편이 아닌 제3의 동반자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나는 우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를 소환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도 어김없이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하나씩 내게 꺼내놓았다. 그러다 그녀 별 반응이 없는 내 모습을 알아챈다. 조심스럽게 내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묻는다. 나는 조금 뜸을 들이고 머뭇거리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니! 뭐라고?' 나지막하던 그녀의 목소리 톤이 갑자기 올라갔다 내려온다. 내 이야기에 맞장구 쳐주는 그녀를 보니, 마음속의 잡초가 하나씩 뽑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막 가동된 엔진처럼 우리의 대화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이번에는 그녀가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시 그녀에게는 엄청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자신의 새로운 계획과 꿈에 대해서 얘기해주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이끌리다 보면, 어느덧 나도 모르게 상상의 세계로 함께 떠나게 된다. 그녀와 함께하는 곳이 신비로운 우주가 되기도 하고, 열대우림이 우거진 정글이 되기도 한다. 그녀가 내뿜는 에너지가 너무 대단해서 때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압도당하고 만다. 그녀는 온몸으로 노래하는 원시적인 목소리로 내 이야기에 추임새를 더하기도 한다. 주체할 수 없는 그녀의 표현력은 정말 아무도 못 말린다.


그녀 특유의 쾌활함은 전염성이 강해서 결국엔 내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나의 수줍은 두 발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녀에게 화답이라도 하듯이, 발바닥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이쯤에서 우리는 좀 더 으슥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한다. 왜냐하면, 어느새 내 양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발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박자에 맞추듯이 발의 보폭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평소 땅만 바라보던 내 두발에 그루브 모터가 장착되었다. 이제는 다리의 진동에 탄력을 받은 엉덩이가 좌우로 자연스럽게 흔들린다. 달리기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을 듣고 뛰어나가는 선수처럼, 두 팔이 스프링처럼 금방이라도 튕겨나갈 것 같이 강한 반동을 일으킨다.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 나는 이전과 달리 명랑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는 서서히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 하고, 급기야 '에라 모르겠다'하고 저 넓은 들판을 향해 내달렸다. 나도 모르게 내 두 손은 번쩍 하늘 위로 올라가 바람을 내며 허공을 휘져었다. 묶있던 머리가 산발이 되었다. 그렇게 온몸으로 자유를 외치며 전속력으로 달리다 보니 기분이 상쾌하다. 뭔가 한바탕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신나게 한판 놀고 나서 우리는 각자의 갈길로 나섰다. 그녀는 가다 말고 멈춰 뒤돌아서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집으로 향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길 위의 모든 것들이 어둠에 묻혀가기 시작했다. 먹물처럼 어둠이 번져가자 내 몸이 다시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근처에 우뚝 서 있는 나무들도 내 눈으로 분간하기 힘든 어두움이 몰려왔다. 그때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 집 현관 앞에 불이 켜졌다. 그러자 내 온몸의 긴장이 사르르 풀린다. 희미한 불빛 아래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건네는 이웃. 그는 내게 조심히 들어가라며 온화한 미소로 나를 배웅한다. 그를 보니 내 마음이 저녁노을처럼 따스하게 일렁였다.    


나는 오늘 이렇게 비요크(Bjork) 언니와 리처드 보나(Richard Bona) 아저씨를 만났다.

우리 집 CD장에는 이들 말고도 수많은 음악인들이 나를 위해 항시 대기 중이다.

비요크님

음악이 내게 다가왔던 것은 어릴 때부터였다.

할머니가 우리 가족과 함께 사신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할머니와 친해졌다. 나는 나를 예뻐해 주시는 할머니를 졸졸 아다녔다. 가끔 할머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민요 비슷한 노래를 부르셨다. 할머니의 영향인지 나는 심심해지면 혼자 재미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다섯 살 터울의 첫째 오빠가 흥얼거리는 유행가를 듣고, 한국 가요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오빠는 일본 S사의 개인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로 이문세 아저씨의 노래를 주야장천 들었다. 당시 카세트 플레이어는 내게 신기한 물건이었다. 요술 박스 같은 그것의 버튼을 누르거나 다이얼을 돌리면, 갑자기 사람 목소리나 노래가 튀어나왔다. 이런 신문명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집에 있던 커다란 카세트 플레이를 내 방 한쪽에 모셔두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잠을 청했다. 혼자 자기에 허전한 내 방에 노랫소리가 자장가처럼 은은하게 퍼지면, 나는 금세 잠이 들곤 했다.


라디오를 많이 들었던 탓인지, 나는 '우리들의 10분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카세트에 녹음해 초등학교 6학년 학예회 때 발표하였다. 청취자가 전화로 음악을 신청하면, 초대 가수가 즉석으로 노래를 불러주는 코너가 있다는 설정으로 만든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내가 라디오 디제이를 하고, 친구에게 전화로 연결 청취자 역할을 시켰다. 중간에 깨알같이 광고 음악도 집어넣었다. 물론 여기서 신청곡과 라디오 광고 노래도 내가 직접 불렀다. 예상외로 친구들의 반응이 좋았다. 학예회가 끝난 후,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내게 와 '우리들의 10분 '가 녹음된 카세트를 빌려갔다.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 학예회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나서, 중학생이 된 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 팝송의 세계를 탐험하였다. 팝 음악을 통해 내 방을 벗어나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아 설레고 신났었다. 그때만 해도 신청곡은 휴대폰 문자나 인터넷이 아닌, 손으로 직접 적어 엽서로 보내야 했다. 나도 한번 그렇게 직접 신청곡을 써서 보낸 적이 있는데, 배철수 아저씨가 내 신청곡을 소개해줘서 짜릿했던 순간이 생각난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나도 드디어 휴대용 미니카세트를 갖게 되었다. 둘째 오빠가 일본 배낭여행을 가서 사다 준 선물이었다. 그래서 버스로 통학할 때나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휴대용 미니카세트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음악 감상에서 더 나아가, 나는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가끔 가요를 부르는 생활음악인이 되기도 했다.


대학에 가서는 모범생 둘째 오빠가 과외수입과 용돈으로 사들인 무수히 많은 LP 레코드와 CD , 그리고 카세트 음악을 들으며 지냈다. 둘째 오빠가 보던 음악 잡지를 통해 한국의 인디밴드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다양하고 폭넓은 음악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둘째 오빠는 '언니네 이발관'과 같은 인디밴드의 공연에 나를 데려가 주기도 했다.

년에 내가 한국을 잠시 방문하고, 영국으로 다시 돌아갈 짐가방을 싸고 있을 때 그랬다. 마침 친정집에 와있던 둘째 오빠는 쓱-하고 내가 좋아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최신 CD를 건네주었다. 음악은 평소 우리 집에서 가장 말이 없고 조용하던 둘째 오빠와 내가 돈한 유대감을 쌓게 해 주었다.

어쩌다 보니 또 음악을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어, 요즘 나는 남편의 CD로 음악을 들으며 산다.   


음악은 어린 시절 내게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해 주었다. 학창 시절엔 나의 입시 스트레스를 날려주었고, 연인과 헤어져 쓸쓸할 땐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외로운 타국 생활에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더운 여름날에는 청량하고 시원한 바람을 가져다주었고, 추운 겨울밤에는 따뜻한 벽난로가 되어 주었다.  

음악은 내 마음의 여행을 도와주는 동반자이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제3의 세계로 데려다준다.

이들과 함께 돌아다니다 나는 내 안의 수많은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평소에 사회적인 치장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자연인의 나를 등장하게 한다. 나는 혼자 와인바에 앉아 감상에 젖는 우아한 여성이 되었다가, 겁이 없고 용감하며 활력이 넘치는 여전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통통 튀는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20대 청춘이 되기도 하고,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아가씨가 되기도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호탕하고 박력 넘치는 터프가이가 되기도 한다.

음악은 마법을 부르는 주술사처럼 잠들고 있던 내 온몸의 세포들을 깨워준다. 그래서 점잔 빼는 나를 톡! 하고 건드려 결국엔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 춤추게 만든다.

솔직한 나를 마주하게 해주는 고마운 이 존재는 우리 집에 언제나 함께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이들과의 여정은 앞으로도 쭈욱 계속될 것이다.

백발노인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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