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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Aug 20. 2020

영국은 어떻게 변화하는 세상을 받아들이는가?

#영국 현대 미술이 iPhone의 존재를 받아들이다

2018년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Turner Prize)의 수상작은 Charlotte Prodger가  iPhone으로 찍은 영상인 <Bridgit>이었다.

-영국의 국민 예술가 윌리엄 터너(J.M.W Turner)의 이름을 차용해 국립미술관인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이 1984년에 제정한 터너상. 데미안 허스트(Damien Hurst),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등을 비롯한 터너상 역대 수상자들은 현재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이렇게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상의 수상작이 고작 32분짜리 iPhone 영상이라니, 이 수상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 영화예술과 디지털 아트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미술에 있어서는 디지털보다 왠지 사람의 손맛이 느껴지는 것 같은 아날로그 방식의 작품을 선호했다. 그래서인지 수상작품을 알게 되고 나서, 나는 일단 그냥 왠지 모를 (편견 섞인) 반감이 들었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상적인 행동인데, 이제 예술가마저 휴대폰을 예술의 도구로 사용하는 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인가? 아님 휴대폰의 진화가 예술의 대중화를 불러일으킨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 <Bridgit>이라는 작품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예술작품으로써 영국의 국가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예술지원기관인 예술위원회가 <Bridgit> 영상을 구매해서 Arts Council Collection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이 훌륭한 작품을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알리겠다는 일종의 프로모션의 의도도 깔려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이 휴대폰 영상은 영국의 공공기관에서 전시가 되거나 전시 투어를 하게 될 것이다.

    

Bridgit(2016) , 출처: Arts Council Collection


20여 년간 창작 활동을 해온 Charlotte Prodger는 이전에는 필름으로도 영상작업을 했으나, iPhone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상황에 구애 없이 손쉽게 작업을 할 수 있어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휴대전화는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와 기록이 담겨있어 확장된 자신과도 같다고 가디언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데이터들을 담고 있는 이 휴대폰으로 성소수자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가디언에서 한 평론가는 그녀의 iPhone 작품 <Bridgit>이  풍경 예술의 전통을 떠오르게 하고 동시에 심리적인 무게감을 느끼게 해서 감상자를 예상치 못한 광범위한 영역에 도달하게 한다고 하였다. 영국은 Charlotte Prodger에게 터너상을 수여함으로써 이제 휴대폰이 우리 삶에서 어떤 위치까지 차지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증명하였다. 휴대폰을 일상 속 현대인들의 필수품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훌륭한 예술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그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했다.  


#코로나 시대에 떠오른 플랫폼 'Zoom'을 가지고 놀다가 대박 난 예술가들-팬데믹 속에서도 예술은 피어난다.

봉쇄령 기간 영화 단톡 방에서 친구들끼리 무심코 던진 아이디어가 영화로 만들어져 대성공을 거두었다.

때는 올해 4월, 영국에서 영화계 종사자인 친구들이 모여 정기적인 Zoom(화상회의 앱) 미팅을 하며 코로나로 인한 집콕의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중 호러(horror) 단편영화감독인 Rob Savage는 Zoom 미팅 중 친구들에게 자신의 다락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얘기를 꺼낸다. 그러면서 함께 소리가 나는 원인을 알아보자며 다락에 뭐가 있는지 줌 영상으로 중계한다. 이때 어두운 다락에는 먼지 쌓인 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순간 공포영화에서나 보일 듯한 귀신같은 모습이 갑자기 튀어나와 친구들이 모두 경악을 하게 된다.

자신이 친구들에게 장난친 이 상황을 담은 영상을 트위터에 올린 Rob Savage. 그의 영상은 수많은 조회수를 올리며 단시간에 화제가 되었고, 다른 영화 관계자들 또한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단톡 방 친구들은 이 내용을 모티브로 해서 정식으로 영화 <Host>를 제작하게 된다.

영화 <Host> 출처: Rotten Tomatoes

12주간 친구들과 각자의 집에서 원격으로 연출을 하고, 출연 배우마저 가내수공업을 하듯이 자신이 특수효과를 직접 연출해야만 했다. 이렇게 완성된 57분짜리 영화 <Host>는 'Shudder'라는 인터넷 호러 전문 채널에서 상영되고, 이후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타임스와 여러 미디어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급기야 Rob Savage와 친구가 함께 만드는 다음 프로젝트는 영화 <이블데드(Evil Dead)>를 만들었던 Sam Raimi가 프로듀서를 하기로 계약했다.

 

코로나로 봉쇄령이 내려진 3월부터 몇 달간 영국인들은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는 재택근무만 허용되었고, 극장과 영화관은 문을 닫아야만 했다. 공동작업이 필수인 영화나 공연 쪽 예술 관계자들에게 코로나 시대는 그야말로 고난의 시기이다. 인형극 워크숍과 공연을 해오던 내 친구도 일거리가 줄어들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활동을 못하게 된 예술인과 예술기관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나중에서야 겨우 이뤄졌지만, 지원을 못 받는 많은 예술인들은 계속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솔직히 코로나가 종식된다고 해도 우리가 다 같이 모여 공연을 보는 이런 문화가 계속 존재하게 될지도 의문이다. ( <세계 미래보고서 2035-2055>의 저자이자 미래예측 전문가 박영숙 씨는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하는 대규모의 콘서트 문화는 안타깝지만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는 앞으로 공연예술은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대면 형태가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비대면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슬프고, 예술가들 입장에서는 앞이 막막해질 것 같다.    

<Host> 영화를 탄생시킨 Rob Savage와 친구들은 봉쇄령 기간 동안에 상황을 비관하는 수동적인 희생자가 되기보다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창작욕구를 해소하였다. 그래서 이들이 했던 것처럼 예술인들은 변화하는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유연한 창작 태도를 갖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이런 위기로 급변하는 상황이 어떤 이들에게는 오히려 영화 <Host>처럼 기적 같은 기회로 바뀔 수 있다.


#가상현실(VR)로 리모델링 체험을 하는 BBC의 프로그램 <Your Home Made Perfect>

영국의 주택은 대부분 오래되어 손이 많이 간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1930년대에 지어졌다. 하지만 우리 집의 나이는 그나마 젊은 편이고, 1800년대에 지어진 집들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동네 골목마다 꼭 한두 집은 공사하고 있는 걸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두 명의 건축가가 일반인의 집을 리모델링해주는 BBC Two의 <Your Home Made Perfect> 프로그램이 작년 첫방을 시작으로 올해 두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그런데 <Your Home Made Perfect> 프로그램은 그동안 TV에서 봐왔던 리모델링 프로그램과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의뢰인이 가상현실(VR)로 리모델링을 미리 체험하게 하여, 리모델링 디자인의 최종 선택을 돕는 것이다.

Your Home Made Perfect,출처 BBC  

새로운 공간 디자인의 구현은 입체적인 경험이라 2D로 표현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의뢰인을 효과적으로 설득시키는 데에 집이 변하는 과정과 변신한 집을 가상현실로 체험하게 하는 것은 아주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도 TV 화면으로 이렇게 가상현실을 간접 체험하는 것은 짜릿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박물관에서도 점차 가상현실 체험을 도입하고 있는 요즘, 영국의 시청자들에게 4차 산업혁명으로 더 가까워질 미래 세계를 체험하게 하는 시도를 공영방송 BBC가 하고 있었다.                


위 사례들을 보고 나는 영국인이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똑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느꼈다. 코로나로 급변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우왕좌왕하고 흔들리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일상을 살기 쉽다. 하지만 이 비극적이고 우울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선택으로 영리하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은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이 변화를 받아들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가 장기화됨에 따라 우리가 살던 방식이 이제는 서서히 변화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 세계를 치고 들어오는 인공지능 로봇의 역할은 점차 확대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고유한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며,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면 좋겠다. 그러다가 변화의 파도 속에서 유유히 서핑하며 즐길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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