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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May 10. 2020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나는 오늘도 도전한다

2년 전 어느 날이었다.

영국에서 한국에 있는 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전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잘 알던 사이였던 지인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 소식은 당시 나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마침 나는 인생의 반을 지났다고 하는 마흔의 문턱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인생을, 그리고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시 바라보았다. 우리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있고, 나의 시간도 예고 없이 멈출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일상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다.

우리 아이는 고모가 선물로 준 물감 덕분에, 말문이 트이기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텅 빈 종이를 겁내지 않고 즐겁게 채워나갔다. 그렇게 매일 그림과 노는 아이를 보니,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나는 책 속의 예쁜 그림들에 서서히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졌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하는 그림 수업을 등록했다. 나는 그림을 전공으로 삼았거나, 그림과 관련된 업을 하는 사람들 틈 속에서 그림을 배워나갔다. 처음에는 비전공자인 내가 그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수업을 다 완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기초반을 지나 중급반 수강을 마쳤다. 그렇다고 그림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은 아니다. 초보자 수준을 벗어나려면 아직도 갈길이 한참 멀었다.

수업에서 배운 걸 토대로, 나의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려고 했던 와중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선생님의 피드백이 필요했던 그 프로젝트는 현재 잠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봉쇄령으로 집에만 있다 보니 오히려 이전보다 자주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면 빠르게 요동치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가끔 혼자 있을 때 몽글몽글 마음속에 피어나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스쳐가는 일상 속에 인상적인 풍경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진다.

한 번은 해 질 무렵 혼자 산책을 하다가 여우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서 오랜만에 만난 여우를 잠시 지켜보았다. 그런데 여우도 길을 가다 말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게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멀찍이서 한참 동안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런 순간이 나를 종종 상상의 세계로 끌어들여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싶게 만든다.


최근 영국 왕립 미술원(Royal Academy of Arts)에서 주최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온라인 전시회를 관람했다. 작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 영국 작가의 전시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존하는 작가 중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어떤 예술가인지 궁금했었다. 왕립 미술원에서는 그가 2012년에 했던 풍경화 전시회와 2016년에 했던 초상화 전시회를 묶어서 유튜브로 공개했다. 그중 2016년에 열렸던 <82개의 초상화와 1개의 정물화( 82 Portraits and 1 Still-life)> 전시회가 인상적이었다.


80세를 바라보던 데이비드 호크니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82명의 사람들을 작업실에 초대해 그린 초상화전이다. 그는 한 작품당 삼 일 간, 총 스물두 시간을 작업해서 자신의 지인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을 그렸다. 11살 어린이부터 90대의 노인까지 누구나 똑같이 하루에 여섯 시간씩 의자에 앉아 그의 모델이 되었다. 보통 화가들이 자신이 그릴 대상의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호크니는 자신의 눈 앞에서 생생하게 호흡하고 있는 인물들을 직접 보고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모델이 된 지인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려 했다. 초상화뿐만 아니라 전시회에 소개된 정물화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세계와 무언의 교감을 이루었다.


사실 2013년에 그에게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의 그림 작업을 거들던 스물세 살의 어린 조수가 마약에 취해 사고로 그의 작업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갑작스럽게 닥친 그날의 충격으로 작업실을 팔고 그곳을 떠났다. 이후 어느 날, 데이비드 호크니는 자신처럼 그 일로 인해 비탄에 잠겨있던 지인의 모습을 캔버스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그림 속 인물의 모습에서 고통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데이비드 호크니는 자신의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계속해서 그리기 시작했다. 몸도 안 좋고 한쪽 귀도 거의 안 들리는 이 나이든 화가는 82명을 화폭에 담으면서, 삶에 대한 애정을 다시 드러냈다. 82개의 초상화와 1개의 정물화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 전시회장은 영상으로 전시를 보는 관람객마저 압도한다.

불현듯 나는 전시회가 아니라 데이비드 호크니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픔을 딛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초상화 속 인물들이 하나로 둘러싸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도전이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갇혀 반복되는 매일을 사는 요즘에는 하루를 다르게 본다는 것이 더욱 어렵다.

글을 쓰기 전 첫 문장을 시작해야 할 때에는 망망대해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어쩔 땐 내가 써 놓은 글이 미로처럼 나를 감싸고 길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그림은 작은 선 하나에도 금세 표정과 기분이 바뀌어서 종종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서투른 손놀림으로 내가 마음속에 떠올렸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기도 쉽지 않다.

글도 그림도 생각대로 안돼서 여러 번 지우기를 반복한다.  원하는 대로 표현되지 않아 여간 좌절스러운게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도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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