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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Nov 04. 2020

삶을 위로해주는 영국 예술가

매기 햄블링(Maggi Hambling)

최근 우연히 영국 화가 매기 햄블링(Maggi Hambling)에 관한 BBC 다큐멘터리 <Maggi Hambling: Making Love with the Paint>를 보았다. 이 75세의 화가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스튜디오로 나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린다. 그녀에게는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일 같아 보였다. 책 <예술하는 습관>에 따르면 그녀는 50년 동안 계속 자신만의 루틴을 따랐다.

"제 인생에서 일보다 더 큰 흥분이나 슬픔을 안겨주는 것은 없어요. 하루하루의 생활 방식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용감해질 수 있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고, 미지의 영역으로 탐험하는 작품을 시도할 수 있죠"                                                                                                 -책 <예술하는 습관> 중, "루틴이 변하지 않으면 용감해진다"에서


https://www.bbc.co.uk/news/uk-england-suffolk-54659096

14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녀는 여러 예술학교를 거쳤고, 1980년에 영국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의 첫 번째 입주 예술가가 되었다. 매기 햄블링은 초상화부터 시작해 조각, 판화 등 여러 작업을 해왔다.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에게 헌정하는 조각품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A Conversation with Oscar Wilde)>는 런던 한복판에,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에게 헌정하는 조각품 <가리비(Scallop)> Aldeburgh라는 영국 해변가에 전시되어 있다. 그녀는 2009년에 CBE 훈장도 받았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그녀가 전하는 예술과 삶에 대한 철학에 많은 부분 공감다. 그중 내게 꽂힌 그녀의 말은 소중한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 마음속에 함께 한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익숙하던 말이지만, 그 말이 매기 햄블링의 입으로 발화되니, 그녀가 정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스튜디오 벽면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린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그중 작품명이 <Lipstic>이라는 어머니의 초상화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듯한 어머니의 눈이 잊히지 않았다. 유년기에 매기 햄블링의 아버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혔을 때, 어머니는 울음을 터트렸고, 매기 햄블링은 많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녀는 그때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매기 햄블링 또한 아버지처럼 동성애자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초상화에는 매기 햄블링이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Lipstic>

내게 많은 감동을 준 그녀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는 매기 햄블링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녀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마침 런던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녀의 전시회를 찾아갔다. 지난 3월 이후로 8개월 만에 처음, 그리고 새로 시작될 봉쇄령 3일 전에 나가는 마지막 시내 나들이었다. 그녀의 전시회는 런던의 번화가 피카딜리 서커스 근처의 고급스러운 거리에 위치한 <Marlborough Gallery>에서 했다.

매기 햄블링은 1990년대에 채널 4의 <Gallery Art Quiz Show>의 6명의 출연자 중 자신이 유일한 여성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비판하듯 수염을 달고 방송에 등장했다. 그리고 미디어에 실리는 사진에는 항상 담배 한 개비를 들고 노려보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하지만 반항아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다큐멘터리 속의 그녀는 따뜻한 사람 같아 보였다.

작품에서 보이는 그녀는 대단히 열정적이었다. 다양한 색을 지닌 자신을 표현하듯, 그녀가 그린 자화상은 추상화, 풍경화, 캘리그래피가 섞여있는 듯했다.

<Self portrait>,  2019


모든 작품이 훌륭했지만 내 마음을 특히 사로잡은 작품은 <Young dancing  bear>와 <Laughing> 시리즈였다.

<Young dancing bear>,2019                       <Laughing II>, 2018


두 작품 다 묘한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작품 속에서 곰이 춤을 추며 기뻐하는 것인지 괴로워하는 것인지, 그리고 사람이 웃는 것인것인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Laughing II> 작품을 보며 한참을 서 있었는데, 그 작품은 마치 내게 '웃음은 눈물이 모아 빚어낸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매기 블링은 '명작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따지면 이 두 작품은 모두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작품 속의 대상들은 다 인생을 달관한 듯한 모습을 보여 감탄스러웠다. 통찰이 담긴 작품으로 삶을 위로하기 때문인지 내가 갤러리를 갔을 때 그녀의 작품들은 이미 반 이상 팔려나갔다.

코로나로 그리고 여러 괴로운 생각들로 그간 마음의 힘을 잃고 있었는데, 그녀의 작품은 내게 그렇게 넌지시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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