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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Nov 23. 2020

글, 책, 그리고 영국 문학상

영국은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춘 리터러시(literacy) 인구 비율이 유럽에서 가장 낮은 나라이자, 세계적인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The Booker Prizes)을 주최하는 나라이다. 채널 4의 <The Write Offs> TV 프로그램에서는 우리나라 초등학생도 알만한 단어의 철자를 모르는 성인 출연자들이 리터러시 능력을 기르는 미션을 수행했다. 그리고 11월 19일 BBC에서 올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판된 영어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상을 수여하는 부커상(The Booker Prizes) 시상식을 진행했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우리나라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어로 번역되어 영국에서 출판되고, 2016년 부커 국제상 부문에서 수상했던바 있다. 당시에는 부커상의 후원사가 투자사 맨그룹이어서 맨부커상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1969년에 출판업자 톰 마슐러(Tom Maschler)는 영국 문학이 후퇴하고 있다고 깨닫고, 프랑스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처럼 영국 문학상 설립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문학 관련 사업을 하고 있던 영국의 종합물류유통회사인 부커 그룹(Booker Group)에 그가 후원을 의뢰하여 받아들여진 결과 부커상이라는 문학상이 탄생했다. 1969년 제정된 부커상은 2013년 이전까지 영국과 영국 연합국가(과거 영국 식민지), 아일랜드, 짐바브웨 국적의 작가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이후 영국에서 출판된 모든 영어 소설로 대상을 확대했다. 이 새로운 룰은 미국 작가들에게 영미 문학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매해 바뀌는 다섯 명의 심사위원단들은 출판사가 지원한 백 여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읽고, 그중 최종으로 6개의 작품을 추려낸 뒤 수상작을 결정한다. 데뷔작으로 부커상을 받은 무명의 작가들은 곧 출판계에서 신데렐라가 되고, 이후 가즈오 이시구로처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부커상을 수상한 작가들은 쏟아지는 미디어 세례와 홍보활동으로 다시 자신만의 집필 생활로 돌아가기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고  BBC 다큐멘터리 <50 Years of the Booker Prize>에서 고백했다. 그러나 시상식 후 부커상 수상작이 이전보다 10배나 더 많이 팔려나가기 때문에, 작가는 상금과 명예외에 부커상의 또 다른 수혜를 얻는다. 부커상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수상작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인 <파이 이야기>이다.

 

올해 부커상의 최종 진출작에 오른 6편 중 4편이 데뷔 소설이었고, 4명의 여성작가가 진출했다. 그리고 후보자 중 4명이 유색인종으로 구성되었다. 백인 경찰에 의해 무고하게 죽음을 당했던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의식이라도 하듯이 흑인과 아시아인으로만 결성된 클래식 그룹이 시상식 중간중간에 음악을 연주했다. 최종 후보자들은 예전 같았으면 옷을 잘 차려입고 화려한 연회가 있는 시상식에 참석했을 텐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각자의 집에서 옷을 차려입고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수상작의 호명을 기다렸다. 배우들이 한 명씩 독백처럼 각 후보작의 어느 페이지를 읊는 영상이 소개되었고, 오바마의 축하 영상도 이어졌다.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올해의 부커상은 <셔기 베인(Shuggie Bain)>의 더글라스 스튜어트(Douglas Stuart)에게로 돌아갔다. <셔기 베인>은 독자가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로 출판되기 전까지 30명의 편집자들에 의해 거절을 당했다. 더글라스 스튜어트는 경제적으로 척박한 지역인 글라스고에서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와 자랐던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에 담았다.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를 돌보고, 동성애자인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셔기의 성장기를 담아낸 <셔기 베인>으로 부커상을 거머쥠으로써 신인 무명작가의 화려한 등단을 알렸다. 더글라스 스튜어트는 영국에서 왕립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패션 디자이너 일을 했다. 전업 작가가 아니지만 첫 소설로 문학계 최고의 영예를 얻은 것이다.


우리는 글자를 깨우치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우리 각자는 평생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글로 챕터를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챕터를 남들에게 드러내어 알리는 사람들은 작가가 된다. 부커상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꺼이 세상에 소개하는 작가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자, 인간이 글을 쓸 수 있는 탁월함을 지녔다는 것에 자축하는 기념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두 번째 봉쇄령으로 또다시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나는 인간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봉쇄령 일상에서 내게 글을 쓰는 행위는 잠시나마 외출하는 느낌을 갖게 하고, 쓰는 행위의 결과물인 책을 읽으면 작가의 집에 초대된 것 같아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 물론 글을 시작하고 완성하는 것이 내 맘같이 그리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 가끔 보상 없는 글을 쓰며 내가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글을 쓰는 행위가 나같이 평범한 사람을 비롯해 모두에게 허용된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내게 글은 바닥에 쏟아져 흩어진 구슬 같은 마음들을 모아, 다시 유리병 안에 차곡차곡 집어넣는 것 같은 단정함을 가져다준다. 인간의 축복받은 행위인 글쓰기의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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