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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Dec 26. 2020

음악이 영화를 말한다

영국 영화감독 스티브 맥퀸의 영화

보고 나서 며칠 동안 계속 여운이 남는 영화들이 있다. 내게도 최근 그런 영화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이라는 영국 감독이 만든 작품들이다. 특히 스티브 맥퀸의 영화에서 노래가 나오는 장면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스티브 맥퀸은 영화 <노예 12년>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최초의 흑인 감독이다. 감독이 되기 전인 1999년에 영국의 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비주얼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당시 그와 함께 경쟁했던 후보는 자신의 을 예술에 반영해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던 트레이시 에민이었다. 이후, 스티븐 맥퀸은 이라크 전쟁에 종군 예술가로 참가하기도 하고,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상업 영화감독이 되는 등, 계속해서 실험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영화감독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으면서, 찍는 영화마다 권위 있는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스티브 맥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그의 두 번째 극영화 <셰임(Shame)>을 통해서였다. 이 영화는 섹스 중독자인 주인공 브랜든과 주변인들을 통해 현대인들의 외로움과 공허감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 작품이다. 영화 초반 이 영화에 대해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은 상징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것은 오랜만에 찾아온 여동생 씨씨가 자신이 가수로 일하는 바에 브랜든을 초대하여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그날, 씨씨가 바에서 부른 노래는 '뉴욕, 뉴욕(NewYork, NewYork)'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친숙한 멜로디의 바로 그 노래이다. '뉴욕, 뉴욕'을 떠올리면 뮤지컬 음악 특유의 밝고 희망찬 느낌이 있다. 1977년 마틴 스콜세지의 뮤지컬 영화 <뉴욕, 뉴욕>의 주제가로 지금까지 널리 알려져 있고, 아메리칸드림, 도시에서의 새 출발 등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 <셰임> 속의 '뉴욕, 뉴욕'은 희망보다는 절망감이 느껴지는 구슬픈 노래로 들린다. 씨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성은 배제한 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사람처럼, 노래를 부른다. 외로움과 쓸쓸함이 가득한 씨씨의 노래는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빠 브랜든은 그녀의 노래를 듣는 동안 눈물을 흘리며 평소와 달리 자기 자신을 드러다. 그녀에게 굴곡진 삶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고, 수많은 다른 것으로 마음의 구멍을 채우려 헤매는 자들의 모습이 영화에서 브랜든과 씨씨를 통해 투영되었다. 그래서 씨씨의 노래는 영화에 딱 맞는 옷 같았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영국에서는 올 한 해 코로나만큼이나 큰 이슈가 된 것은 'Black Lives Matter'이다. 역사적으로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던 흑인들의 분노가 조지 플로이드의 억울한 죽음으로 촉발되었다. 그 결과, 미국을 넘어 영국의 문학계나 문화계 안팎으로도 다양한 인종을 존중하려는 노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나 청소년 책이 이전보다 자주 소개되고, TV 프로그램에 흑인의 이야기가 빈번히 등장하였다. 덕분에 나는 내가 잘 모르고 있던 흑인들의 다양한 이야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무고한 흑인들이 피해를 당하는 일이 생각보다 비일비재했다. 어릴 적 인종차별을 당했던 스티브 맥퀸은 'Black Lives Matter'에 대한 현상이 단순히 제스처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최근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실 그는 영국 사회에서 흑인의 삶을 그린 영화를 2012년부터 기획하고 있었. 그리고 올해 그것이 영국의 흑인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처럼 엮여 5개의 Small Axe 시리즈로 탄생했다. 그리고 11월에 BBC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선보였다. 그중 하나의 에피소드인 <러버스 록(Lovers Rock)>은 뉴욕 영화제와 칸 영화제에 초청되고, 가디언의 영화평론가 피터 브래드쇼의 올해 최애 영화로 소개되었다.

영화 <러버스 록>의 한 장면

영화 <러버스 록>은 80년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당시 클럽 출입에 제한을 받은 흑인들이 자기들끼리 하우스 파티를 여는 내용을 담았다. 어찌 보면 단순히 하우스 파티로 시작해서 끝이 나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감독이 슬쩍슬쩍 심어 놓은 요소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관객은 영화 속 하우스 파티를 통해 하나의 사회를 경험할 수 있다. 레게 음악은 영국의 오랜 식민 지배를 받은 자메이카의 저항정신이 담긴 음악이다. 그리고 '러버스 록'은 70년대 런던 레게 씬에서 탄생한, 기존의 레게보다 덜 정치적인, 로맨틱한 스타일의 음악이다. 영화에서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젊은 여성들이 떼창을 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그때 그들이 부른 노래 'Silly Games'가 러버스 락 장르의 대표곡이기도 하다. 자넷 케이(Janet Kay)가 부른 이 노래는 발표 당시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상당히 인기를 누렸다. 영화 속에서 'Silly Games'가 울려 퍼지는 장면은 억눌린 자들의 자유롭고 순수한 젊은 시절을 찬양하는 듯했다. 또한, 나를 젊은 시절 추억 속으로 소환시키며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스티브 맥퀸이 어떤 부분은 배우의 연기를 감독의 지시 없이 자연스럽게 놓아주었다고 하던데 이 장면이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생생한 파티 현장을 재연하게 한 'Silly Games'는 영화가 끝난 후에 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앞서 언급한 스티브 맥퀸의 두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의 음악은 마음에 쉽게 와 닿는다. 영화 <셰임>에서는 '뉴욕 뉴욕'이, <러버스 록>에서는 'Silly Games'가 음악으로 영화의 모든 걸 말해준다.

문득, 인생이 하나의 영화라면 어떤 음악이 내 인생을 말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떤 장르의 음악이 내 인생을 관통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라디오헤드의 'Creep'처럼 우울한 노래는 아니길 바란다. 그렇다고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아무 연주가 없는 침묵 같은 음악도 아니었음 좋겠다. 스티브 맥퀸의 영화 속 음악처럼 어떤 음악이든 그저 내 영화와 잘 어울려 깊은 감동을 주는 음악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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