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별자리와 띠별 운세에서 모두 내게 운이 들어오는 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예상과는 달리 별로 특별한 이벤트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룬 것도 잃은 것도 없는 일 년이었으니 본전 치기를 한 셈이다. 그래도 그저 멀찌감치 서서 한 해가 저무는 것을바라보기만 하는 것 같아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2020년의 마지막주에 영화와 책과 산책을 오가며 지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는 영국 TV에서 영화를 실컷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명절 연휴 때 TV 채널에서 영화 편성이 많아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매일 영화를 녹화를 해두었다가 하나씩 골라 보았다. 주로 아이와 함께 가족 영화를 보았는데, 그중에서 우리는 <스누피: 더 피너츠 무비(Snoopy and Charlie Brown: The Peanuts Movie)>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스누피 만화가 어릴 때 지루하게 느껴졌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는데, 연말에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따뜻한 영화였다. 영화의 한글 제목에서는 빠졌지만 스누피 보다는 찰리 브라운이 주인이 되는 이야기이다.영화의 시작은 찰리의 어린 어깨가 축처지게하는 사건들로 펼쳐진다.찰리는 매번 되는 일이 없어서 온 우주가 자신을 방해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찰리에게 인생살이는 피넛처럼 만만한 게 아니다.그래서 자신의 작은 우주가 광활한 어둠에 휩싸인 것 같다고 느끼지만, 사실 그 안에서도 찰리를 비춰주는 별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결국, 그 별은찰리의 바람대로실패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알아봐 주는 친구를 찾게 해준다. 살다 보면 때때로 세상이 내 진심을 몰라주는 것 같은 때가 있는데, 사실 나를 제대로 알아봐 주는 사람 한 명쯤은 늘 곁에 있다.
2020년 12월 31일, 저녁을 먹고 나니 동네 여기저기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어두컴컴한 지붕들 너머로 불꽃들이 솟아올랐다가 사라진다.
일 년의 끝을 향해가는 마지막 한 시간을 남겨두고TV를 틀었다.연말이면 의례하는 작은 콘서트 형식의 쇼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시켜 두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인지 출연 자의 수가 줄었다. 그 대신 예전에 방송됐던 화면이 중간중간 재생되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자미로콰이의 공연이 있어서 반가웠다.
2020년의 마지막 날과 2021년의 첫날 사이에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을 펼쳤다.포효하다 흩어지는 굉음과 함께 일 년이라는 시간이 어느 순간 통째로 사라져 과거가 되었다.
2021년 새해 첫날, 영국 전체 인구 6800만 명 중에 5만 5천 명이나 코로나 바이러스 일일 확진자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기댈 곳은 위험을 경보하는 무시무시한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가 고르고 고른 말들로 연결된 문장 사이이다. <잊기 좋은 이름>은 다행히 내가 기댈 공간이 충분한 책이어서 새해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십 대의 새해는 육체도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한해 한 해가 지날수록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 사실 몸이 달라진 건 출산 후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일 이년은 내 몸보다는 아이에게 집중한 시기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온몸으로 느끼는 신체적 노화에 약간의 위기감을 느끼며 집 앞을 나선다. 산책을 하면 어디선가 정체되어 있던 온기가 발끝까지 닿아서 굳은 몸이 조금 말랑말랑해지는 것을 느낀다.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동네 공원에서 똑같은 구간을 비슷한 속도로 걷는 것이 어느새 내게 생존을 위한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올해도 작년처럼 공원의 같은 길을 계속해서 반복해 지나갈 것이다. 당분간은 이 정도의 일상이라도 지킬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삶을 살 것이다.
새해부터 아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입으로 하늘로 떠난 이들과 이름 모를 누군가의 안녕을 기원한다. 포근한 이불 같은 아이 곁에 나도잠시 머물러본다. 2021년은 적어도 아이의 작은 두 손만큼의 희망과 아이를 둘러싼 방안 공기만큼의 평온함이 깃드는 해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