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런던 시내에 다녀왔다. 몇 군데 볼일을 보고 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지하철역 벽에 있던 공익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서로를 배려하자"는 문구였다.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도심 한복판에서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조금 덜 외로워지는 순간이었다.
런던 지하철역에 걸린 공익광고가 플랫폼 밑에 깔려있던 여러 기억들을 낚아 올렸다. 요금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급히 출발하는 서울 시내버스 안에서 여러 가지 장애의 모습을 생각했던 나도 떠올랐다.
한국에서 임신 초기는 내게 여러모로 조금 곤란한 시기였다. 몸은 불편한데 배가 별로 나오지 않아 대중교통의 노약자석을 이용하려면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마음까지 불편해지는 애매한 상황을 종종 마주했다. 지하철에 임산부 배려석인 핑크석이 도입되기 전이었고 임산부 배지도 없을 때였다. 아마 그때쯤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나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내 옆의 누군가는 신체적인 불편함이나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게. 티가 나지 않아 겉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초기 암 진단을 받았거나 위가 아픈 사람이 내 옆에서 흔들리는 버스의 손잡이를 잡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공황장애가 있는 누군가가 나와 함께 지옥철을 타고 이동 중일 수도 있다.
아래층 이웃이 층간 소음 때문에 부모님 집에 찾아왔다고 어느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마와 아빠 단 둘이만 살고 계시는데 층간 소음이라니 나는 의아해했다. 아래층 사람이 쿵쿵 소리가 나서 시끄럽다고 했던 모양이었다. 당시 파킨슨 증후군이 있던 아빠는 걸을 때 중심을 잡기 위해 다리가 네 개 달린 의료 보행기를 집 안에서 사용했었다. 앞발 두 개에 바퀴가 달리고 뒷발은 고무가 박힌 알루미늄 재질의 워커기였다. 가벼운 무게가 믿음직스럽진 않았지만 아빠는 아쉬운 대로 워커기에 몸을 의지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아빠를 부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175센티미터의 키에 보통 체격을 지닌 아빠는 몸을 잘 가누지 못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부축하는 사람의 진을 뺐다.
엄마는 워커기를 이용하고 발걸음이 둔탁한 아빠의 움직임이 소음을 낸 것이라고 추정하고 그 이웃에게 사과했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아빠가 몸이 불편하니 이해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간의 우리 집 사정을 몰랐던 아래층 이웃은 층간 소음의 오해를 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한 층 사이에 놓인 벽으로는 볼 수 없던 아빠의 신체적 장애를 그 이웃은 귀로 느끼게 되었다. 이후, 아빠가 새벽에 침실 화장실을 사용하며 소음을 낼 때도 많았는데 아랫집 이웃은 고맙게도 묵묵히 이해해주었다.
반면 우리를 화나게 하는 이웃도 있었다. 엄마가 운전해서 아빠를 모시고 다니던 자동차에는 장애인 스티커가 부착되었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고 있고, 일정한 장애등급을 받은 사람들에게 보급되는 주차 스티커였다. 그 스티커가 있으면 어디서든 장애인 주차칸을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 주차칸은 건물 출입구에서 가까워 거동이 불편한 아빠가 이동하기에 편리했다. 그런데 가끔 장애인 스티커가 없는 차량이 장애인 주차칸을 버젓이 차지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살고 있는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 여러층을 빙글빙글 돌며 빈자리를 찾아다녀야 했다. 내가 한국에 살 때 부모님이 우리 집이나 다른 곳을 방문할 때도 이런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특히 엄마에게 짐이 많은 날 그런 일이 생기면 엄마는 짐을 먼저 아파트 입구에 옮겨다 놓고 아빠를 모시러 가야 했다. 아빠를 차에서 내리게 한 후 아파트 입구로 함께 부축해가는 거리가, 아빠를 모시고 턱이 높은 버스 계단에 오르는 것처럼, 엄마에겐 무척 막막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장애인 주차칸을 슬쩍 이용한 그 차량 주인은 보는 사람이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며 남의 주차칸을 그렇게 쉽게 뺏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배려에 게으르고 원칙과 법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로 불리는 것처럼 영국인들은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사람들 간에 적당한 물리적 거리를 두고 조금이라도 몸이 부딪힐 것 같으면 미리 "Sorry"라고 말한다. 1미터 정도의 거리를 앞에 두고서도 그런다. 그리고 Thank you도 Sorry 만큼 일상생활에서 사소하게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처음 영국에 유학 왔을 때는 이 단어들을 빈번히 사용하는 게 습관이 되지 않아 조금 어렵기도 했다. 영국에 계속 살다 보니 친절과 배려가 인간의 품위를 나타내는 척도라는 생각을 점점하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불편함을 한 두 가지씩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 누군가 내게 베푼 친절은 하루를 배부르게 만들어 준다. 또한 어떤 친절은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하게 된다. 영국 지하철역의 공익광고를 보면서 친절과 배려는 조금 낭비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