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두시 Nov 12. 2020

중력의 법칙

어느 낭만주의자가 모범생에게

영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모범생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범생이란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학교에서는) 착하고 성실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킨다거나, 학교에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와 우리 아이를 짝꿍으로 맺어주는 경우가 있다. 아이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 조차도 우리 아이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학부모로서 선생님이 아이를 신뢰한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보면 아이를 평판이라는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칭찬이 아이에게 동기부여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보면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누군가의 판단에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때로는 싫으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두 명의 오빠가 있다. 첫째 오빠는 친구들이랑 밖으로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성격을 지녔고, 둘째 오빠는 내향적인 모범생이었다. 둘째 오빠는 운동신경은 없지만 예술적인 재능이 있었다. 혼자 만화를 그리고, 조립을 하고, 퍼즐을 하고, 책을 읽고, 일기도 썼다. 어릴 때부터 쓰던 일기를 대학에 가서도 썼고, 그리고 지금도 쓰고 있다고 추측된다. 둘째 오빠는 집에서 보내는 여유 시간을 우리 셋 중에서 가장 성실히 채워나갔다. 반면, 나와 첫째 오빠는 밖에서 친구를 만나는 걸 즐기고, 나는 집에 와서 TV를 보는 것 외에 집에 있는 것을 무척 지루해했다. 둘째 오빠는 성실한 모범생답게 공부를 잘했고, 대학 졸업 후에 대기업에 입사해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그야말로 모범생의 인생길을 밟아왔다.


작년 이맘때쯤 한국에서 아빠의 장례를 치렀다. 모든 일이 마무리될 때쯤 우리 형제는 엄마 집에 모여 술을 한잔씩 기울였다. 우리는 아빠의 장례식 때 둘째 오빠의 회사에서 주는 복지 혜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회사에서 연결해준 장례업체의 직원들은 우리가 갑자기 몰려드는 문상객들에 경황이 없어도 말없이 알아서 손님상을 잘 차려주었고, 장례지도사는 돌아가신 아빠에게 타인으로써의 마지막 예의를 잘 갖춰주었다. 술자리에서 나랑 첫째 오빠는 둘째 오빠의 회사 지원 덕에 장례를 잘 치렀다고 둘째 오빠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런데 둘째 오빠는 우리에게 그간 회사를 정말 그만두고 싶은 적이 많았다고 뜻밖의 고백을 했다. 우리 셋 중 조직생활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오빠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정말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회사 생활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스트레스도 함께 커져가는데, 오빠는 그동안 고된 회사 생활을 많이 참고 있었다. 우리는 나이 때문에 둘째 오빠가 그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효율성보다는 엉덩이를 의자에 오래 붙이고 있는 사람이 회사의 모범이 되는 사람으로 간주되니, 근무 시간은 긴데 정년은 오히려 짧다. 오빠는 모범생답게 회사에서 환영받지 못할 때까지 성실히 버티려는 것인지, 자신의 타이틀이 없어지는 초라함을 받아들이는 게 두려운 것인지. 미래가 막막한 것인지, 조직 안에 속해 있다는 안심 때문인지, 아직도 그 대기업에 매일 출퇴근을 하고 있다.


어제는 산책을 하다가 나뭇잎이 낙엽이 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나뭇잎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듯이, 하나, 둘씩 순차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떤 나뭇잎은 그냥 떨어지기도 했지만, 어떤 나뭇잎은 바람의 탄력을 받아 공중제비돌기 하듯이 멋지게 떨어지고, 어떤 나뭇잎은 나비처럼 파르르 떨며 떨어졌다. 그렇지만 나뭇가지에 붙어 있을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낙엽으로 떨어질 때에도 잎들은 저마다 각자의 멋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낙엽이 지는 걸 보며 쓸쓸하다는 생각 대신, 아름답고 경이롭다는 감상에 젖었다.

둘째 오빠는 그간 해온 것처럼 자신의 미래도 성실하게 잘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문득, 번지 점프하듯이 신나게 떨어지는 낙엽의 축제를 둘째 오빠가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잎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을 보며 잠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매거진의 이전글 '잊고 싶지 않다'는 말의 동의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