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 차 : 나는 아빠가 될 준비가 되었을까?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던 임신이 우리 부부에게는 왜 그렇지 않을까?'. 수도 없이 생각해 보았다. 주변의 그 누구도 임신으로 괴로워하지 않는 것 같았고, 오히려 예상치도 못한 임신으로 힘들어하거나 신세를 탓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좋으면서 어리광 부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언제쯤 임신을 할 수 있을까?(정확히는 아내가 임신을 하는 것이지만..)
임신을 하기 위해 3년이라는 시간을 노력했다. 물론, 중간에 몇 개월 떨어져 지낸 적이 있었기는 하지만, 시간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도를 했다. 매번 아내의 배란기를 체크했었고, 그 일정에 맞춰서 내 컨디션도 조절을 했다. 주위에서는, 특히 부모님은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다 보면 생길 것이라고 조언을 하셨지만 막상 그 조언을 듣기에는 마음이 조급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내가 난임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부모님도 난임 병원에 가서 해보라고, 최근에는 많은 부부들이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하니 너네도 한번 해보라고 하셨다. 생각해본다는 우회적인 대답을 하였지만, 속 마음은 전혀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남자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지?', '난 아직 이상 없는데?'. 내가 난임일 수 있다는 것과, 남들 다 하는 임신을 병원의 힘을 빌려 임신을 해야 한다는 것에 그냥 싫었다.
아내의 '그냥 검사라도 받아보자'라는 몇 번의 설득으로 가까스로 함께 난임 전문병원에 방문했다. 이런! 그날 방문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내 생각이 얼마나 옹졸하고 비겁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많은 부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와 표정들, 행동들을 보며 어떻게 해서든 임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으로 얻게 되는 우리의 아이는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그만큼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임신을 꼭 하고 싶다. 아빠가 되어보고 싶다. 우리 아빠가 나를 키우면서 어땠을까?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면, 임신테스트기는 단연코 필수로 챙겨야 하는 아이템이다. 단순히 임신 여부를 확인할 때만 쓰이지 않는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도 임신테스트기는 꽤나 효과적이다. 너무 과하게 집착하게 되면 스트레스나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적절하게 계획적으로 사용한다면 배란기와 생리주기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내에게는 오히려 임신테스트기에 대한 부담을 덜 주려고 노력했다. 배란기와 생리주기 등은 오히려 나 혼자만 신경 쓰고 자연스럽게 배란기에 관계를 맺기 위해 유도했다.
임신테스트기에 조금이라도 선과 같은 표시가 있으면 우리는 호들갑을 떨었다. 테스트기가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고 또 한 번 해보기도 하고 참 지금 생각하면 나름 재미있게 우리끼리 반응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선이 진해지지 않으면 서운해하면서도 절대 좌절하지 않았다. 지금이 적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우리에게 적당한 때에 임신이라는 선물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굳게 다져나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선물을 받았다. 선이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내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아니, 차분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며칠 더 테스트를 해 봐야 확실히 알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가슴속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의 아내가 임신했다!'.
나는 혼자 킥킥대고 신나 하고 난리가 났는데 아내는 침착했다. 왜 그럴까? 그날 밤 침대에 서로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살며시 물어보았다. '자기, 임신했는데 어때? 생각보다 안 기뻐하는데?'. 아내는 대답했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며칠 더 해보고 병원에서 확인을 해봐야 최종적으로 임신이 된 게 실감이 날 것 같아'. 순간 이런 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임을 직감했다. 나는 너무 모르고 있었다. 임신테스트기에 두줄만 나오면 다 되는지 알았다. 물론, 임신테스트기가 임신 여부를 확인하는 보조수단이고, 정확한 결과는 꼭 병원에서 확인해야 한다라는 부분이 설명서에 명확하게 쓰여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두줄이 내 눈에서 보이는 순간 나는 임신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었다. 부모님과 장모님에게 빨리 알려드리고 싶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도 임신테스트기의 두줄 나온 사진을 올리고 싶었다. 그만큼 간절했기에 두줄이 나오자마자 나는 다 된 것처럼 생각했다. 아내는 자기 전에 나에게 속삭이듯 한마디를 했다. '오빠, 남자도 임신 공부가 필요해'. '응?'.
무슨 말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임신은 여자가 하는 건데 내가 공부해서 뭐하지? 여자가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것 아니야? 우리네 남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일쑤다(물론 모든 남자가 그러는 것은 아니다). 아내의 말이 너무 마음에 걸려서 인터넷으로 폭풍 검색을 했다. 우리나라의 뉴스, 블로그, 카페, 논문, 유튜브뿐 아니라 해외의 블로그까지 읽어보았다. 정말 그렇다. 심지어 남자가 임신과 육아와 관련된 책을 낸 사람도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임신은 주차별로 그 특징이 다르다. 그래서 임신을 하고 나서는 주차별로 관리를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1주 차부터 4주 차까지는 임신을 확인하는 시기가 된다. 임신의 1~2주 차에는 배란기가 포함되어 있고 만약에 임신이 된다면 이 시기에 나의 정자와 아내의 난자가 만나서 수정이 되는 시기이다. 임신 3주 차에는 이렇게 수정된 수정란이 착상을 하게 되는 단계이다. 이때, 호르몬의 농도가 증가하게 되는데 그래서 아내의 몸에서는 평소와 다른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남자들은 아내가 느끼는 증상들에 대해서 관심 있게 잘 살펴봐야 한다.
임신의 주차는 아내가 생리를 마지막으로 시작한 날을 시점으로 계산한다. 임신 3주 차에는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한다면 2줄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임신 4주 차에는 임신테스트기의 2줄이 선명하게 진해지며 병원에 가서 임신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피검사를 진행한다. 피검사는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기 위함인데 일반적으로 4주 차에 피검사를 진행하게 되면 HCG(사람 융모성 성선 자극 호르몬) 수치나 100 이상이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을 때 HCG가 100 이상이 되면 그다음 주에 다시 피검사를 진행하게 된다. 이 HCG수치는 임신이 되면 그 수치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아내 역시 임신 극초기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증상은 바로 수면량이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자도 피곤한 느낌이 계속된다. 아침잠과 낮잠이 많아지게 되는데 신기한 것은 나 역시 잠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주말에 같이 자면 된다. 임신하느라 수고했으니 이 정도 잠은 잘 자격이 있다.
또 다른 증상으로 몸에 열이 발생하는 부분이다. 체온이 36.8~37도로 어느 정도 열이 오르는 것은 지극히 정상인 증상이기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수시로 아내의 체온을 체온계로 확인하면서 안심을 시켜주었다. 이러한 심리적 안정감은 아내의 전체적인 컨디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여자들보다 꼼꼼한 우리 남자들이 꼭 챙겨야 한다. 체온을 재서 그 결과를 이야기해줄 때마다 칭찬을 받았다. 역시 나야!
아내는 입덧도 시작했다. 입덧의 경우, 사람마다 그 차이가 확연히 큰데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입덧을 했다. 생각보다 심하게 했다. 입덧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매스꺼움이 아니라고 아내가 정확하게 설명해주었다. 아무리 설명한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으니 이 부분 역시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지인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얻게 되는 정보들은 너무 한정적이었다. 주변의 대부분의 경우에는 입덧을 하지 않았거나 아주 약하게 했다. 하지만 아내는 가끔 토할 정도로 입덧을 확실하게 해 주었고 나는 그 덕분에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입맛이 완전히 바뀌어서 평소에 잘 먹지 않던 신맛의 음식들을 아내는 즐겨먹었는데 운 좋게도 신맛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었다.
병원의 원장님이 해 준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임신 증상이 확실하다는 것은 임신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이에요'. 정말 그렇다. 임신 증상이 물론 고역일 수 있겠지만, 이는 임신을 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고 뚜렷한 증상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더 안심이 된다. 아내가 이러한 증상을 참아내는 동안 나는 어떻게 하면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제때에 가져다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답은 하나였다. 아내가 말하는 즉시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설령, 내가 음식을 가지고 오는 동안 입맛이 바뀌었을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