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월이 된 해도
나는 해도가 하루라도 빨리 스스로 판단하고 결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배우길 바랐다. 하지만, 그 순간이 너무 빨리 찾아왔던가, 그 순간이 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나는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에 무상함이 들었다. 해도가 이제 하나씩 스스로 하길 시작했다. 도와주려고 해도 마다한다. 능숙하지 않아도 혼자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렇다. 이제 내 딸이 조금씩 사회성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의 관점에서 딸이 하는 모든 것은 완벽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도와주려고 하고, 어떻게 해서든 지원하려고 한다.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부모들이 가용한 자원과 역량을 총 동원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나 역시, 빠르게 세상에 적응하는 것을 기대하면서 해도의 행동에 나의 힘을 보태왔다.
해도는 22개월이 되면서, 모든 것을 혼자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아침에 일어날 때 해도는, 나와 아내의 부름을 시작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잘 잤어?'라는 속삭임과 함께 해도는 일어났다. 이제 해도는, 스스로 8시가 되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가끔은 해도가 우리를 먼저 깨울 때도 있다. 스스로 잠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잠에서 일어나면 해도는 바로 자기의 변기로 향한다. 배변교육과는 별개로, 스스로 변기에 가서 앉아서 첫 소변을 눈다. 어느덧 루틴이 되어 있었고, 나의 별다른 잔소리가 없어도 스스로 가서 첫 소변을 변기에 하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을 때면, 자기 밥그릇과 식사도구를 챙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물을 마신다. 밥을 먹여주는 나의 즐거움을 해도는 조금씩 뺏어가기 시작했다. 직접 숟가락과 포크를 가지고 음식을 떠서 먹는다. 흘리기도 하지만, 그 흘리는 정도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양치는 아직까지 나의 손을 빌리고 있지만, 조만간 직접 양치를 한다고 할 것 같다. 칫솔과 치약을 스스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양치는 애나 어른이나 누구에게나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직접 하는 것보다는 편하게 누워서 입만 벌리고 '치카치카'는 나를 시키는 것 같다.
이제는 직접 기저귀도 갈아입는다. 바지와 윗도리도 직접 골라서 입는다. 왼쪽과 오른쪽을 완벽하게 구별해서 입기 시작했다. 꽤나 색상의 매치도 예술적으로 화려하다. 그만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발달하는 것 같다.
양말과 신발도 직접 신는다. 해도는 아직 신발이 한 켤레뿐이어서 적응하는데 수훨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발의 왼쪽과 오른쪽을 이제는 스스로 구별할 줄 안다.
유모차는 타는 것보다, 스스로 끌어보고 싶어 한다.
장난감도 스스로 골라야 한다. 나 또는 아내가 골라주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거부한다. 직접 둘러보고 만져보고 마음에 들어야 비로소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나씩 해도가 스스로 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대견하다. 그리고 너무 사랑스럽고 감사합을 느낀다. 동시에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보다. 이미 예전에 해도에게 해 주던 것들 중 이제 더 이상 해줄 수 없는 것들도 많다. 특히, 품에 앉고 밥을 먹이던 시기는 가끔 생각이 난다. 먹이면서 행복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고, 내 눈에 보인 해도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사실,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고 서운하거나 아쉬워할 따위의 감정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더 이상 하지 못하는 것들과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 순간들은 이제 추억으로나마 기억해야 하는 것에 그저 슬프면서도 허무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