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월 아기
딸이 태어난 이래, 내가 잠시 먼저 인도로 가 있었던 2개월을 제외하고 항상 같이 있었다. 하루 24시간 같은 공간에서 해도가 무슨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든 것을 공유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도가 본인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해도가 22개월이 막 지나던 찰나, 항상 같이 잠을 자 왔던 침대 아래로 내려가 본인만의 이불과 베개를 가지고 가서 누웠다. 순간, 따로 자면 편하게 잘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세 좋음은 서운함과 아쉬움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딸이 벌써 이렇게 큰 건가?
내 어릴 적이 생각났다. 항상 부모님과 같이 잤었다. 내 방이 별도로 있어도, 엄마아빠와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는 것이 좋았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부모님과 따로 자기 시작했다. 밤늦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해도가 이제 막 22개월이 되었지만, 혹시 잠자리가 불편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해도의 잠자리를 조금 더 아늑하고 편하게 바꿔주었다. 사실, 우리와 같은 침대에서 자기 때문에 큰 변화는 아니지만 최대한 가볍고 부드러운 이불을 덮어주고, 해도에게 알맞은 베개를 준비해 주었다. 이후, 우리와 다시 매일같이 잠을 같이 자는 듯했지만, 여전히 자기 전에 한 번씩 본인만의 잠자리를 만들어보고 누워보고 나서야 침대로 올라와서 우리와 함께 잔다. 그렇다. 해도는 이제, 본인만의 공간이 필요한 순간이 온 것이다.
우리 집 거실에는 해도가 편하게 뛰어놀라고 웬만한 가구들과 장식대를 모두 다른 방으로 치워놨다. 1인용 소파 하나만 있을 뿐이다. 가끔 해도와 놀아주다가 나는 그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해도가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가끔 책을 읽는 사치도 즐긴다. 그런 공간을 해도가 차지해 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해도는 그 소파에 자신만의 물건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파에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 아직은 몸집이 작아 소파에 누우면 편하게 쉴 수 있는 해도다. 아내가 사용하는 요가매트를 등받이로 가져다 놓고, 편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왜 아기용 소파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물론, 해도에게 별도의 아기용 소파를 사 줄 계획은 없다. 하지만, 해도만의 공간을 만들어 줄 필요는 있다.
어느 날, 거실에 놓여있던 옷걸이를 하나씩 가져가기 시작했다. 해도가 어디로 가져나가 따라가 봤더니, 옷방에 있는 선반의 고리에 옷걸이를 걸어놓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항상 우리와 같이 걸어놓던 자기 패딩을 그 선반의 고리에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옷과, 장난감 등을 가져와서 걸어놓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가 사용하는 옷걸이대가 아닌, 본인만의 옷걸이대가 필요한 것이다.
공부방에서 책을 보고 있던 날이었다. 해도가 이불을 하나 가져오더니, 긴 소파 위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자리 잡고 누워서 이불을 덮고 내가 보고 있던 책을 가져가더니 책을 보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하던 나쁜 습관(?)이긴 하지만, 항상 있던 본인의 공간이 아닌 다른 공간에 와서 자신만의 공간으로 바꾸는 모습은 아빠인 나에게 약간의 서운함을 주기 충분했다.
해도에게 두 번째 레고를 사 주었다. 평소에 장난감을 잘 사주지 않는 덕에, 뭐 하나만 사줘도 해도는 너무 좋아라 한다. 그래도 그렇지, 해도는 레고박스를 집에서 받자마자 본인 이불과 베개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레고박스 위에 깔고 그 위에 누웠다. 본인만의 또 다른 공간을 만든 것이다. 볼 때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즐거웠지만, 동시에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해도야, 아빠는 너무 섭섭해
아기들은 24개월이 가까워지면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해도도 그런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직접 하고 싶어 하고, 직접 느껴보고 싶어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독립심과 자립성을 형성한다. 이 단계에서 부모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부모는 자신의 자식들이 하는 모든 일을 도와주고 싶어 한다. 도와주는 것은 괜찮지만, 대신해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 서툴고 완벽하지 않아도 자녀가 시도해 보고 직접 느껴볼 수 있도록, 비록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지만 끝까지 기다려주고 조언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행동이 옳은지 또는 옳지 않은지 명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22개월의 아기들은 부모의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는다. 직접 이해하는 것들도 있고, 교감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들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을 부모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교감해 준다면 아기들은 본인이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을 스스로, 본능적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