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유치원 16
작년 3월까지만 해도 아빠는
눈앞에서 보는 것을 따라 하는 것도
잘 못하셨다.
생각과 판단을 못 하시니
손가락에 뇌의 명령이 전달되질 못해서
동작으로 연결이 안 되는 느낌?
아빠는 손가락의 동작이 둔해지고
미세한 동작들이 되질 않으셨다.
그랬던 시기에 비하면 많이 좋아지셨다.
나와의 놀이를 할 때만 발휘되는
부분적인 집중력이라 아쉽지만,
그마저도 안 되던 때에 비하면 너무 다행이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는데,
우리의 놀이들이 아빠의 정서적인 안정감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바로 이날의 놀이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작품에 점점 표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처음 이 놀이를 했을 때,
아빠가 집중하셨던 생각이 나서
털실로 머리 붙이기 2탄을 해보았다.
아빠와 놀이를 할 때는
항상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얼굴을 그려주세요"라고 말로만 하면
아빠의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작을 못 하신다.
그렇지만 내가 그 과정을 직접 보여드리면
따라 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이날에 했었던 머리 붙이기 놀이가
나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이유가 있다.
보통 우리의 놀이가 나의 시범과
아빠의 따라 하기가 주가 되었다면,
이날은 아빠가 자기 주도에 가까운 놀이를
하셨다는 점이 달랐다.
아빠가 원하는 대로 표현을 하신 것이다.
1탄으로 만들었던 사진을 보여드리고
처음에 얼굴 그리는 시범을 보여드린 후에
나는 가만히 아빠가 하시는 대로 지켜보았다.
털실만 잘라드리면서 말이다.
한 번 했었던 놀이의 2탄이라는 점이
아무래도 아빠 손의 감각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스티커 붙이기나 색칠하기처럼
아주 많이 했었던 놀이가 아니었음에도
털실 붙이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제법 멋진 작품을 완성하셨다.
오예~~~!!
내가 신경 썼던 부분은 털실의 길이였다.
다양한 머리를 표현해보고자 하는 것만
내가 정해간 방향이었다.
긴 머리는 이미 1탄에서 만들었으니
짧은 머리도 만들면 좋을 거 같아서
털실을 짧게 잘라드려 보았다.
그랬더니 짧은 머리의 얼굴을
아빠만의 방법으로 완성하셨지 뭔가.
머리만 있으니 너무 썰렁해서
옷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옷모양은 내가 잘라드리지 않고
그냥 색종이만 드려보았다.
그랬더니 아빠는 색종이 한 장을
그냥 통으로 붙여놓으셨다.
옷을 입은 모양인지 이불을 덮은 모양인지
너무 애매한 모양이라서,
나는 그것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패브릭 스티커를 동그랗게 잘라서
단추처럼 붙이니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옷이라기에는 너무 컸다.
내가 색종이의 반을 잘라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팔을 붙여보시라고 말씀드리니
아빠는 팔 붙이기에는 아예 관심이 없으셨다.
팔은 그냥 패스했다.
털실로 만든 머리는 1탄보다
2탄이 훨씬 매력적이고 대단하다.
1탄은 내가 다 만들어드린 머리를
아빠가 풀로 붙이기만 하셨던 건데,
2탄은 내가 잘라드린 실을
아빠가 마음대로 붙이셨기 때문이다.
털실의 길이를 모두 다르게
잘라 드린 것은 나였지만,
각각의 머리 모양을 매력적인 분위기로
붙이신 것은 아빠였다.
아빠의 솜씨가 최대로 발휘된 작품이었다!
짧은 남자 머리,
약간 구불거리는 남자 머리,
짧고 구불거리는 여자 머리,
긴 머리 묶은 여자까지 완성됐다.
가져간 털실이 떴다 풀었다 했던 실이라서
자연스럽게 구불거린 덕분에, 곱슬머리 혹은
파마머리의 표현이 기대이상으로 잘 되었다.
이날의 아빠는 정말 집중력 최고였다.
털실에 풀칠도 혼자 다 해서 붙이시고
얼굴 모양, 귀, 표정, 목과 어깨선까지
모두 아빠가 그리셨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아빠의 손동작이 이어졌다.
나에겐 이날의 작품이 유독 뭉클했다.
작년과 비교하면 너무 대단한 발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아빠의 컨디션이
최상인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늘 하던 대로
"아빠, 제 이름이 뭐예요?"라고 했더니
아빠는 내게 그러셨다.
"ㅇㅇ~~"
"아빠, ㅇㅇ은 고모 이름이고요.
제 이름은 뭐예요?"
아빠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시더니
눈을 끔벅끔벅하시면서
"몰라"그러셨다.
또 내 이름을 잊어버리신 것이다.
계속 여쭈어 보았지만
내 이름이 꽁꽁 숨어버린 날이었다.
손으로는 멋진 작품을 만드신 날이었고
그간 연습한 만큼의 발전도 있으셨는데,
아빠 머릿속의 기억들만 수시로 안갯속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얼굴도 몰라보셨던 날의 충격을 떠올린다.
그날에 비하면 모든 것이 다행이다.
ㄴ첫 번째로 완성했던 남자 머리
ㄴ두 번째로 완성했던 남자 머리
ㄴ세 번째로 완성했던 여자 머리
ㄴ마지막으로 완성했던 여자 머리/ 1탄에서 머리를 묶었던 경험으로 아주 잘 묶으셨다.
ㄴ아빠 작품 속의 그림들에 표정이 생겼다. 뭔가 익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