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에겐 초록초록한 꿈이 있었지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내 이름은 부추!


나에게는 초록초록한 꿈이 있어요.

꿈이라고 해서 뭐 거창하고 대단하고

그런 것이 아니고요.

그냥 내 초록 줄기에 가득 담긴 영양분을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전달하고 싶은 꿈이랍니다.


나는 늘 설레요.

내가 어떤 맛있는 음식으로

변신하게 될지에 대한 기대가 있거든요.


나는 바삭바삭한 부추전이 되려나?

음... 어쩌면 오이소박이 속에 들어가는

감칠맛을 더하는 부추가 될지도 몰라요.

아니면 부추무침이 될 수도 있겠죠?

어떤 주인을 만나 어떤 요리가 될지

상상하는 일이 너무 즐거워요.


드디어 나를 선택한 주인을 만났죠.

주인이 나를 보며 그랬어요.

"계속 비도 오고 부추전이나 해 먹어야겠다."


"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비 오는 날에 먹는 부추전은 너무 맛있죠.

좋아요. 나만 믿어요.

내가 바삭하고 향기로운 부추전이 되어줄게요."


부추전이 되기로 확정받은 그 순간부터

내가 얼마나 설렜는지 아세요?

맘껏 상상도 했거든요.

내가 동그랗고 예쁜 부추전으로

변신하는 순간을 말이에요.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나를 냉장고에 넣은 주인은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나를 꺼내질 않았어요.


냉장고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쳐다봤는데

다른 채소들이 냉장고 밖으로 나갈 동안

나는 꺼내주질 않는 거예요.


"어? 이상하다?

비 오는 날에 부추전 이랬는데?"

요즘 장마 기간이라서 계속 비가 오니까

언제든 먹을 수 있다고 조금 미루는 건가 했거든요.


그래서 기다렸어요.

뭔가 바쁜 일이 있나 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 했었던 거 같기도 한데...

뭐가 됐든 부추전을 한다고 했으니

설마 내가 시들기 전에야 꺼내주지 않을까요?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만 하기로 했죠.


아,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 주인의 시선이

내게 오질 않았습니다.

나는 정말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 어떤 부추전보다 맛있게 구워질 자신 말이에요.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초록의 싱그러운 색깔이던 나는

점점 몸이 시들시들해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요.


영양가 있는 부추였던 나인데

이젠 내 몸의 모든 것들이 다 빠져나가며

사라져 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죠.


나와 함께 냉장고에 들어왔던 동기들은

이미 모두 떠났습니다.

양배추도, 당근도, 상추도 모두 떠났고

이제 나만 남았습니다.


오늘 새로 들어온 호박이 나를 보더니

예의 바르게 묻더라고요.

"안녕하세요? 노란 잔디님은 어쩌다가

냉장고에 들어오게 되셨어요?"


어머 이게 무슨 소리죠?

내가 기운이 떨어져서 잘못 들은 걸까요?

호박이 나더러 잔디라고 했어요.


"잔디? 나는 잔디가 아니라 부추인데요?"


"어머, 부추라고요? 부추는 초록색인데요.

하나도 싱싱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부추예요?

잔디 중에서도 잔디 어르신이라고

불러드려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내가 냉장고 안에서 기다림에 지쳐

먹는 채소로도 안 보이게 됐고,

잔디로 보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싱그러움이 사라졌다 정도가 아닌,

부추인 내가 통째로 소멸해 버린 기분입니다.


호박 때문에 충격받은 마음을

도무지 진정시킬 방법이 없어

마음에 휑한 찬바람이 불었어요.

그 때문에 냉장고 속이 더 춥게 느껴집니다.


그때였어요. 냉장고 문이 열리고

주인이 드디어 나를 발견했죠.

"어머나! 이게 뭐야?

부추가 노랗게 될 때까지 나 뭐 했니?

내가 더워서 정신이 나갔었나 봐.

아휴, 아까워라."


나는 초록초록하던 꿈이 가득하던 부추!

맛있는 음식이 되어보려던 나의 꿈은

어디로 갔을까요?


부추의꿈은어디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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