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빠와 스티커로 집 완성해 보기

아빠 유치원 18

by 마이드림

그날의 놀이는 집을 완성해 보기였다.

재료는 패브릭 스티커와 점스티커였다.

간단히 밑그림을 그려드렸고,

아빠는 스티커를 붙이시면 되었다.



집의 테두리를 완성한 후에

창문을 붙이고 있을 때였다.

겨울이라 그런지 창문이 너무 휑해 보여서

점스티커로 커튼을 붙이기로 했다.

(밑그림을 그려드렸다.)


아빠는 커튼에 초록점을 붙이셨다.

집중해서 잘하시기에,

"창문 하나 더 만들까요?"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다른 창문에는 빨강과 파랑 점을

붙이고 싶어 하셨다.

커튼의 색깔이 통일되지 않은 것도

재밌는 부분이었다.


너무 웃겼던 건,

아빠가 빨강 파랑 스티커를 번갈아가며

패턴처럼 붙이셨다는 점이다.

전에 패턴 놀이를 반복했었는데

그것이 손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반복의 힘은 생각보다 더 놀랍다.

연습했던 동작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날이 있다. 항상은 아니고 가끔이지만.


그런데 두 가지 색의 점을 붙이다 보니

아빠도 헷갈리셨던가 보다.

내가 표시해 드린 선을 벗어나서

네모 칸에 스티커를 가득 붙여놓으셨다.


다시 점을 떼어내자니 힘들어서

단정하게 묶어 놓은 커튼이 아니라

커튼을 살짝 쳐놓은 상태라고 정했다.

우리의 놀이는 항상 상황에 맞춰서 조율한다.


점스티커로 커튼을 완성한 후에는

패브릭 스티커로 지붕을 붙이시도록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섬세하게 붙이셔서 놀랐다.


이제 집은 완성되었고,

비어 있는 공간에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패브릭 스티커를 이용했다.

동그랗게 잘라드리고

눈사람 모양으로 붙이시도록 했다.


가늘게 자른 패브릭 스티커로

나뭇가지 꽂는 것처럼 팔을 붙이시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빠는 눈사람의 팔을

엉뚱하게 목에다 붙이셨다.

어찌 보면 목에 팔이 꽂힌 것처럼 보이고

어찌 보면 목도리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아빠가 웃기려고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나는 바뀐 상황에 웃음이 났다.

우리의 놀이는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 주는, 의외의 즐거움이 있다.


이제 눈사람의 얼굴을 그릴 차례였다.

표정을 어떻게 그릴까 하다가

약간 심술 난 표정이 재밌을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시범으로 그려보았다.


아빠는 내 그림을 보고 따라서 그리셨다.

그런데 잠시 뒤에 보니까 눈사람의 표정이

거꾸로 그려져 있었다.


아빠가 그려놓으신 표정대로라면

눈사람이 눈 오는 거 보려고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림이 된 것이다.


아빠는 왜 거꾸로 그리신 건지 모르겠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눈사람의 표정 때문에

웃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림의 완성은 눈이 내리는 풍경으로 정했다.

흰색 점스티커를 눈처럼 붙이면서 마무리했다.



우리의 놀이는...

완벽을 요구하는 작품활동이 아니다.

그냥 아빠와 같이 놀 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는 놀이이다.

그러다 보니 아빠의 엉뚱한 실수들은

그 자체로 새로운 상황과 이야기가 되곤 한다.


커튼을 묶어놓은 그림이었는데

커튼을 풀어놓은 그림이 된다던지,

똑바로 서 있는 눈사람이었는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눈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던 일이 펼쳐질 때마다

놀이에서는 오히려 즐거움이 되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오히려 더

흥미로워진 느낌이랄까.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

집중력을 발휘하는 아빠를 볼 수 있어서

아주 기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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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패브릭 스티커 붙여서 지붕 만들기부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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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창틀은 남겨두고 붙였어야 했는데 자세히 보면 점스티커가 창틀까지 다 덮어버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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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커튼을 만들기 위해 빨강과 파랑 점스티커를 규칙적으로 붙이시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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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원래는 커튼을 묶어놓은 설정인데 선을 벗어나 네모칸 가득 붙여놓은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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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결국 커튼을 친 것이라는 설정으로 바꾸어 비어 있는 부분에다 점스티커를 채우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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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아빠는 이렇게 꼼꼼하게 붙이는 동작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섬세함을 보여주시곤 한다.


20260101_221240.jpg ㄴ내가 시범으로 그렸던 눈사람의 얼굴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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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눈사람의 얼굴 표정을 거꾸로, 팔은 목에 붙어 있는 눈사람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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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눈 내리는 날의 집 최종 완성!



<그날의 다른 이야기>


놀이에서의 집중도가 최고였던 그날에

아빠는 수도꼭지 잠그는 것을 잊어버리셨다.

(놀이 직전에 화장실에 다녀오셨다.)


우리가 놀이에 집중해 있었던

1시간도 넘는 긴 시간 동안,

세면대의 수돗물은 계속 버려지고 있었다.

그걸 아무도 몰랐다.


아빠는,

놀이를 하고 있는 시간 동안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해 보이셨다.

내 이름도 불러주신 날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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