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득 햇살을 담아

내 맘대로 창작스토리-5

by 마이드림

나는 정말 궁금했어요.

겉으로 보면 다 똑같이 생긴 저 집들 너머에는

어떤 모습들이 펼쳐져 있는 걸까 하고 말이에요.


겨울에는 특히 인간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안의 모습이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왜냐하면 겨울에는 너무 심심하거든요.

지천에 피어 있는 꽃들도 구경하기 힘들고

나뭇가지들도 앙상하기만 하고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도 몸을 움츠리고 다녀서

구경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으니까요.


추운 계절 내내 나는 정말 심심했어요.

겨울이면 내 힘이 좀 약해지는 시기라서

커튼이며 블라인드까지 설치되어 있는 창문을

뚫고 들어갈 힘이 부족하지 뭐예요.

궁금한 곳은 많은데 다 구경하기에도 시간이

너무 짧은 계절이라 속상해요.


똑같이 지어진 아파트에는

왜 그렇게 붙어 있는 창문들이 많은지

다 구경하고파도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건물은 갈수록 높아지고,

내가 어느 집을 구경하고 안 했는지 헷갈려서

골고루 방문하기도 힘들지 뭐예요.


그래서 내가 자주 방문 못하는 집들은

좀 더 어둡고 추워요. 참 미안한 일이죠.

추운 계절에는 그 방문마저 힘들었어요.

한파가 몰아닥쳐 모두들 문을 굳게 닫아걸고

있었으니까요.


겨울엔 내가 활동할 시간도 짧아져서

나의 심심함만 더해지고 있었답니다.

그래도 나는 계절이 돌고 도는 지역을

담당하고 있어서 너무 다행이에요.


일 년 내내 춥기만 하면

내가 기운이 약해져 힘들 테고,

일 년 내내 덥기만 하면

나는 과로해서 힘들 테니까요.


나는 며칠 전부터 느낄 수 있었죠.

아직은 기온이 많이 쌀쌀하지만

확실히 나의 힘이 많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요.


오늘은 특히 기운이 넘치더라고요.

"야호 신난다!

나의 힘이 얼마나 돌아왔는지 확인해 볼까.

오랜만에 집들을 구경하러 가야겠어."


내가 야심 차게 창문도 통과하고

블라인드도 통과해서 들어간 집은

내가 상상도 못 한 모습이 펼쳐져 있었어요.


그렇게 멋진 집이었냐고요?

아니요. 그 반대였어요.

겨우내 시들시들 기운 없이 지내다가

모처럼의 활력을 되찾아서

아침의 기운을 잔뜩 머금고

어떤 집에 방문했는데요.


"안녕하세요?

여러분~내가 왔어요"를 외치며

베란다 창을 뚫고 들어간 거실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럴 수가!

오랜만에 내가 멋지게

조명처럼 짜잔 밝게 등장을 했는데,

하필 아무것도 구경할 것이 없는 집이더라고요.


거실에 가구도 하나 없고 다 치워져 있는,

그야말로 텅텅 빈 집이었어요.

"뭐지? 왜 구경할 게 하나도 없어?"

너무 실망해서 둘러봤더니 하필 내가 고른 집이

천장에 누수가 있었던 집이지 뭡니까.

천장 도배한다고 거실은 텅텅 비워 놓은 상태고,

물건들은 모두 베란다로 내다 놓아서

복잡하고 어수선한 그런 집이었어요.


나 참...

이럴 것 같으면 짜잔 하고 방문할 게 아니라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몰래 다녀갈걸.

나의 이 밝음이 그렇게 쉽게 가려지냔 말이죠.

결국 한줄기 흔적을 남기고야 말았다니까요.


어디에서도 가려지지 않는 나의 존재감이라니!

내가 달리 햇살이겠냐고요.


에이...

집을 골라도 하필 이런 집을 방문하게 됐냐고

실망하고 있는데,

어라?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나를 보면서 너무 좋아하지 뭐예요.


"요즘에 거실에 이렇게 한줄기 햇살로

빛이 들었던 적이 있었나?

텅텅 비어 있으니까 햇살이 더 선명하고

특별하게 예뻐 보여."


으이그...

내가 얼마나 쨍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그걸 이제야 알았단 말이에요?

영광인 줄 알라고요.

이렇게 한줄기 빛을 그대의 집에 내리노니

이제 그대의 집에 좋은 일이 가득하면

그건 다 내가 방문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내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고맙다. 햇살아!

네가 바닥을 비춰준 덕분에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이 집에 볼 것도 없고 너무 실망해서

얼른 다른 집으로 옮겨가려고 했는데요.

이 집에 사는 사람이 나의 한줄기 햇살에

너무 기뻐하는 게 보이잖아요. 그래서

이왕 방문한 김에 조금 더 힘을 써보자 싶었죠.


"얍.... 받아라 나의 밝은 빛을!!!!"

힘을 끌어모아 햇살 가득 담아주고 싶었는데

"안 되겠다. 오늘은 여기까지만"을 외치면서

내가 포기해 버린 이유는요.


도배한답시고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바닥이 너무 얼룩덜룩 더럽더라고요.

내가 밝게 비춰주려고 힘을 쓰니까

아직 청소 못한 바닥만 더 지저분해 보이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좀 아쉽긴 하지만 오늘은 나의 힘을

그만 멈추었답니다.


자, 오늘의 햇살은 여기까지만!

내가 다음에 다시 방문할 테니까

바닥 물걸레 청소 싹 다 해놓고,

물건들 다시 제자리로 정리한 다음에

나의 방문을 기다리세요. 알았죠?


처음엔 사실 내가 더 우쭐했어요.

볼 것도 없는 집에 내가 이렇게

햇살 선물도 주고,

집이 환해진 거 좀 보라면서 말이죠.


그런데 이 집에 사는 사람이

나의 빛 한줄기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고맙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에 괜히 내가 머쓱해졌어요.


인간의 고맙다는 말은 따듯했어요.

나도 그 온기에 감싸지는 기분이 들었죠.

나만큼이나 밝은 빛이 나는 것이

인간의 고맙다는 마음이었어요.


오늘은 생각지 못했던 말을 선물 받았으니

나도 좀 더 환한 빛으로 보답을 해야겠어요.

천장 벽지가 하루라도 빨리 마를 수 있도록

날마다 당신의 창가에 더 많이 머물다 가려고 해요.


기대해도 좋아요.

다음엔 오늘보다 한가득 햇살을 담아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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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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