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진 우리 사랑

내 맘대로 창작스토리-3

by 마이드림

우리 제일 처음 만났을 때 말이에요.

내가 참 예쁘게 생겼다면서

호감을 보인 건 우리 주인이었어요.

"여기에 꽃무늬 있는 건 처음 보는데!"

나를 본 첫날부터 눈을 반짝이더라고요.


그동안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갔어도

딱히 마음이 끌리진 않았는데요.

우리가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주인을 처음 만났을 때는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무리 같은 집에 산다지만

우리는 매일 만났어요.

우리 주인은요.

내 앞에만 서면 늘 수줍어했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나에게는 제일 먼저 들키곤 했거든요.

내가 주인에게 보내는 반응에 따라

주인의 표정도 조금씩 달라지곤 했어요.

그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나는 주인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볼 때마다

웃음이 터지곤 했어요.

내가 팩트 체크해 줄 때마다

당황스러워하면서 혼자서 막 변명을 하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웃겼어요.


제일 웃긴 표정을 지을 때가 언제냐면요.

명절 연휴가 끝나고 기름진 거 잔뜩 먹었을 때

나를 보며 긴장하는 그 표정이 제일 웃겨요.


"저기 있잖아.

네가 거짓말 못하는 건 다 아는데

그래도 너무 진실을 다 알려주진 않아도 돼.

둥글둥글하게 뒷자리는 좀 빼주면 안 되니?

너무 정확하게 다 알려주지 마."


우리 주인은 알거든요.

내가 대충 듣기 좋게 말해주지 않고

너무 적나라하게 말한다는 사실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내가 우리 주인을 챙기는 방법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일인 걸요.


"헉, 이 숫자가 맞는 거야?

내가 연휴 기간 내내 기름진 걸

좀 많이 먹기는 했어.

나도 인정은 하는데,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많이 늘었다고?"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올라섰다 다시 내려가고...

다시 올라서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는 모습에

나는 깔깔깔 웃고 말았답니다.



'자, 이제 내가 누군지 눈치채셨죠?

나는 체중계랍니다.


사실 나한테 매번 들켜서 그렇지

주인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많이

티도 안 나거든요.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몸무게를

언제나 나한테 제일 먼저 들키는 것이

무지 부끄러운가 봐요.


에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 주인이 혼자 찔려해서 그렇지

내가 오랜 세월 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요.

좀 많이 먹으면 몸무게가 늘었다가도

나의 팩트 체크 몇 마디면 조절해서

크게 달라지거나 하진 않았답니다.


나는요.

내 앞에만 서면 긴장하는 주인을 볼 때마다

너무 재밌고 좋았어요.


관계가 오래되면 지나치게 긴장감이 떨어져서

설렘이 사라진다는데, 우리는 살짝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관계다 보니 늘 설렜거든요.


거기다 얼마나 귀여워요.

자기가 많이 먹어 놓고 체크당하는 건

매번 눈 커지면서 당황하는 거!

내게는 그 구경이 큰 즐거움이랍니다.


사실 오동통해지는 순간의 우리 주인도

나는 별로 상관없거든요.

그냥 주인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밌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주인이

어느 날부터 좀 이상해졌어요.

스트레스 엄청 받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잠을 잘 못 자더라고요.

잠을 잘 못 자니까 몸도 점점 안 좋아지고

그에 따라 사람이 무기력해졌어요.


매일 아침이면 내게 인사를 건네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찾지 않았어요.


"다 귀찮아!"


예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모습이었어요.

나에게 애정이 식은 것보다도

모든 것에 심드렁해져 버린 모습이

더 안타깝고 걱정이 됐어요.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내 자리를

만들어주던 주인이었는데,

나를 구석에다 던져 놓고는

먼지도 안 닦아주고 방치를 하지 뭐예요.


나 진짜 그때 서러워서 눈물 났어요.

나를 먼지 구덩이에 던져 놓는 것도,

우리 만나고 처음 있는 일이라 충격이 컸고요.


그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여기저기 자꾸 아파서 인상이 구겨지는

우리 주인의 모습이었어요.


나는 날마다 기도했어요.

제발 기운을 차리세요!



만약에 말이에요.

주인이 나보다 더 나은 신상 체중계에서

홀딱 반해서 나를 잊은 거라면,

나도 잊어줄 수 있는데요.

주인은 자기 몸을 돌볼 기운이 없는

무기력한 상태라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팠어요.


내 잔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을 체크할 수 있게

다시 한번만이라도 내 위에 서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우리 주인은 끝까지 나(체중계)를 이렇게

방치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거든요.


자기 몸무게 들킬 때마다 내 앞에서

부끄러워하던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어요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지만

나도 기다리는 동안 긴긴 수면에

들어가기로 했죠.

설마 100년 동안 잠만 잤다는 공주처럼

나를 계속 잠만 자는 체중계로

버려두는 일은 없을 테죠?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 날,

내 믿음에 답해주려는 듯이

주인이 다시 내 앞에 섰어요.

"나 일단 몸을 좀 가볍게 만들어야겠어.

그러니까 네가 매일 잔소리 좀 해줘."


우리 주인이 결심을 했어요.

좋아요. 잔소리라면 걱정 말라고요.

소수점 하나까지 적나라하게 외쳐줄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요.


몸에 독소를 좀 빼야겠다면서

몇 달을 노력하더니,

주인이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내가 잔소리 좀 세게 해 주려고

결심했었는데요.


그럴 필요가 없지 뭐예요.

몸이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하니까

자기가 더 신나서 나를 찾아와요.

몸이 가벼워지니까 전에는 되지 않던

스트레칭 동작도 된다면서 내 앞에서

재잘재잘 수다도 떨어요.


예전에는 내가 팩트 체크해 주는 숫자를

볼 때마다 그렇게 민망해하더니,

요즘에는 아주 표정이 신나 보였어요.

오히려 내가 체크해 줄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만족해한답니다.

주인이 좋으면 나도 좋아요.


우리는 다시 매일 만나고 있어요.

아주 편안한 행복을 느끼면서요.



쉿, 이건 비밀인데요.

분명 예전에도 힘들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벼움을 경험해 보니,

지금이 조금 더 좋아요!!!


(몸무게가) 가벼워진 우리 사랑이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 줄은

정말 몰랐답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체중계인가 봐요.

주인의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지만

숫자가 줄어든 가벼움이 주는 편안함을

알아 버렸지 뭐예요.^^



나는체중계랍니다.jpg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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