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같이 놀아요"

치매 아빠와 놀이를 하기로 했다

by 마이드림

부모님께서 오랜 세월 살고 계셨던 아파트는

재건축을 앞두고 있었기에 집을 비워야 했다.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 들어갈 집과

2주 정도의 날짜가 맞지를 않았는데,

그 기간 동안 부모님은 우리 집에 와 계시게 되었다.


검사를 위해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니시고

날마다 시간 맞춰 약을 드셨는데도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인 3월 마지막 주에도

아빠는 딱히 나아진 것이 없으셨다.


아빠는 내 집에 들어오시자마자

내가 누군지, 이곳은 어디인지부터 물으셨다.

그나마 매일 얼굴을 봐서 제일 익숙한 엄마에게

집에는 언제 가냐고 몇 번이나 물으셨다.


우리 집에 오셨던 날의 아빠는

하필 그날따라 몸 상태도 안 좋으셔서

훨씬 늙어 보이셨다.


그동안은 매일 보질 못했기에 몰랐다가

한집에 살면서 보게 된 아빠의 생활은

단조로움 그 자체였다.

머릿속에 기억나는 것이 없어서인지

아무것도 하려고 하질 않으셨다.

식사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자꾸 잠만 주무시려고 했다.


그동안 너무 잠만 주무신 덕분에

다리 힘도 약해져서 걷는 것도 불안정하고

얼굴도 생기가 사라져 있었다.


아빠를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영상들을 찾다 보니 치매 노인들이

손가락 운동만 꾸준히 해도 훨씬 나아진다고

의사 선생님들이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치매 아빠와 놀이를 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집에 계시는 2주 동안만이라도

아빠가 손을 많이 사용하실 수 있는 놀이를

매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손을 움직이면 뭐가 얼마나 좋아질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잠만 주무시는 것보다야

뭐가 나아도 낫겠지 싶었다.


내가 누군지도 몰라보는 아빠께

"아빠, 우리 같이 놀아요"라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내가 계속 딸이라고 하니까

엄마를 쳐다보시면서 그러셨다.

"언제부터 딸이 있었지?"라고 말이다.

딸의 존재도 기억을 못 하시면서도

우리 같이 놀자고 하는 말에는 거부감이

없으셨다. 그것이 너무 다행이었다.


집에는 마침 털실이 좀 남아 있었다.

그리고 휴지심을 모아놓은 것도 좀 있었다.

한동안 내가 인터넷 영상에서 따라 만들었던

휴지심을 넣어 만드는 미니 털모자가 있었는데

아빠와의 첫 놀이로 그걸 해볼 생각이었다.


모자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실을 끼우는 동작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데

그러한 반복이 아빠가 손을 많이 움직이기에

너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털실의 길이를 맞추어 잔뜩 자르고

휴지심도 몇 개나 잘라놓고서

아빠께 천천히 방법을 알려드렸다.


그런데, 그걸 해보고야 알았다.

초등생도 따라 할 수 있는 단순 동작인데

아빠의 손은 그걸 못 따라 하셨다.


그날 처음 알았다.

그렇게 섬세하게 요구되는 손동작들이

아빠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의 놀이는 시작부터

하나도 쉽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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